이재명 대통령이 지난주 부동산 국민토론회에서 보유세 인상 의지를 밝히며 한 말이다. 결연하다. 그러나 이어진 설명은 현실의 벽을 깊게 의식하고 있다. “보유세를 선진국 수준으로 하려면 세 배는 올려야 하는데, 그러면 폭동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지 않겠나.” 정책이 현실을 고려하는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정책의 결기와 정치적 여건이 부딪칠 때 어떤 원칙으로 조정할 것이냐다.
정권 바뀔 때마다 뒤집히는 방향
정책 기준 사회적 합의부터 필요
대통령은 설득을, 야당은 대안을
토론회에서 한 시민이 대출 규제로 잔금을 치르지 못해 입주가 막혔다고 호소하자 대통령이 즉석에서 점검을 지시했다. 그날 오후 문제가 해결됐다. 훈훈하지만 씁쓸하기도 하다. 대통령의 눈에 띄지 못한 수많은 다른 실수요자의 사정은 어떻게 되는가. 규제 정책은 불가피하게 부수적 피해를 낳지만, 그 피해를 구제하고자 예외를 남발하면 정책 효과가 떨어진다. 이런 문제들을 매번 권력자의 ‘결단’ 혹은 ‘시혜’로 해결할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대통령에게 호소하지 않아도 되는 시스템 만들기다.
정책의 결기와 정치적 현실을 조율할 기준점은 결국 사회적 합의에서 나온다. 합의된 기준이 없으면 시스템도 만들기 어렵다. 그 자리를 매번 ‘정치적 의지’가 대신하게 된다. 그러나 정치권은 공동체의 합의 도출을 위한 노력은커녕 정략화에 몰두했다. 집권 세력의 이념에 따라 세제, 재건축·재개발, 다주택자 규제가 냉탕과 온탕을 오갔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책이 뒤집히다 보니 시장은 정부 정책보다 정권 교체를 먼저 바라보게 됐다. 이 과정에서 집 있는 사람은 “버티면 이긴다”는 학습효과를 체득했고, 집 없는 사람은 “정치가 판을 뒤집어주겠지”라는 반전의 기대를 버리지 못한다.
이념을 앞세운 공허한 정책이 낳은 대표적 부작용 사례가 ‘똘똘한 한 채’ 현상이다. 문재인 정권이 다주택자에 대한 징벌적 과세와 1주택자에 대한 파격적 혜택을 앞세우자, 시장은 수도권 상급지 한 채로 쏠리는 풍선효과로 반응했다. 정책은 무능했고, 시장은 영악했다. 이런 부작용이 드러났을 때조차 정치권은 정교한 조정에 나서는 대신 ‘세금 응징’과 ‘세금 무용론’이라는 이념 투쟁으로 날을 지새웠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부동산 정책의 방향까지 뒤집히는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 정책의 일관성을 제도적 장치로 담아낼 때다. 정권의 교체마다 반복되는 소모적 갈등과 정책 대단절을 끊어내기 위해서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처럼 정치적 외풍에서 분리된 부동산정책기구 설립을 고민할 때가 됐다고 본다. 영국의 예산책임청(OBR) 같은 독립된 정책 심의·평가 시스템도 갖출 필요가 있다.
세제나 대출 규제, 공급 방식 등 구체적 정책을 고정하라는 말이 아니다. 핵심은 정권을 넘어 유지할 장기적인 원칙과 방향에 대한 사회적 합의다. 뉴질랜드는 주택·도시개발에 30년 장기 비전을 제시하고, 이를 바탕으로 주택 공급과 도시 개발 정책의 방향을 정한다. 싱가포르도 50년 뒤를 내다보는 국토 장기계획을 세워 10년마다 재검토한다. 정책은 바뀔 수 있다. 그러나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책의 나침반까지 바뀌어서는 안 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여야가 장기적인 주택정책의 큰 틀에 합의하고 그 안에서 정책 수단을 유연하게 조정하는 일이다.
부동산 잔혹사를 끝내기 위해 요구되는 것은 한 정권의 한시적인 결기가 아니다. 대통령이 보여주어야 할 것은 정치적 저항을 감수하겠다는 의지만이 아니라, 야당을 국정 파트너로 인정하고 함께 제도의 기틀을 만드는 협치의 리더십이다. 야당 역시 정부의 실책을 비판해 반사이익을 얻는 데 머물러선 안 된다. “세금으로는 집값을 잡을 수 없다”는 교조적 반대만을 되풀이할 게 아니라 수권 정당다운 대안을 들고 토론의 테이블로 나와야 한다. 국민이 보고 싶은 것은 정부의 독선도, 야당의 몽니도 아니다. 제도적 백년대계를 만들어내는 ‘정치의 진짜 실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