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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핵 막으려다, 중동 ‘핵 도미노’ 불렀다…트럼프의 모순 [View]

중앙일보

2026.07.26 13:00 2026.07.26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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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미국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이 무함마드 빈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AFP=연합뉴스

지난해 11월 미국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이 무함마드 빈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AFP=연합뉴스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의 원자력 협정(123 협정)에 불협화음이 일고 있다. 지난 22일(현지시간) 미국과 사우디 에너지부가 협정에 서명한 지 하루 만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사우디가 ‘아브라함 협정(이스라엘과 수교)’ 가입이 전제조건이라고 주장하면서다. 사우디는 체결 당시 합의하지 않은 사항이 나온 것에 당황해하고 있다고 CNN이 전했다. 사우디는 26일 현재까지 공식 입장을 내지 않고 있다.



보수언론 비판에 말 바꾼 트럼프

지난 2020년 9월 미국 워싱턴 백악관 발코니에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왼쪽부터)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압둘라티프 빈 라시드 알자야니 바레인 외무장관, 셰이크 압둘라 빈 자예드 알나흐얀 아랍에미리트 외무장관이 국교 정상화 협정인 ‘아브라함 협정’ 에 서명한 뒤 취재진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AFP=연합뉴스

지난 2020년 9월 미국 워싱턴 백악관 발코니에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왼쪽부터)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압둘라티프 빈 라시드 알자야니 바레인 외무장관, 셰이크 압둘라 빈 자예드 알나흐얀 아랍에미리트 외무장관이 국교 정상화 협정인 ‘아브라함 협정’ 에 서명한 뒤 취재진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AFP=연합뉴스

혼란은 트럼프가 자초했다. 협정의 골자는 미국 기업이 사우디 원자력 산업에 기술·장비 등을 수출하면서 우라늄 농축·플루토늄 재처리 등으로 사우디가 자체 핵물질을 확보할 가능성을 열어둔 것이다. 한국과 아랍에미리트(UAE) 등에도 해주지 않은 ‘특혜’에 월스트리트저널(WSJ)과 폭스뉴스 등 보수언론까지 아브라함 협정 가입도 얻어내지 못한 ‘퍼주기’ 라 비판했다. 이에 트럼프가 급하게 당초 없던 전제조건을 내밀었다는 게 미 언론들의 분석이다.

트럼프가 제시한 전제조건은 사실 미국의 기존 입장이다. 미국은 사우디가 지속해서 원자력 발전 기술 지원을 요구할 때마다, 선결 조건으로 아브라함 협정 가입을 요구했다. 아브라함 협정은 트럼프 행정부 1기 시절인 지난 2020년 9월 트럼프의 중재로 이스라엘과 UAE·바레인이 체결한 외교관계 정상화 협정이다. 유대교·이슬람교·기독교가 공통 조상으로 여기는 구약 성서 인물 ‘아브라함’에서 이름을 따왔다.

트럼프는 사우디를 합류시켜 협정의 ‘화룡점정’을 찍고 싶어했다. 이슬람 수니파 맹주 사우디가 합류하면, 중동 내 반(反)이스라엘·반미 기류가 최소화하고, 이스라엘-걸프국가 안보 축으로 이란에 맞서는 구도를 짤 수 있다. 하지만 2023년 10월 가자지구 전쟁 발생으로 상황이 바뀌었다. 사우디는 팔레스타인 국가 수립 문제가 해결되기 전엔 협정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 중이다.



전쟁 장기화로 사우디 필요해진 미국

지난 24일 이란 테헤란에서 아야톨라 알리 하메메이 전 최고지도자와 이란 국기가 그려진 벽화를 한 이란 시민이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고 있다. AFP=연합뉴스

지난 24일 이란 테헤란에서 아야톨라 알리 하메메이 전 최고지도자와 이란 국기가 그려진 벽화를 한 이란 시민이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고 있다. AFP=연합뉴스

지지부진하던 핵 협력이 급물살을 탄 건 결국 선(先)아브라함 협정, 후(後) 핵 개발 조건을 미국이 양보했기 때문이다. 약 5달 동안 이어지는 이란 전쟁 때문이다. 사우디는 전쟁 과정에서 이란의 드론과 미사일에 피해를 보면서 미국 군사력에 안보를 의존해 온 기존 정책에 의구심을 가지며 독자 행동 가능성을 열어놨다.

반면 미국 입장에선 전쟁이 장기화할 수록 사우디 등 미군 기지가 있는 걸프 국가의 중요성이 커졌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트럼프로선 핵 개발이란 당근으로 사우디를 미국 안보 질서에 밀착시켜야 했다. 미 싱크탱크 애틀랜틱카운슬의 엘리슨 마이너 중동 소장은 “이란 전쟁이 협상에 정치적 긴급성을 줬을 수 있다”며 “미국은 경계심이 커진 사우디를 안심시킬 필요가 있었다”고 말했다. 사우디가 중국·러시아 등과 원자력 협력에 나설 가능성을 차단하려는 목적도 있었다.



핵 막으려다 핵 도미노 만드는 꼴

지난 23일 이란 테헤란의 한 대형 광고판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관에 누워 있는 모습의 반미 선전 광고가 걸려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23일 이란 테헤란의 한 대형 광고판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관에 누워 있는 모습의 반미 선전 광고가 걸려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하지만 이는 미국이 내세우는 비핵화 명분을 약화할 수 있다. 당초 트럼프가 이란과 전쟁을 벌인 명분은 ‘제로 농축’이었다. 이란 영토에서 단 한 방울의 핵 물질도 만들 수 없게 하겠다는 것으로, 트럼프는 이를 바탕으로 지난해 6월 포르도 등 핵시설을 벙커버스터로 공습하고, 지난 2월 28일 전쟁을 개시했다. 하지만 이란의 핵 개발 의지는 여전하다. ‘이란 핵위협 제거’의 성과로 내세울 수 있는 440㎏의 고농축 우라늄(HEU)도 확보하지 못했다. 이란의 호르무즈해협 봉쇄 변수로 핵 문제는 본격 협상 의제로 올라오지조차 못하는 상황이다.

더 큰 문제는 사우디발 핵협력 가능성이 중동 내 다른 국가들에 핵개발 도미노 현상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점이다. 당장 이란은 “사우디가 하는데 우리가 못 할 이유가 없다”고 반기고 있다. 알리 제이니반드 이란 내무부 대변인은 “이 지역에서 (핵) 군비 경쟁이 벌어진다면, 우리가 누구보다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당장 지난 2009년 자체 핵연료 생산 권리를 포기한 ‘골드 스탠더드’ 조건으로 중동 국가 중 유일하게 미국과 원자력 협정을 맺은 UAE가 사우디보다 불리한 조건에 반발할 가능성이 크다. 러시아와 원자력 개발 협력을 이어 온 이집트와 튀르키예 등도 사우디에서 자체 핵연료 생산 봉인이 풀린다면 핵개발에 나설 수 있다. 하칸 피단 튀르키예 외무장관은 지난해 2월 “이란 등이 핵무기를 획득할 경우 불가피하게 같은 경쟁에 뛰어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트럼프로선 핵을 막으려 전쟁까지 시작했지만, 이 지역에 오히려 핵확산 우려를 키웠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됐다. 미 핵확산 방지 싱크탱크 비확산정책교육센터 헨리 스콜스키 소장은 WSJ에 “사우디와의 협상이 (중동 내에서) 좋게 끝날 거란 생각은 망상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이승호([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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