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북서부 해상에 위치한 바로사 가스전에 설치된 부유식 복합생산설비(FPSO) 전경. SK이노베이션 E&S는 바로사 가스전 개발에 참여해, 올 8월 30만 배럴의 초경질유를 국내에 들여온다. 사진 SK이노베이션 E&S
SK이노베이션 E&S가 호주 바로사(Barossa) 가스전에서 직접 확보한 초경질유 30만 배럴을 다음 달 초 인천항으로 들여온다고 27일 밝혔다. 호르무즈해협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장기화하는 가운데, 중동 밖에서 원료 장기 공급선을 마련한 사례다.
초경질유는 천연가스를 생산할 때 함께 나오는 가벼운 원유로, 플라스틱·합성섬유·고무의 기초 원료인 나프타(납사) 성분이 많다. 이 물량은 SK인천석유화학 전용 설비에 투입돼, 페트병·폴리에스터 섬유의 원료인 파라자일렌(PX)과 휘발유·항공유 생산에 활용된다.
국내 민간기업이 해외 자원개발로 확보한 초경질유를 국내에 들여오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확보 물량은 연간 110만 배럴, 20년간 총 2200만 배럴이다. 대형 유조선(VLCC) 한 척에 실리는 양이 통상 200만 배럴이고 SK이노베이션의 하루 정제능력이 약 80만 배럴인 점을 감안하면, 물량 자체는 크지 않다.
이번 도입은 중동에 쏠렸던 원료 수입선을 넓히려는 정유·석유화학업계 흐름과 맞닿아 있다. 2월 발발한 미·이란 전쟁으로 국내 원유 수송의 대부분을 책임지는 호르무즈해협 통항이 사실상 막히면서, 원유와 납사 수급 불안이 이어져 왔다.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정유업계의 중동산 원유 수입량은 올 1월 6623만 배럴에서 6월 4389만 배럴로 줄어든 대신 미국·아프리카산 비중이 늘었다.
석유화학의 핵심 기초원료인 나프타 역시 올해 1월 배럴당 62.74달러에서 6월 106.86달러로 약 70% 뛰었다. 한 업계 관계자는 “호르무즈해협을 통하지 않는 우회 통로를 찾아 전 세계로 납사를 구하러 다녔다”며 “정부의 납사 차액 50% 보전 지원이 큰 힘이 됐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미국산 나프타 수입 비중이 늘며 수입국 지형도 바뀌었다.
다만 근본적 해법은 아니라는 게 업계 진단이다. 원료값은 뛰는데 중국의 저가 공세로 원가 상승분을 제품 가격에 반영하지 못하면서 국내 석유화학업계의 수익성도 나빠지는 양상이다. 최근 호르무즈해협 긴장이 다시 고조되며 납사 가격도 상승세로 돌아섰다.
석유화학은 자동차·전자·조선·건설·섬유는 물론 의료용 수액 팩과 생활용 비닐제품까지 사실상 모든 제조업에 기초 소재를 공급한다. 실제 지난 3월 나프타 품귀로 ‘종량제봉투’ 대란을 빚기도 했다. 또 다른 석유화학 업계 관계자는 “석유화학은 제조업 곳곳에 흐르는 모세혈관과 같다”며 “최소한의 경쟁력을 잃지 않도록, 원료 다변화를 일시적 비상대책이 아니라 장기 산업전략으로 가져가야 한다”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