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안도현 시인이 봉화·영양·청송 지역 학생들에게 수업을 하고 있다. [사진 경북교육청]
지난 23일 경북 영양군 영양고등학교. 20명가량의 남녀 학생들이 교실에 앉아 있는 가운데 익숙한 얼굴의 남성이 강단에 올랐다. 흰머리가 성성한 중년의 남성은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는 문구로 유명한 시 ‘너에게 묻는다’를 쓴 안도현 시인이었다.
교과서에 작품이 여러 차례 실린 유명 시인이 인구 1만6000명 남짓한 소도시의 고등학교 강단에 선 이유는 뭘까. 안 시인이 강사로 나서게 된 이 수업은 경북교육청이 농어촌 학생들의 진로·진학 역량 강화를 위해 마련된 특별 교육 과정이었다. 이른바 ‘BYC’라고 불리는 경북의 오지 중 오지 봉화·영양·청송 지역 학생들이 대상이다.
이날 수업의 주제는 ‘자아탐색과 글쓰기’였다. 서로 다른 학교에서 온 학생들은 수업 초반에는 어색한 분위기였지만, 안 시인이 긴장을 풀어주는 농담도 하고 교실 앞에서 각자 자기소개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굳었던 표정이 풀어졌다.
수업은 안 시인이 시를 쓰게 된 계기와 글쓰기 주제를 정하는 법, 글을 쓸 때 유의해야 할 점 등을 설명하고 학생들이 조를 이뤄 주제에 맞게 에세이를 이어쓰는 등 활동으로 진행됐다.
수업에 참여한 청송여고 오가은(18)양은 “평소 글쓰기가 어렵고 부담스럽다고 생각했는데 안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고 함께 글을 쓰면서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법을 배웠다”고 말했다. 영양고 홍예준(17)군은 “다른 학교 학생들과 모여 서로의 생각을 나누고 이야기하는 것이 즐거웠고 재미있었다. 이번 수업을 통해 내 경험을 글로 써봐야겠다는 결심을 했다”고 했다.
이처럼 농어촌 학교 학생들을 한 데 모아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와 특화된 교육 프로그램을 수강하게 하는 ‘프리미엄 공동교육과정’이 눈길을 끌고 있다. 경북교육청이 전국 최초로 2026학년도 1학기 고교학점제 학교들을 모아 시행하고 있는 ‘배움잇다’ 사업이다.
이번 과정은 지난 9일부터 16일까지 온라인 사전 프로그램을 운영한 데 이어, 이달 22일부터 24일까지 사흘간 영양고 ‘산들캠퍼스’와 울진 후포고 ‘바다캠퍼스’에서 오프라인 집중 캠퍼스를 운영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봉화·영양·청송 지역 학생들이 참여한 ‘산들캠퍼스’의 경우 안 시인의 수업 이전에 진행된 온라인 프로그램에서 박준 시인과 이치억 공주대 교수가 글쓰기와 인문학, 동양철학을 주제로 강의를 진행했다.
어촌인 영덕·울진 지역 학생들이 참여한 ‘바다캠퍼스’는 오프라인 프로그램에서 ‘조선이 만난 아인슈타인’의 저자 민태기 박사가 강연을 진행했고, 온라인에서 어주경 국립생태원 연구원과 안성호 대구대 교수가 생태·환경과 과학적 탐구를 주제로 학생들과 소통했다.
경북교육청은 이번 프로그램을 통해 농어촌 지역 학생들이 지역적 여건으로 인해 경험하기 어려웠던 다양한 교육과정을 선택하고, 각 분야의 전문가들과 직접 소통하며 자신의 관심 분야와 진로를 보다 깊이 탐색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앞으로도 권역별 거점학교를 중심으로 학교 간 공동교육과정을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지역 대학과 연구기관, 문화예술계 등 다양한 분야와의 협력을 강화할 방침이다.
임종식 경북교육감은 “학생이 어디에서 배우느냐보다 무엇을 배우고 누구와 함께 배우느냐가 더욱 중요한 시대”라며 “농어촌 학생들이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와 만나 배움의 폭을 넓히고 자신의 가능성과 진로를 주도적으로 설계할 수 있도록 경북형 고교학점제의 교육 기회를 더욱 확대해 나가겠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