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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균의 역사와 비평] 미국 힘에 편승한 한반도 평화, 언제까지 기대할 수는 없다

중앙일보

2026.07.27 08:10 2026.07.27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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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란 종전 양해각서와 한반도 정전협정
박태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박태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2026년 세계는 이전까지의 합리적 예상을 넘어서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특히 현 미국의 대외정책은 앞으로의 예측을 어렵게 하고 있다. 대외정책에 예산 증액을 반대하고, 해외 개입을 꺼리는 공화당 정부가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전쟁이 발생했고, 전쟁으로 인해 인플레이션이 심해지고 있는데도 체면을 중시하는 민주당 정부와 유사한 출구전략을 쓰고 있다.

군사작전 영구 종료 등 미·이란 각서 파격적이지만 양측 곧 공격 재개
이집트·이스라엘 평화협정 모범적, 남·북 베트남은 억지력 없어 전면전
정전위 무력화 등 한반도 정전협정 결함 불구 미국의 억지력 강력 작동
달라진 미국, 북·중·러 관계 변화…다자 동맹, 중립국 등 모든 옵션 검토를

지난 6월 17일(현지시간)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에서 이란과의 종전 양해각서에 서명하고 있다. [사진 백악관 X 캡처]

지난 6월 17일(현지시간)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에서 이란과의 종전 양해각서에 서명하고 있다. [사진 백악관 X 캡처]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이 지난 6월 18일 이란 테헤란에서 미국과의 양해각서 문서를 보여주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이 지난 6월 18일 이란 테헤란에서 미국과의 양해각서 문서를 보여주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종전에 준하는 미국과 이란의 양해각서
전쟁이 길어지면서 미 정부는 전쟁 중단을 결정했다. 미국, 그리고 미국의 동맹국과 이란이 양해각서를 체결한 것이다. 그 내용은 예상보다 획기적이었다. 제1조에서 이란뿐 아니라 레바논에서도 모든 군사작전을 ‘즉각’ ‘영구적’으로 종료한다고 했다. 그리고 향후 어떠한 전쟁이나 군사행동 또는 무력 사용의 위협을 하지 않을 것을 약속했다.

레바논의 영토보존과 주권도 보장했다. 이는 휴전을 넘어 불가침 선언이나 종전선언 수준의 합의문이다. 미국과 이란은 상대국의 국내 문제에 간섭하지 않는다고 합의하여 유엔헌장 2조의 주권존중과 내정불간섭 원칙을 재확인했다. 또한 미군의 철수와 호르무즈해협 개방을 약속했고, 60일 안에 핵·안보·경제와 관련된 최종 협정을 체결하기로 합의했다.

3000억 달러에 달하는 경제재건 계획은 1947년의 마셜 플랜에 버금가는 약속이고, 경제제재 해제도 합의했다. 여기까지 보면 미국과 이란 사이의 양해각서는 지금까지 전쟁을 중단하거나 끝내기 위해서 했던 어떤 협정보다도 더 높은 수준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이러한 양해각서는 향후 유엔안전보장이사회의 구속력 있는 결의로 결정을 합의했다.

73년 전 한반도의 정전협정
1953년 7월 27일 판문점에서 정전협정문에 서명하고 있는 마크 웨인 클라크 유엔군 총사령관. [사진 국가보훈처]

1953년 7월 27일 판문점에서 정전협정문에 서명하고 있는 마크 웨인 클라크 유엔군 총사령관. [사진 국가보훈처]

미국과 이란 사이의 양해각서는 73년 전 1953년 7월 27일 한반도에서 조인된 정전협정을 떠올리게 한다. 양해각서에서 60일 이후 추후 협상을 규정하고 있는 것처럼 정전협정에도 90일 이내에 평화협정 체결을 위한 한 급 높은 정치회담을 개최하는 조항이 포함되었다. 그 자체로서 완결성을 갖지 못하는 합의였지만, 종전을 담보한 합의였다.

그렇다고 성격이 동일한 것은 아니다. 양국의 최고 지도자가 서명한 양해각서와, 평화협정으로 전환하기 전 적대적 전투행위를 멈추기 위해 군사령관이 서명한 정전협정 사이에는 차이가 존재한다. 총 14개 조로 한 달도 안 되는 논의과정을 거친 양해각서와 18개월간 논의를 거쳐 5조 63항으로 구성된 한반도의 정전협정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한반도의 정전협정은 불가침조약 또는 평화협정이 아닌 순전히 군사적 성격의 협정이었다. 군사분계선과 비무장지대, 정전 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구체적 조직, 전쟁포로에 관한 조치, 쌍방 정부에게 정치회의 소집을 건의하는 조항 등을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특히 비무장지대 설치, 중립국 감독위원단 조직 등은 이후 베트남전쟁에서 중요한 선례가 되었다. 비무장지대의 설치는 베트남의 정전협정(1954년)과 평화협정(1973년)에도 그대로 반영되었다. 포로 문제도 적대행위 중지 후 무조건 즉시 송환이 아니라 자의에 의한 송환이 이루어지면서 우크라이나 전쟁에서의 북한군 포로 송환 문제에 적용 가능성 역시 고려할 수 있게 되었다.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정전협정
그런데도 한국의 정전협정은 몇 가지 점에서 중요한 결함을 갖고 있었다. 육지에서의 군사분계선은 규정했지만, 바다 위의 군사분계선은 규정하지 못했다. 1958년 주한미군에 핵무기를 배치하는 과정에서 향후 긴장 완화를 위해 외부로부터의 더 발전된 무기 반입을 금지한 규정이 무효화되었다.

90일 이내에 한 급 높은 정치회담을 개최하여 평화협정을 마련하는 조항도 1954년 제네바 회의 이후 더는 개최되지 않았다. 2018년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의 공동성명서에서 정치회담의 필요성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1990년대 이후 정전협정은 더 위험한 상황에 처했다.

정전협정을 관할하는 최고위급 기관인 군사정전위원회의 유엔군 측 대표에 한국군 장성이 임명되자 북한과 중국 대표단이 철수했고, 위원회는 더는 열리지 않았다. 체코슬로바키아가 두 국가로 나누어지고 폴란드가 자유화되면서 북한 측의 중립국 감독위원단이 더는 작동하지 않게 되었다.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는 이제 역사가 되었다.

북한은 정전협정이 유효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바다 위의 군사분계선은 몇 차례에 걸쳐 남북 간에 평화 어로 구역으로 규정되었지만, 남한에서 몇 차례 정권교체과정을 거치면서 모두 무효화되었다. 불완전한 정전체제가 지속되면서 이를 대체할 종전선언이나 평화협정이 추진되었지만, 2020년 이후 북한의 강경노선으로 어떠한 진전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정전협정보다 더 불안했던 평화협정
이렇게 한반도의 정전협정은 시작부터 많은 문제를 갖고 있었으며, 70년이 넘는 시간이 흐르면서 일부 조항이 무효가 되었고, 정전협정을 관리하는 주요 조직들이 작동하지 않게 되었다. 최고 지도자가 아니라 군사령관이 서명했다는 점에서도 1973년 미국과 베트남, 그리고 1979년 이스라엘과 이집트 사이의 평화협정에 비하면 불안한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겉으로만 보면 최근 미국과 이란 사이의 양해각서도 한국의 정전협정에 비하면 적대행위를 멈추기 위한 보다 높은 수준의 합의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도 양해각서를 맺은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전쟁이 재개되는 듯한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양국 사이에 군사적 공격이 재개되었으며, 전략폭격의 상징인 B1 폭격기가 영국에 배치되었다는 소식도 들리고 있다.

이런 상황은 한국전쟁 기간 동안 정전을 위한 협상 과정에서 보다 유리한 결과를 얻기 위해 전선을 중심으로 1년 6개월간 미국의 폭격과 중국의 공세가 심화되었던 것처럼 양해각서 60일 이후 추가 협의 과정에서 더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한 미국과 이란 사이의 줄다리기일 수도 있다. 그런데도 언제 다시 전쟁으로 비화할지 그 누구도 합리적 예측이 불가능하다.

이집트와 이스라엘의 평화협정은 가장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지만, 다른 평화협정들은 그렇지 않다. 특히 베트남은 가장 불안정한 경우였다. 1954년의 정전협정은 2년 후 남베트남 정부가 남북 총선거를 거부하면서 게릴라 전쟁의 원인을 제공했다. 북베트남은 1973년 평화협정을 곧 위반하였고, 협정 후 2년 만에 북베트남군의 남베트남 수도 사이공 점령으로 막을 내리게 되었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게 되었는가?

강력한 억지력의 중요성
우선 협정을 맺은 국가가 상대방을 국가로 인정하는가의 문제가 중요하다. 쌍방이 합법적 국가로 인정하는 이스라엘과 이집트의 경우 안정이 유지되고 있지만, 남북 베트남은 쌍방이 서로 없어져야 할 국가였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도 유사한 경우다. 평화협정을 맺은 북아일랜드 경우 영국과 아일랜드 간의 상호 신뢰도가 높아지면서 평화협정이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이보다 더 결정적인 조건은 ‘억지력’의 작동 여부라고 할 수 있다. 한반도의 정전협정은 베트남의 평화협정에 비하면 일시적이고 임시적인 협정이었다. 그러나 미군 사령관과 중국군 사령관이 사인했다. 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억지력을 행사할 수 있는 두 국가가 정전협정 안에 쌍방이 되어 있는 것이다.

베트남의 경우는 매우 독특하다. 1954년 협정에는 프랑스군 사령관이 사인했지만, 정전협정 직후 프랑스군은 모두 철수했다. 1973년의 협정에는 미국 정부가 사인했지만, 미군의 대부분은 평화협정이 발효된 직후에 철수했다. 적대행위 종식을 위해 협정이 맺어졌지만, 억지력으로 작동할 수 있는 군사력이 부재했다.

1990년대 유고슬라비아 전쟁을 멈춘 데이튼 협정의 경우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가 조직한 다국적 군대가 평화유지군 이상의 역할을 하면서 억지력으로 작동하고 있다. 나토는 현재 세계에서 유일하게 물리력을 갖고 있으면서 작동하고 있는 국제기구이다.

불안한 세계정세, 그리고 한반도의 미래
미국과 이란 사이의 양해각서는 그 자체로서 불안할 수밖에 없다. 양해각서는 억지력으로 작동할 수 있는 힘을 규정하지 않고 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구속력 있는 결의가 규정되어 있지만, 현재 미국은 유엔의 역할에 크게 의존하지 않고 있다. 게다가 1979년 이란의 미 대사관 인질 억류 사건 이후 현재까지 두 국가 사이에 신뢰가 존재하지 않는 상황이다.

이렇게 본다면, 억지력이 작동하고 있는 한반도의 정전협정은 다른 지역에 비해 안정적이다. 강력한 전쟁 억지력이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강대국의 억지력이 언제까지 작동할 수 있을까의 문제이다. 미국의 정책과 북·중·러 관계의 변화로 한반도에서 언제까지 안정적 상태가 계속될지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예상보다 오래 계속되는 우크라이나 전쟁, 시작이나 양해각서가 모두 갑자기 이루어진 이란의 경우가 이를 잘 보여준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은 새로운 안보체제의 대안이 필요해지고 있다. 지금까지 한국은 강대국에 대한 ‘편승전략’을 취해 왔다. 그러나 현 상황은 ‘힘의 균형 전략’으로의 전환을 요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양자가 아닌 다자간 동맹조약이 필요할 수도 있다. 140년 전 유길준이나 73년 전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얘기했던 중립국 문제도 하나의 옵션이 될 수 있다. 불확실성과 합리적 선택이 작동하지 않는 시대에 모든 옵션이 테이블에 올라와야 할 것이다.

박태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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