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정부의 이른바 ‘신용사면’(신용회복 지원)으로 연체 기록이 사라진 사람 6명 중 1명은 올해 들어 다시 연체를 했다. 금융 취약계층을 돕겠다며 정부가 신용평가체계 개편에 나선 가운데 빚을 갚고 재기할 능력이 있는 이들을 제대로 가려낼 변별력이 중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7일 중앙일보가 김상훈 국민의힘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NICE평가정보와 한국평가데이터(KODATA) 자료를 분석한 결과다. 지난해 신용회복 지원을 받은 개인·개인사업자 292만8000명 가운데 올해 1월 1일부터 3월 31일까지 신규 연체가 발생한 사람은 48만3000명에 달했다. 전체 수혜자의 16.5%로, 지난해 말 연체 기록이 삭제된 차주 6명 중 1명이 다시 빚을 제때 갚지 못했다는 의미다.
김영옥 기자
재연체자는 시간이 지날수록 빠르게 늘었다. 지난 1월 기준 16만9000명이던 재연체자는 3월 말 48만3000명으로 두 달여 만에 약 3배로 증가했다. 집계가 3월 말 기준인 만큼 재연체자는 더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지난해 신용사면을 받은 개인은 총 257만2000명이었다. 이 가운데 45만6000명(17.7%)이 다시 연체했다. 개인사업자는 35만6000명 중 2만7000명(7.6%)이 재연체했다. 개인의 재연체율이 개인사업자의 약 2.3배에 이른다.
신용회복 지원은 2020년 1월부터 지난해 8월까지 5000만원 이하 연체가 발생한 뒤 지난해 말까지 연체금을 모두 갚은 차주를 대상으로 했다. 연체 이력으로 대출이나 카드 발급 등에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연체 기록을 삭제해주는 조치였다. ‘신용 낙인’을 지워 정상적인 경제 활동이 가능하도록 돕는 조치로, 대상자는 별도 신청 없이 신용평점이 자동으로 상승했다. 앞서 금융당국은 2021년과 2024년에도 신용사면을 시행했지만, 이재명 정부 들어 지난해 말 실시한 신용사면은 지원 대상을 대폭 확대하면서 역대 최대 규모로 추진됐다.
그러나 수혜자의 상당수가 단기간에 다시 연체하면서 정책의 한계가 드러났다. 연체 기록은 금융회사가 차주의 상환 능력과 부도 위험을 판단하는 핵심 정보다. 이를 전액 상환 여부만으로 일괄 삭제할 경우 반복 연체 위험이 큰 차주를 제대로 구분하기 어려울 수 있다. 김상훈 국민의힘 의원은 정부의 신용사면 정책에 대해 “빚 탕감 포퓰리즘”이라며 “차주의 상환 능력을 정밀하게 가려내는 신용평가체계의 변별력부터 바로 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진창 금융위원회 사무처장이 27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포용금융 신용인프라 분과 회의에서 상공인 전용 신용평가체계 은행권 도입을 위한 준비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금융위원회.
금융위 관계자는 “신용회복 지원과 개인회생·파산 관련 제도 개선은 모두 한 번의 실패로 금융시장에서 장기간 배제되지 않도록 다시 금융거래 기회를 주기 위한 정책”이라며 “일부 재연체 사례도 있지만 지원을 통해 정상적인 금융생활로 복귀한 차주도 적지 않은 만큼 일시적인 어려움을 겪은 차주가 다시 금융시장에 안착하도록 돕는 것이 정책의 핵심 취지”라고 말했다.
결국 취약차주의 금융 접근성을 높이면서도 반복적인 연체 위험을 제대로 가려내는 것이 금융당국이 추진하는 신용평가체계 개편의 핵심 과제로 떠올랐다. 금융위는 이날 제7차 신용평가체계 개편 태스크포스(TF) 회의를 개최하고 개인파산·면책자의 공공정보 등록 기간 단축 방안을 논의했다. 지난해부터 1년 이상 성실히 변제한 개인회생 채무자의 불이익 정보를 조기 삭제해 약 10만5000명의 재기를 지원한 데 이어, 파산·면책자에게도 금융거래 복귀 기회를 넓힐지를 검토한 것이다. 이 자리에서도 재기의 기회를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과 파산·면책자까지 불이익 정보를 조기에 삭제하는 데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함께 제기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