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조기 탈락에 '복음주의 확산' 지목 "가톨릭 줄며 화려한 드리블 스타일 위축" 전문가들, 상관관계 없는 우연의 일치 평가
브라질이 월드컵에서 20년 넘게 우승하지 못하면서 축구의 부진이 종교 때문이라는 분석이 온라인을 중심으로 퍼지고 있다.
5번이나 월드컵을 안은 브라질은 2026년 월드컵에서 노르웨이에 패해 8강에도 오르지 못했다. 영원한 우승 후보라지만 브라질이 월드컵 우승을 못한 것이 벌써 20년이 넘는다.
이번에도 월드컵에서 조기 탈락하자 브라질 축구팬과 온라인 해설자들 사이에서 그럴듯한 패배 이론이 급속히 퍼지고 있다. 브라질 축구 스타일의 변화가 수십 년 동안 진행된 브라질의 종교 변화와 정확히 일치한다는 주장이다. 한마디로 복음주의가 확산할수록 축구 대표팀의 경기력이 나빠졌다는 것이다.
온라인에서 널리 공유된 게시물은 브라질은 과거의 아우라의 상실하고 있다며 “미국인처럼 기도하면 미국인처럼 축구하게 된다”고 주장했다. 축구팬 사이에서 상당한 공감대를 형성한 이 주장은 과거 브라질 사회를 지배했던 가톨릭을 즉흥성과 삼바, 옛 브라질 선수들의 화려한 드리블과 연결한다. 브라질의 가톨릭 문화는 일반적으로 공동체적이고 축제 같은 성격이 강하며 신자들에게 엄격한 종교적 규율을 요구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브라질의 복음주의는 금기와 절제, 엄격함과 연결되는 경우가 많다.
일부 축구팬들은 브라질 사회에서 복음주의가 성장하고 현재 대표팀 선수들 상당수가 복음주의 신앙을 갖게 되면서 축구 역시 조직과 절제 같은 경직된 스타일로 바뀌었다고 주장한다. 현재 브라질 대표팀 선수의 4분의 3 이상은 복음주의 기독교인이다.
축구팬들이 인터넷을 중심으로 주장하는 이론은 인구조사 수치와 어느 정도 맞물린다. 브라질이 가톨릭 절대다수 국가에서 벗어난 것은 지난 40년 동안 라틴아메리카 종교 지형 변화에서 가장 중요한 사례 중 하나로 꼽힌다. 복음주의 기독교인은 1991년 전체 인구의 약 9%에서 2022년 27%까지 증가했다. 반면 가톨릭 신자는 같은 기간 83%에서 57%로 줄었다.
역대 월드컵 우승국 8개국 가운데 브라질과 이탈리아,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스페인, 프랑스 6개국은 가톨릭이 다수 종교인 국가다. 나머지 우승국인 잉글랜드와 독일 역시 상당한 규모의 가톨릭 인구를 보유하고 있다.
라틴아메리카 종교사의 권위자인 영국 에든버러대학교 페드로 페이토자 교수는 “종교를 선수들의 행동과 경기력에 그대로 연결하는 것은 무리한 해석”이라고 지적했다. 이러한 주장은 과거 브라질에서 가톨릭이 절대다수를 차지했던 시절에 대한 향수라고 분석했다.
페이토자 교수는 브라질에서 복음주의가 성장한 이유에는 여러 측면이 있다고 설명한다. 새로운 교회를 설립하기 쉽고 상당수 복음주의 교단에서는 목회자가 꼭 신학 교육을 받지 않아도 된다. 복음주의가 저소득층이 겪는 현실적 어려움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면서 공동체 의식과 소속감을 주고 사회적 지위 상승 희망을 갖게 하는 점도 성장 요인으로 꼽았다. 친구와 이웃, 가족에게 적극적으로 전도하도록 신자들을 독려하는 전도 문화도 영향을 미쳤다.
브라질 축구 전문가들은 대표팀의 경기 스타일이 달라진 것은 사실이라고 인정한다. 전통적인 브라질 축구는 대담함과 드리블, 개인기, 낮은 전술 비중, 공격적인 플레이가 특징이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런 특징이 변한 것은 종교가 아닌 축구 환경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브라질 축구 유망주들은 이제 아주 어린 나이에 유럽으로 진출해 유럽식 축구를 배우면서 실용적이고 전술에 충실한 선수로 성장한다. 개인의 재능보다 팀 시스템을 우선하는 축구를 배우는 것이다.
브라질 축구 콘텐츠 제작자로 유명한 페드루 알라미누는 축구 자체가 변했다고 강조한다. 과거에는 드리블과 천재적인 개인기가 승부를 갈랐지만 이제는 체력과 신체 능력이 훨씬 중요하다. 또 세계 최대 축구 시장인 유럽이 브라질 대표팀의 정체성까지 결정하고 있다.
브라질 대표팀에 복음주의 선수가 많은 것은 이전에도 그랬다. 1994년 월드컵 우승 멤버 가운데 골키퍼 클라우지우 타파레우와 수비수 조르지뉴 등 7명이 복음주의 기독교인이었다. 이들은 결승전에서 이탈리아를 승부차기로 꺾은 뒤 경기장 중앙에서 함께 기도하는 모습으로도 유명했다. 2007년 세계 최고의 선수에게 주는 발롱도르를 수상한 카카도 브라질 축구를 대표하는 복음주의 선수 가운데 한 명이었다.
우승 실패의 원인으로 등장한 복음주의도 최근에는 브라질에서 성장 속도가 다소 둔화하고 있다. 페이토자 교수는 “세대가 바뀌면서 신자들이 브라질 문화와 관계를 맺는 방식도 달라지고 있다”고 설명한다. 찬양 음악과 같이 복음주의 문화는 이제 브라질 대중문화의 일부가 되었다. 가톨릭이 다수인 사회와 복음주의 사이의 긴장도 과거보다 상당히 약해졌다. 페이토자 교수는 “지금 복음주의 신자가 되는 것은 2000년이나 1990년대 후반과는 분명히 다르다”고 지적한다.
페이토자 교수는 두 종교를 지나치게 구분해서도 안 된다고 말한다. 복음주의의 특징으로 여겨지는 것들은 브라질 가톨릭에서도 수용하고 있다. 축제 같은 가톨릭 문화와 엄격한 복음주의 문화라는 대비 역시 현실에서는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
축구, 특히 월드컵은 언제나 단순한 스포츠 이상이었다. 국가 정체성과 문화적 서사를 함께 담아내는 상징이기도 하다. 특히 브라질에서는 대표팀의 명성이 국가의 소프트파워이자 국가 정체성의 핵심 축이다. 24년 동안 우승을 하지 못하고 뚜렷한 회복 조짐도 보이지 않는 현실은 브라질 국민들에게 너무 길고 고통스러운 '제줌(금식)'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
대표팀 내 복음주의 선수 비율이 증가한 시기와 성적이 하락한 시기가 비슷하게 겹치는 것은 사실이지만 전문가들은 이를 단순한 우연으로 본다.
복음주의 확산이 브라질 축구 부진을 설명하는 이론이 근거가 부족함에도 큰 공감을 얻고 있는 것은 축구 이상의 상실감을 설명하려는 브라질인들의 심리일 수도 있다. 브라질 축구가 도대체 왜 이렇게 됐는지 뭐라도 납득할 만한 이유가 필요했을 것이다.사람들은 월드컵 우승만이 아니라 한때 압도적 다수를 차지했던 가톨릭 중심의 브라질도 잃어버렸다고 느낄 수 있다. 전문가들은 종교와 축구를 연결하려는 시도는 해프닝일 수 있지만 브라질은 여전히 신앙과 축구의 정체성을 만들어 가고 있다고 진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