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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가위바위보

Los Angeles

2026.07.27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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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하영 / 수필가·소설가·디카시인

박하영 / 수필가·소설가·디카시인

사람들은 같은 이야기를 하면서도 서로 다른 세상을 보고 있었다. 소그룹 모임의 대화는 월드컵 축구에서 시작해 군대, 한국과 미국의 삶, 그리고 가족 이야기로 이어졌다. 서로 다른 생각이 오갔지만, 누구도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  
 
커피가 놓이자 잠시 침묵이 흘렀고, K씨가 입을 열었다. 그는 한국에서 살아보고 싶어 3년 전 석 달 동안 여러 지역을 둘러보다 결국 미국으로 돌아왔다고 했다. 생각보다 땅이 좁게 느껴진 것도 이유였지만 정작 그를 힘들게 한 것은 사람들과의 거리감이었다. 고등학교 동창들이 서로를 이름 대신 ‘O박사’, ‘O교수’라고 부르는 모습이 가장 낯설었다는 것이다. 친구 사이에도 사회적 직함이 먼저 오는 문화가 불편했다고 했다.
 
반면 B씨는 친한 지인을 이름으로 부르는 것이 오히려 어색하다고 했다. 내게는 친근함의 표현이었지만 그에게는 예의를 덜 갖춘 호칭처럼 들렸던 모양이다.  
 
“미국에서는 그게 더 자연스러워요.” K씨가 웃으며 내 편을 들었고, 농담처럼 B씨를 향해 “꼰대네요”라고 덧붙였다. 같은 이름을 부르는 일인데도 자라온 문화와 삶의 방식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가 된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B씨는 아내와 20년 넘게 떨어져 살고 있었다. 그는 미국에서 일하며 생활비를 보내고, 아내는 한국에 남아 지내고 있었다. 한동안 조용히 듣던 K씨가 물었다.
 
“내일 당장 죽어도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습니까?”
 
모두의 시선이 B씨에게 향했다. K씨는 성경 말씀을 인용하며 부부는 함께 살아야 한다고 말했다. 잠시 생각할 줄 알았던 B씨는 망설임 없이 답했다. “그럼요. 난 후회 없어요.”
 
나는 그 대답을 지금의 삶에 대한 만족으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K씨는 달랐다.  
 
“몸이 떨어져 있는데 어떻게 함께 사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까?”
 
잠시 공기가 무거워졌다. 혹시 언성이 높아질까 싶었지만 B씨는 그의 말을 끊지 않았다. 설명도 설득도 하지 않은 채 끝까지 들었다. 그제야 그의 침묵이 이해되었다. 사람은 저마다 다른 길을 걸어왔는데 우리는 자꾸 같은 지도를 들이민다. 나 역시 그런 경험이 있다. 내 사정을 잘 안다고 믿는 사람들이 쉽게 조언을 건넬 때가 있었다. 그들의 말이 틀려서가 아니라 내 삶을 다 안다고 믿는 태도가 버거웠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문득 손을 내려다보았다. 가위처럼 잘라내야 할 것도 있었고, 바위처럼 버텨야 할 것도 있었으며, 보처럼 품어야 할 것도 있었다.
 
살아간다는 것은 어쩌면 가위바위보를 배우는 일인지도 모른다.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서로 다른 삶을 받아들이는 법을 익혀가는 일.

박하영 / 수필가·소설가·디카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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