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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채 1000인분, 소금알약…공장 몰린 울산 산업현장의 폭염 사투

중앙일보

2026.07.27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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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철소를 운영하는 LS MnM 온산공장 근로자들이 폭염 속에 작업을 하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일정 기온 이상이 되면 전 직원에게 알림톡을 보내 수분 섭취와 휴식을 안내하고, 필요하면 옥외 작업도 중지한다"고 설명했다. 사진 LS MnM

제철소를 운영하는 LS MnM 온산공장 근로자들이 폭염 속에 작업을 하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일정 기온 이상이 되면 전 직원에게 알림톡을 보내 수분 섭취와 휴식을 안내하고, 필요하면 옥외 작업도 중지한다"고 설명했다. 사진 LS MnM

“작업복을 손으로 짜면 땀이 흘러내릴 정도입니다.” 낮 최고기온이 35도를 기록한 지난 24일 오후 6시쯤 울산 동구 HD현대중공업 조선소 앞. 조선소에서 퇴근하는 근로자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작업복을 벗고 반소매와 반바지로 갈아입은 근로자들의 얼굴에는 온종일 이어진 폭염과 작업의 피로가 고스란히 묻어났다. 조선소 현장에서 일하는 김모(43)씨는 "오늘 종일 땀에 젖어 있었다고 보면 된다"고 했다. 여름 햇볕을 받은 선박 철판의 표면 온도는 50도를 웃돈다. 용접 작업자는 1200도가 넘는 불꽃과 열기를 가까이에서 견뎌야 한다. 작업복과 안전화, 안전모, 보안경 등 보호 장비를 착용하고 작업을 시작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속옷까지 흠뻑 젖는다. 그는 “쉬는 시간이 되면 회사가 마련한 에어컨이 있는 곳부터 찾아가 누워 있다”며 “이번 여름 더위는 늦게 시작했지만, 몸으로 느끼는 강도는 예년보다 훨씬 심한 것 같다”고 말했다.
화채는 나눠 먹는 HD현대중공업 직원들. 회사에선 폭염 예방책 일환으로 화채를 나눠주고 있다. 사진 HD현대중공업

화채는 나눠 먹는 HD현대중공업 직원들. 회사에선 폭염 예방책 일환으로 화채를 나눠주고 있다. 사진 HD현대중공업


폭염이 본격화하면서 대기업 공장이 밀집한 울산 산업현장에 비상이 걸렸다. 조선소와 자동차 공장, 정유·석유화학단지, 제련소 등에서는 휴게시간을 늘리고 냉방시설을 보강하는 등 온열질환 예방에 힘을 쓰고 있다. 얼음물과 냉방조끼, 화채와 보양식까지 동원하며 현장 근로자들의 체력 관리에 나선 분위기다.

HD현대중공업은 다음 달 31일까지 점심시간을 평소보다 30분 연장한다. 체감온도가 33도 이상이면 휴게시간도 기존 10분에서 20분으로 늘린다. 선박 위에는 별도의 휴게실을 설치했다. 이동식 버스 휴게실과 그늘막, 몽골 텐트 등 270여 곳의 쉼터를 운영하고 있다. 제빙기와 이동식 에어컨도 추가 배치했다. 현장 근로자에게는 얼음물과 식염포도당, 팬 조끼 등 폭염 대응 물품을 지급 중이다. 오는 9월 초까지는 한 번에 1000인분 규모의 화채를 제공하는‘찾아가는 간식차’도 운영에 들어갔다.

뜨거운 기름과 가스를 다루는 정유·석유화학 업계도 폭염 대응을 강화하고 있다. 국내 최대 규모의 정유·석유화학 생산기지인 SK 울산CLX는 폭염주의보가 발령되면 근로자에게 매시간 10분, 폭염경보 때는 15분의 휴식시간을 더 보장하는 폭염 대응체계를 가동했다. 작업장 인근에는 얼음물과 식염정을 비치하고 냉방복과 아이스팩 조끼 착용을 규정화했다. 폭염경보가 내려지면 기온이 가장 높은 오후 1~3시 작업을 최대한 피하고 조기 작업이나 야간작업으로 전환한다. 회사 관계자는 “근로자들의 체온과 건강 상태도 수시로 확인하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에쓰오일 울산공장에 마련된 근로자 휴게소. 제빙기 설치 위치 등을 알리는 안내판이 보인다. 사진 에쓰오일

에쓰오일 울산공장에 마련된 근로자 휴게소. 제빙기 설치 위치 등을 알리는 안내판이 보인다. 사진 에쓰오일


에쓰오일 울산공장은 얼음컵과 이온음료, 폭염 대응 키트를 지급하고 주 1회 삼계탕 같은 보양식과 수박을 제공 중이다. 1200도가 넘는 용광로를 운영하는 LS MnM 온산공장은 아이스크림과 비타민, 식염포도당 등을 현장에 마련했다. 일정 기온 이상이 되면 전 직원에게 알림톡을 보내 수분 섭취와 휴식을 안내하고, 필요하면 옥외 작업도 중지한다. 현대자동차 울산공장도 생산라인 곳곳에 제빙기를 운영하고 매일 보양식과 빙과류를 제공하고 있다.

이처럼 기업들이 폭염 대응 수위를 높이는 것은 울산의 여름이 갈수록 길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울산연구원이 기상청 자료를 분석한 결과 지난해 울산의 여름일 수는 121일로 집계됐다. 여름일 수는 하루 평균기온이 20도 이상인 날이 이어지는 기간을 뜻한다. 1995년보다 16일, 1975년보다 23일 늘었다. 폭염일 수와 열대야 발생일수도 증가하는 추세다.

길어진 여름은 산업현장 근로자의 건강도 위협하고 있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지난해 울산의 인구 10만 명당 온열 질환자는 17.2명으로 전국에서 두 번째로 많다. 공장과 야외 작업장이 많아 폭염에 노출되는 현장 근로자가 많은 지역적 특성이 반영된 결과로 분석된다.
LS MnM 직원이 폭염이 이어지고 있는 15일 울산 울주군 LSMnM 온산제련소 제련 1공장에서 구리물이 틀에 잘 들어갈 수 있도록 긴 작대기로 다듬고 있다. 뉴스1

LS MnM 직원이 폭염이 이어지고 있는 15일 울산 울주군 LSMnM 온산제련소 제련 1공장에서 구리물이 틀에 잘 들어갈 수 있도록 긴 작대기로 다듬고 있다. 뉴스1


폭염 때면 울산에서는 ‘7말8초’로 불리는 집단 여름휴가 풍경이 나타난다. HD현대중공업과 현대자동차 등 대규모 사업장이 같은 시기에 휴가에 들어가면서 산업도시 울산은 텅 빈다. 울산 인구 110만여 명 가운데 30여만명이 현대 관련 종사자와 가족인 만큼 지역 상권도 함께 휴가에 들어가는 곳이 적지 않다. 시내버스 일부 노선도 감차 운행한다.

울산시는 산업현장의 폭염 피해를 줄이기 위한 대응 기반 구축에 나섰다. 정부 공모사업을 통해 인공기후실(챔버) 등을 갖춘 재난안전산업 진흥시설을 조성할 계획이다. 이 시설에선 폭염 대응 안전제품과 제품 기술의 성능시험·평가·인증을 지원한다. 또 울산과학기술원(UNIST) 폭염연구센터와 협력해 인공지능(AI) 기반 국지성 폭염 데이터 구축과 산업현장 맞춤형 대응기술 개발도 추진할 예정이다.
울산 남구의 한 교차로 모습. 현대 관계사가 집단 여름휴가에 들어가면서 평소 차량으로 북적이던 도로가 한산하다. 사진은 2023년 여름 촬영된 것이다. 김윤호 기자

울산 남구의 한 교차로 모습. 현대 관계사가 집단 여름휴가에 들어가면서 평소 차량으로 북적이던 도로가 한산하다. 사진은 2023년 여름 촬영된 것이다. 김윤호 기자


김혜린 UNIST 폭염연구센터 연구원은 “기후변화로 폭염은 이제 계절적인 불편을 넘어 산업현장의 안전을 위협하는 재난으로 바뀌고 있다”며 “조선·자동차·석유화학 등의 현장에서는 고온·다습한 환경에 복사열까지 더해져 체감온도가 더 높고 온열질환 위험도 큰 만큼 휴식시간 확대뿐 아니라 작업시간 조정과 냉방설비 확충, 실시간 온열 위험관리까지 종합적인 대응체계를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김윤호([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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