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로소프트(MS)와 메타·아마존 등 미국 빅테크의 실적 발표가 잇따르는 ‘슈퍼위크’가 시작되면서, 월가의 관심은 인공지능(AI) 투자 규모에서 투자 효율성으로 옮겨가고 있다. AI에 얼마나 많은 돈을 쏟아붓느냐보다, 투자금을 얼마나 빠르게 매출과 현금 흐름으로 회수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다. 애플이 엔비디아를 제치고 세계 시가총액 1위를 탈환한 배경이기도 하다.
27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증권거래소(NYSE) 트레이들이 일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27일(현지시간) 미국 증시에서 애플 시가총액은 약 4조9500억 달러를 기록하며 엔비디아(약 4조7600억 달러)를 앞질렀다. 이날 애플 주가는 1.17% 오른 반면 엔비디아는 4.99% 하락했다. 애플이 종가 기준으로 엔비디아를 제치고 시가총액 1위에 오른 것은 지난해 4월 이후 처음이다.
미 경제매체 CNBC는 “애플이 자체 데이터센터를 대규모로 구축하기보다 외부 설비를 임대하는 방식을 택하면서 막대한 AI 자본지출(CapEx)을 피한 점이 긍정적으로 평가받고 있다”고 분석했다. 올해 들어 애플 주가는 약 24% 상승한 반면 엔비디아는 4% 오르는 데 그쳤다. 애플은 오는 30일(현지시간) 3분기 실적을 발표한다. 김석환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시장의 평가 기준이 얼마나 많이 투자하는가에서 투자비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회수하는가로 바뀌고 있다”며 “애플은 경쟁사처럼 대규모 AI 자본지출을 하지 않아도 안정적인 현금 흐름을 유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방어적 빅테크로 재평가받고 있다”고 분석했다.
엔비디아를 둘러싼 ‘순환 금융’ 논란도 투자 심리를 흔들었다. 파이낸셜타임스(FT)와 블룸버그에 따르면 엔비디아는 최근 SK그룹과 5000억 달러 규모의 사업 협력을 발표한 데 이어, 오픈AI의 미 데이터센터 프로젝트에는 최대 2500억 달러 규모의 지급보증을 논의하는 등 AI 생태계에 대한 투자와 금융 지원을 잇달아 확대하고 있다. 시장에서는 공급업체인 엔비디아가 고객사의 자금 조달을 지원하고, 고객사는 다시 엔비디아 AI 칩을 구매하는 구조가 AI 수요와 기업가치를 인위적으로 부풀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빌리 렁 글로벌X 매니지먼트 투자전략가는 “오픈AI 데이터센터 부채 보증은 이미 논란이 된 공급업체 금융 우려를 더욱 키우고 있다”며 “AI 인프라 구축 과정의 자금 조달 부담을 보여주는 동시에 수요가 여전히 견조하다는 신호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시장의 관심은 AI 투자 규모보다 투자비가 실제 매출과 잉여현금흐름(FCF)으로 얼마나 빠르게 연결되는지에 쏠리고 있다. 이번 주 3분기 실적을 발표하는 MS와 메타, 아마존도 같은 잣대 위에 오를 전망이다. 글로벌 하이퍼스케일러들의 올해 AI 관련 자본지출은 약 7000억 달러로 추산되며, 월가에서는 내년 1조 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한다.
신용시장에서도 AI 투자 부담을 우려하는 신호가 감지된다. FT에 따르면 오라클의 5년물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은 144bp(1bp=0.01%포인트)에서 215bp로 급등했고, 엔비디아(79bp)와 알파벳(67bp)도 최근 사상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CDS 프리미엄은 기업의 부도 위험을 반영하는 지표로, 수치가 오를수록 시장이 신용위험을 높게 본다는 의미다.
마니시 카브라 소시에테제네랄 미국 주식전략 책임자는 “하이퍼스케일러는 주당순이익(EPS)이 아니라 CDS를 봐야 한다”며 “AI 자본지출이 현금창출 속도를 앞지르면서 잉여현금흐름을 경기 순환상 저점 수준까지 끌어내리고 있다”고 진단했다. 조지 카트람본 DWS 미국 채권 리서치 총괄은 “실적 발표를 통해 드러나는 자본지출 규모를 보면 헤지(위험 회피)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며 “아직 AI 투자 수익성이 입증되지 않은 상황에서 대규모 부채가 발행되고 있어 시장의 검증도 더욱 엄격해지고 있다”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