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산업단지에서 15년간 음식점을 운영해 온 A씨는 경기 침체로 매출이 급감하고 친척에게 빌려준 돈마저 돌려받지 못하면서 기존 대출 상환이 어려워졌다. 결국 금융권 대출이 막혔고, 마지막으로 찾은 대부업체에서도 대출을 거절당했다. A씨는 “대부업체에서도 안 된다는 말을 듣는 순간 이제는 어디에도 기댈 곳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털어놨다.
A씨처럼 신용도가 낮아 대부업체 문을 두드린 사람의 60% 가까이가 대부업체로부터도 거절 당한 경험이 있었다. 28일 서민금융연구원은 지난 5월 11일부터 27일까지 최근 3년 이내 대부업이나 불법사금융을 이용한 경험이 있는 저신용자(신용등급 6~10등급) 977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더니 이 같은 결과가 나왔다고 밝혔다. 대부업체에서도 대출이 막힌 저신용자가 불법사금융으로 내몰리는 등 ‘금융 사각지대’가 커지고 있었다.
최근 서울 길거리에 붙어있는 대출 전단. 연합뉴스
이번 설문 조사 결과 응답자의 59.4%는 등록 대부업체에서 대출을 거절당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등록 대부업체에서 대출을 거절당한 차주의 50.7%는 필요한 자금을 끝내 마련하지 못했다. 신용평점 하위 50% 차주의 대부업 대출 승인율도 지난해 9.1%로 전년보다 0.5%포인트 하락했다.
김경진 기자
대부업체에서 밀려난 저신용자 상당수는 불법사금융으로 이동한 것으로 추정됐다. 연구원은 지난해 대부업을 이용하던 저신용자 가운데 불법사금융으로 이동한 인원을 5만9000명에서 11만9000명 수준으로 추산했다. 이들의 불법사금융 이용 금액은 7600억~1조5500억원으로 예상됐다. 2024년 이용 인원(2만9000~6만1000명)과 이용 금액(3800억~7900억원)과 비교해 모두 두 배 가까이로 늘어난 규모다. 연구원은 대부업체 대출 데이터와 저신용자 설문 결과를 종합해 추정치를 산출했다고 설명했다.
김경진 기자
등록 대부업체에서 대출을 거절당한 뒤 정책서민금융으로 연결되는 비율은 오히려 감소했다. 정책서민금융을 이용했다는 응답은 2023년 16.6%, 2024년 17.0%에서 지난해 12.0%로 떨어졌다.
청년층의 신용위험이 특히 두드러졌다. 20대는 등록 대부업체와 불법사금융을 동시에 이용한 비율이 8.9%로 모든 연령대 가운데 가장 높았다. 전체 응답자 가운데 불법사금융인 줄 알고 빌렸다는 응답은 2023년 77.7%에서 지난해 50.9%로 급감했다. 이용자의 절반가량은 불법업체인지 모른 채 돈을 빌렸다는 의미다.
저신용자가 밀려나는 사이 대부업권 전체 대출은 증가세를 보였다. 지난달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대부업 대출잔액은 13조1402억원으로 같은 해 6월 말(12조4553억원)보다 6849억원(5.5%) 증가했다. 대부업 이용자도 같은 기간 71만7000명에서 73만1000명으로 약 1만4000명 늘었다.
이와 관련, 조성목 서민금융연구원장은 “제1금융권의 대출 문턱이 높아지면서 상대적으로 신용도가 양호한 차주들이 제2금융권과 대부업체로 이동하는 현상이 나타났고, 이에 따라 기존에 대부업체를 이용하던 저신용자들은 제도권 금융의 가장자리에서조차 밀려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금융당국은 대부업 대출 증가를 1·2금융권 대출 규제에 따른 풍선효과로 해석하는 데는 선을 그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불법사금융 이동 규모를 객관적으로 특정하기 쉽지 않고 여러 변수가 있는 만큼 규제의 직접적인 영향으로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