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도가니 속이다. 어제는 올해 들어 처음으로 매미가 우는 소리를 들었고 오늘은 낮게 떠서 놀고 있는 잠자리를 보았다. 도서관 열람실에 앉아 신문을 펼치니 초등학교의 여름방학이 시작되었고 올여름 피서지로는 동해안이 가장 인기라는 뉴스가 눈에 먼저 들어왔다.
창밖 하늘의 장마 구름은 서쪽에서 동쪽으로 꾸역꾸역 밀려가고 있다. 이번 장마는 이상하게도 오전에는 해가 반짝 떠서 뜨겁고 오후에는 비가 쏟아졌다. 밤에는 덥고 축축해서 선풍기와 에어컨을 켰다가 끄기를 반복하며 뒤척거렸다. 폭염과 폭우가 마치 사이좋은 친구인 것처럼 손잡고 있는 듯하다. 그나저나 피서라…. 매일 놀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전업 소설가에게 피서는 좀 염치없지 않나.
피서지 같았던 산골 마을 도서관
도시의 여름밤은 지루한 도가니
빵틀 찾아 헤매던 한 아이 그리워
작년 여름에는 운 좋게도 인도네시아의 이곳저곳을 둘러봤다. 더운데 더 더운 나라로 피서를 떠난 거였다. 여행의 마지막 경유지는 작은 섬의 바닷가였다. 거북이가 노닌다는 바다에 들어가기 위해서였는데 불행하게도 나는 물에 뜨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함께 간 번역가의 꼬임에 말려 호텔 풀장에서 수경을 쓰고 스노클을 입에 문 채 이틀간의 연습을 마친 뒤 작은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갔다. 거북이를 만나기 위해. 구명조끼와 처음 신어 보는 오리발까지 장착한 채 출렁이는 바다로 뛰어들었다. 이런 젠장, 구명조끼의 단추가 풀렸는데 다시 채워지지 않았다. 수경으론 물이 들어왔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발이 바닥에 닿지 않았다. 짠물을 마시며 허겁지겁 배로 돌아왔다. 다음 포인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들어갔다가 겁에 질려 이내 나왔다. 마지막 포인트에선 배에 앉아 거북이를 찾아 헤엄치는 사람들을 부러운 얼굴로 구경만 했다.
생각해 보니 소설가로 살아온 세월 내내 나의 피서지는 시골도서관 열람실이었다. 글을 쓰고, 책을 읽고, 식곤증이 몰려오는 오후면 국어사전의 이응이 시작되는 페이지를 베개 삼아 펼쳐놓고 짧은 낮잠을 청했다. 꿈도 꾸면서. 어떤 꿈에선 도서관이 작은 무인도에 있는 등대로 변하기도 했다. 그 등대로 헤엄쳐간 나는 홀로 갇혀 있었고(꿈에서는 수영선수나 다름없었다). 또 어느 꿈에선 도서관 옥상에 올라가 국기 게양대 아래에다 강낭콩을 심었는데 너무나 빠른 속도로 게양대를 감고 올라가는 게 아닌가. 콩나무처럼. 나는 울긋불긋한 강낭콩을 손에 쥐고 내려와 열람실 책상 위에 뿌려놓고 들여다보았다. 마치 밤하늘의 별자리를 헤듯. 한여름이었는데도 도서관 밖에는 사람의 키를 덮을 정도로 폭설이 내린 적도 있었는데 이용객은 나 혼자였다. 잠에서 깨어나면 나는 입가에 묻은 침을 닦아내고 자판을 두드려 꿈의 내용을 기록했다. 그렇게 열다섯 번의 여름을 산골 마을의 도서관에서 보내고 도시로 떠났다. 피서지에서 돌아오듯.
산골 출신인 내게 도시의 여름은, 특히 무더운 여름밤은 지루하기 이를 데 없다. 마당이 없는 아파트여서 더 그렇다. 시골집에선 잠이 오지 않으면 마당에 나가 하늘의 별들을 바라보았다. 담장 옆의 사과나무와 해바라기, 접시꽃, 콩노굿을 살폈다. 꼬리를 흔드는 개와 놀아주었다. 횟대에 올라가 잠을 자는 닭들에게 잠이 잘 오냐고 말을 걸었다. 여름이면 외양간이 아니라 담 밖 마장에서 잠을 자는 어미 소와 송아지에게 다가가 이마를 쓰다듬어주었다.
그러나 지금 나의 아파트에는 하늘과 꽃밭, 텃밭, 개와 닭, 소가 없다. 책상과 의자는 있지만 더 이상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 여름밤이다. TV를 들여놓지 않은 걸 비로소 후회하는데 다음 날이 되면 마음이 바뀐다. 결국엔 잠자리로 돌아가 잠이 올 때까지 핸드폰을 들여다본다. 그렇게 뒤척이던 깊은 밤, 집이 도서관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엉뚱한 상상을 하다가 무릎을 쳤다. 그래, 지금 이 집이 도서관이고 나는 관장이다. 이 지루함이 나의 최전선이고 그것을 즐겁게 기록해야 한다고 다짐하다가 잠이 들었다.
여름의 도가니 속에서, 창밖의 장마 구름을 바라보며 상상할 수는 있지만 돌아갈 수 없는 시절을 헤아린다. 장맛비가 쏟아지던 어느 여름, 이웃집에 빌려준 빵틀을 찾아 찢어진 우산을 쓰고 마을을 헤매는 한 아이가 먹구름과 뭉게구름 사이에 나타났다가 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