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고 지내던 검사에게서 연락이 왔다. 변호사로 새 출발 한다는 인사였다. 정치적 편향성을 보이지 않던 그는 법무부, 대검찰청 등을 두루 거친 ‘S급’ 인재였다. 지난해 11월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에 반발했다는 기사가 검사로서 처음이자 마지막 공개 행보였다.
인사철에 주로 접했던 이런 소식이 근래엔 평소에도 꾸준히 들린다. 2022∼2024년 140명 안팎이었던 검사 퇴직자는 지난해 175명에 달했다. 올해 들어서도 지난달까지 약 80명이 떠났다.
여권 보완수사권 논의 일방적
국민여론과 통계는 ‘유지’쪽
검사 혐오가 합리적 대안 막아
검사들의 엑소더스는 10월 공소청과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이 출범하고, 검찰청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이유가 크다. 공소청이나 중수청을 택해야 하는데, 수사권한과 기소권한을 둘 다 가진 현재와 크게 다른 환경에서 일해야 한다. 그나마 공소청에 소속돼 보완수사권을 갖고 기소 전 중수청이나 경찰·특별사법경찰관의 수사를 보완 수사할 수 있기를 바라는 검사들이 많지만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하는 대로라면 이마저도 어렵다.
각종 여론조사 결과는 민주당의 방향과 다르다. 한국갤럽 조사에서는 응답자 61%가 경찰 견제와 부실수사 방지를 위해 검사의 보완수사권을 유지해야 한다고 답했다. 개혁신당 자체 조사에서는 65.5%가, 검찰 개혁을 주장해오던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회원 설문에서도 67%가 같은 의견이었다.
이런 결과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사례들은 상당하다. 광주 여고생 살해범 장윤기에 대한 수사를 검찰이 다시 하면서 드러나고 있는 경찰의 축소·은폐 내용이 대표적이다. 검찰의 유전자(DNA) 재감정을 통해 살인미수뿐 아니라 강간살인미수 혐의가 추가된 ‘부산 돌려차기 사건’이나 경찰이 상해치사 혐의로만 결론 내렸던 걸 검찰이 다시 직접 수사해 피의자들을 살인 혐의로 구속기소 한 ‘고 김창민 감독 사건’도 있다.
통계도 같은 쪽을 가리킨다. 경찰이 불송치 결정하는 사건이 2021년 약 39만건에서 지난해 약 59만건으로 49% 증가했는데, 이 중 검찰이 직접 보완수사를 하거나 경찰에 보완수사를 요구한 뒤 기소한 사건이 2021년 528건에서 지난해 1130건으로 늘었다. 검찰의 2차적 움직임이 없었다면 묻힐 사건들이었다. 이런 이유에서인지 정성호 법무부 장관뿐 아니라 이재명 대통령도 공개 석상에서 보완수사권의 예외적 허용이 필요하다고 밝혀 왔다.
그럼에도 검사의 보완수사를 철저히 막겠다는 이들의 의식 속에는 일종의 ‘검사 혐오증(공포증)’이 자리 잡고 있는 듯하다. 심리학·의학적으로 이런 증상은, 다른 사람들이 볼 때는 별 문제가 되지 않는데 자신만이 주관적으로 과도하게 느끼는 게 특징이다.
추미애 경기도지사는 민주당 내에서 검사의 보완수사권을 일부 인정하자는 의견이 나오자 “가장 반민주적 검찰 제도로 회귀할 위험성이 농후한 내용”이라고 비판했다. 독일과 일본 검사는 직접 수사하지 않는다면서다. 하지만 검사의 수사 권한을 규정하는 독일과 일본의 형사소송법 조항과 수사 사례들이 법조계에서 제시됐다.
지난 16일 국회에서 열린 ‘보완수사권 존치, 왜 문제인가?…’ 토론회에서 한 참가자는 “5년이고 10년이고 기다렸다가 상황이 바뀌고 정부가 바뀌면 지금의 검찰청으로 탈바꿈해 가혹하게 수사권을 행사해 보복하겠다는 전략이 밑바탕에 깔렸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견제 장치 없이 막강한 권한을 휘둘렀던 과거 검사의 위상이 달라지지 않았다는 걸 전제로 한 발언이다. 수사권이 경찰 중심으로 재편되면 정부가 바뀌고 나서 ‘경찰은 정권의 입맛에 맞게 가혹하게 수사권을 행사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도 있어야 가능한 말이다. 과도하게 검사만을 혐오나 공포의 대상화한 느낌이다.
처방전은 따로 없지만, 치유책으로 의학·심리학 전문가들은 차분한 접근과 이해를 주문한다. 『포비아』(2015)의 저자 사라 라타는 공포증이나 혐오증을 치료하는 데 효과 좋은 방법은 해당 대상에 서서히 노출되는 것이라고 권유한다.
보완수사권 논의는 검찰청이 없어지면서 생길 변화에 따른 혼란을 최소화하자는 취지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과거와 달라지고 있는 검사들의 모습이 어떤지, 어떤 기능을 어느 정도 갖췄는지 차분히 점검해봐야 적절한 대안을 찾을 수 있다. 이미 10만 건을 훌쩍 넘긴 미제 사건 서류들이 검사들 방에 쌓여있는데 떠난다는 검사들 소식은 줄 잇고 있다. 이 때문에 사건 처리가 늦어지며 피해 보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이에 대한 대책도, 장윤기 사건과 같은 경찰의 부실·은폐 수사를 막는 제도도 ‘검사 혐오증’을 치유해야 제대로 마련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