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를 늘려보고 싶은 마음에 경매 법정을 찾은 A목사. 주변에서 경매 전문가라는 안 박사를 만난다. 그로부터 1000억원 빌딩을 소유할 기회인데 4억원이면 된다, 계약금 100억원 잔고증명은 자신들이 마련하겠다는 말을 듣는다. 요약한 활자를 보니 사기인 줄 알 것이다. 청산유수인 안 박사의 말, 때때로 등장하는 조력자들 때문에 A목사는 짐작도 못 했다. 4억원 외에도 이런저런 돈을 건넨 게 7년이다. 그러다 돈을 빌린 신도로부터 고소를 당하게 되자 A목사는 자신이 쓴 게 아니란 걸 입증해야 할 처지가 됐다.
'개혁' 미명하 미로 같은 수사 체계
땜질한들 돈 먹는 구조 안 달라져
결국 '검찰 민영화’, 어쩌자는 건가
무엇을 할 것인가. 과거엔 고소하면 경찰·검찰이 알아서 했다. 이제 앞엔 문재인·이재명 정부를 거치면서 만들어놓은 거대한 수사 흐름도가 있다. 매 단계 노력(본인은 물론 변호인, 결국 돈)을 요하는 장벽을 넘어야 해 ‘흐름’으로 보긴 어렵지만 편의상 그 표현을 유지한다.
A목사에겐 첫 단계부터 기로였다. 경찰이 제대로 수사할까. 사실상 경찰이 수사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소장을 잘 써야 한다는데 ‘수사하는’ 변호사를 써야 하나. 비싼 돈을 들인들 피해액 중 얼마나 회수할 수 있을까. 경찰이 혐의 없다고 불송치하면 어쩌지. 암장(暗葬)되는 건 아닐까. 그러다 A목사는 위안을 삼을 것이다. 경제적 착취를 당한 거지, 노인 학대다. 내가 예순다섯인 게 얼마나 다행인가. 예순넷이었다면 검찰에 송치도 안 될 텐데…. 그나저나 경찰이 제대로 수사 안 하면 검사가 언론에 제보해줄까.
한병도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가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민을 위한 형사사법체계 개혁 형사소송법 개정안 공청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A목사는 주저한다. 안 박사가 소개한 인물 중 국가정보원 국장이 있으니 혹여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나을까. 명동 전주도 있지. 피해자가 또 있지 않을까. 분명 피해 금액이 5억원을 넘을 테니 중대범죄수사청? 다른 피해자는 어떻게 수소문하지….
검수완박(검찰수사권 완전 박탈)에 이은 검찰청 폐지, 공소청·중수청 신설 등 더불어민주당이 밀어붙인 ‘검찰개혁’은 이처럼 이해불능·난공불락의 수사 흐름도 안으로 국민을 떼밀었다. 8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당내 강경파만 보고 검사의 보완수사권 폐지를 확정했다가 일반 여론이 좋지 않게 돌아가자 7대 범죄(성범죄·아동성범죄·아동학대·가정폭력·스토킹·장애인학대·노인학대)를 '사회적 약자' 대상 범죄로 규정해 검찰로 모든 기록을 넘기도록(전건 송치) 하는 땜질도 했다. 사기 당한 장애인이나 유괴 당한 아동은 사회적 약자 아닌가, 다른 범죄·연령대 피해자는 왜 달라야 하나, 의문이 꼬리를 물지만 그리했다.
형사부 검사 출신의 김웅 전 의원은 예전에 “앞으로 각종 수사 절차가 끝없는 무한궤도처럼 되돌이표가 될 수 있다는 게 무서운 것이다. 이 많은 절차마다 변호사 비용이 들어가야 돌아간다. 결국 돈 없고 ‘빽’ 없으면 줄 타다 지쳐 죽는 것”이라고 했는데 공감한다. 국가(검·경)가 무료로 해주던 서비스를 이젠 돈을 써 돌려야 한다. 동료 언론인은 “검찰의 민영화”(임찬종)라고 했다. 민영화라면 무조건 반대하던 민주당 아니던가.
공소청·중대범죄수사청 출범시 수사 예상 흐름도 그래픽 이미지.
영국 특파원 시절, 도난 당해도 신고도 안 하는 걸 보고 의아했다. 그때 “경찰이 살인범은 잘 잡아도 도둑은 안 잡는다”는 설명을 들었다. 어쩌면 우리도 그런 시대가 되는지 모르겠다. 돈이 있어야 줄을 타고 줄을 타야 단죄(피해 구제)할 수 있다. ‘유전유죄(有錢有罪)’다. 웬만한 이들은 포기하고 감내할 것이다. 감내할 여력이 없는 이들-민주당이 약자로 보지 않는 약자들-조차 더더욱.
A목사 얘기는 김 전 의원의 『검사 내전』에 있는 사례다. 이 수법을 개발한 명동 전주는 사기 전력 75회인데 그중 68건을 불기소처분 받았다고 한다. 검사 김웅에게 올 때도 ‘혐의 없음’이었다. 방대한 범죄 조감도를 그린 후에야 사기 전모가 드러났다고 한다. 그 사이 A목사는 모든 재산을 잃었고 이혼했고 그 충격에 뇌졸중으로 걷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게 됐다. 사기꾼들은 그나마 처벌 받았다. 과거 좋은 시절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