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드 인 차이나’가 반도체 생산장비 업계까지 파고들었다. 중국이 미국의 통제로 구하기 어려워진 노광장비를 직접 만들고 나서면서 한층 빨라진 중국의 ‘반도체 홀로서기’가 국내 업계의 장기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28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은 중국 국영기업인 ‘상하이 아이성나전자기술그룹’이 자체 개발한 침지형(immersion) 심자외선(DUV) 노광장비 생산에 돌입했다고 보도했다. 올해 5대 출하, 내년 20대 생산이 목표다. 장비는 중국 파운드리 업체인 SMIC와 화훙반도체, D램 업체 창신메모리(CXMT) 등에 공급될 예정이다. 2023년 설립된 이 기업은 중국 주요 노광장비 업체들의 개발 조직을 한데 모아 출범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주원 기자
노광장비는 반도체 웨이퍼 위에 빛을 쏴 미세한 회로를 새기는 핵심 장비다. 회로를 더 촘촘하게 구현할수록 반도체 성능은 높아지고 전력 소모는 줄어든다. 사용하는 빛에 따라 심자외선(DUV)과 극자외선(EUV) 장비로 나뉘는데, 이 가운데 침지형 DUV는 렌즈와 웨이퍼 사이를 물로 채워 일반 DUV보다 더 미세한 회로를 구현한다.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첨단 메모리는 이보다 더 정밀한 EUV 공정을 사용한다.
EUV 장비는 네덜란드 ASML이 독점 공급 중이다. 중국은 미국의 수출 통제로 2019년부터 EUV 수입이 제한됐고 이후 첨단 침지형 DUV도 반입이 어려워졌다. 최근 미국 의회에서는 DUV 장비의 유지·보수 제한까지 추진 중이다. 중국이 장비 국산화에 속도를 내는 배경이다.
김주원 기자
시장은 민감하게 반응했다. 이날 ASML 주가는 장중 7% 넘게 떨어졌고 미국 반도체 장비주들도 약세를 보였다. 국내 반도체주도 엔비디아발(發) 인공지능(AI) 투자 둔화 우려에 더해, 중국산 DUV 양산 소식까지 겹치며 급락했다. 한지영 키움증권 연구원은 “중국 메모리 업체들의 증설 가능성이 메모리 시장 경쟁 심화 우려를 키웠다”고 말했다.
국내 반도체 업계는 시장의 우려가 다소 앞서갔다고 본다. 한 국내 반도체 기업 관계자는 “중국산 DUV가 해외 반도체 업체에 판매될 정도의 경쟁력을 갖췄느냐가 중요한 기준”이라며 “DUV보다는 (중국이) EUV를 자체 개발할 수 있느냐가 더 큰 변수”라고 말했다.
다만 장기적인 경쟁 구도 변화에는 대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병훈 포스텍 교수는 “중국산 DUV가 자리 잡으면 DDR4 등 범용 D램과 낸드 생산능력을 늘릴 수 있다. 3~5년 뒤를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차이나 반도체 라이징』 저자인 권석준 성균관대 교수는 “중국이 2030년까지 범용 반도체 자립도를 높이는 것은 가능한 일”이라며 “HBM에서 우위를 지켜도 범용 제품의 마진이 훼손되면 부담이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