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울산 현대차 울산공장에서 4시간 부분파업을 벌인 오전조 근로자들이 퇴근을 하고 있다. 현대차 노조는 오는 29~31일 매일 4시간씩 추가로 부분파업을 벌일 예정이다. 뉴스1
반도체에서 시작된 노사 갈등이 자동차·조선·철강 등 주요 제조업으로 확산하며 올 여름 ‘줄파업’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하투’가 장기화할 경우 산업계 전반의 생산 차질이 우려된다.
28일 자동차업계에 따르면 현대차 노조는 오는 29~31일 매일 4시간씩 부분파업을 예고했다. 기아와 르노코리아 역시 노조 찬반투표에서 파업이 가결되고 중앙노동위원회(중노위)가 교섭중지 결정을 내리면서 합법적으로 파업에 나설 수 있게 됐다.
다른 제조업계도 상황이 비슷하다. 포스코는 노사 간 단체교섭 결렬로 다음 달 6일 중노위의 조정절차를 진행할 예정이고, HD현대중공업·한화오션 등 조선업계도 임금·단체협약 교섭에서 노사 간 접점을 찾지 못한 채 여름휴가 기간을 맞게 됐다.
이미 현대차 노조는 지난 13~15일 2시간씩, 20~22일 4시간씩 부분파업을 벌였다. 출근조(오전·오후)별로 각각 파업에 들어가 실제로는 36시간 동안 생산라인이 중단됐는데, 업계는 평균 차량 가격과 공장별 시간당 생산량(UPH) 등을 감안하면 약 187억여원의 생산 차질이 발생했을 것으로 본다.
과거 제조업계에서 노사협상의 사실상 마지노선은 통상 ‘7말 8초’ 여름철 집중휴가 직전으로 여겨졌다. 노조가 파업권을 확보하더라도 당장 행동에 돌입하기보다 교섭 상황과 생산 일정, 시장 수요 등을 놓고 쟁의행위 수위를 조절해왔다. 사측의 생산 차질이나 납기지연을 최소화하고, 노조 측도 임금 손실이나 여론 악화 같은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서다.
박경민 기자
2007년 현대차 노조가 파업에 돌입하며 현대차 울산공장 생산라인이 멈춰선 모습. 중앙포토
실제 파업에 돌입하더라도 판매량 감소로 재고가 쌓이는 비수기나 공장 가동률을 낮추는 휴가철을 활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파업이 노사 모두 감당 가능한 범위에서 이뤄지는 만큼 ‘약속 대련’에 가깝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올해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우선 올해 3월 시행된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2·3조 개정안)은 사측이 조합원의 생계를 위협하거나 노조 존립을 위태롭게 할 정도의 손해배상을 청구하지 못하게 해, 노조 입장에선 파업에 따른 법적·경제적 리스크가 크게 줄었다.
지난 5월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가운데)이 경기고용노동청에서 삼성전자 임금협상을 중재한 뒤, 여명구 삼성전자 디바이스솔루션(DS) 피플팀장(맨 왼쪽)과 최승호 삼성그룹 초기업노동조합 삼성전자지부 위원장의 손을 맞잡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지난 5월 국민적 관심을 모은 ‘삼성전자의 성과급 협상’도 영향을 미쳤다. 당시 노사가 치열하게 대립하는 가운데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이 직접 중재자로 나서 합의를 이끌어 냈는데 비록 파업은 막았지만, 반도체와 실적 격차가 큰 다른 업종까지 ‘N% 성과급’을 요구하는 변곡점이 됐다.
실제로 현대차는 ‘지난해 순이익의 30% 성과급 지급’을, 기아와 HD현대중공업은 ‘지난해 영업이익의 30% 성과급 지급’ 등을 요구하고 있다. 한 제조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중재에 나서 N% 성과급을 제도화하는 바람에 다른 노조들의 기대 수준이 크게 높아졌다”고 했다.
중노위의 실효성도 도마 위에 올랐다. 노조 파업 찬반투표→ 중노위 조정 신청→ 중노위의 조정 중지 결정이 반복되면서 이 절차가 사실상 ‘파업 면허 발급’처럼 굳어졌다는 비판이다.
전문가들은 매년 임금을 둘러싼 갈등을 반복하기보단, 노사가 미래 산업 변화를 포괄하는 중장기적인 대화에 나서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준희 광운대 교수는 “한국은 과거부터 정부가 개별 노사관계에 개입하고 공권력 투입이나 법률 강화를 통해 파업을 통제해온 경향이 있어, 노사가 자율적으로 교섭하고 협약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문화가 충분히 자리 잡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삼성전자의 ‘영업이익 연동 성과급’ 협상 뒤 산업계(사측)가 다소 과민하게 반응하는 측면도 있다”며 “선진 산업 국가들도 모두 이러한 노사 갈등과 교섭의 경험을 축적하면서 발전해 온 만큼, 노사가 교섭 테이블에 앉아 미래에 대한 스스로의 답을 찾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