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성할 점은 특별히 없습니다.”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일본 총리는 지난 27일, 158일간 이어진 특별국회 마무리를 계기로 연 기자회견에서 이같이 말했다.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서 지지율이 급격히 하락하는 가운데, 국회 운영을 둘러싸고 반성할 점이 있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었다. 그는 이어 “공약을 하나라도 더 실현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고 성과를 강조했다.
지난 27일 일본 도쿄 총리관저에서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 2월, 중의원(하원) 선거에서 자민당 단독으로 3분의 2 이상의 의석을 확보하는 역사적인 대승을 거뒀다. 양원제인 일본에서 법안 통과를 위해선 원칙적으로 중의원과 참의원(상원) 모두 과반의 찬성이 필요하지만, 참의원에서 부결된 경우 중의원으로 되돌려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얻으면 통과시킬 수 있다. 원하는 법안을 대부분 채택할 수 있는 막강한 권력을 손에 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논란이 있는 법안들을 본인 뜻대로 밀어붙이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황실전범(皇室典範) 개정이다. 국민들 사이에서 찬반이 갈리고 있는 사안임에도, 이를 최우선 과제로 삼아 불과 6시간 15분이라는 짧은 심의 끝에 통과시켰다. 또 국기 훼손 처벌법 등 보수 색깔이 짙은 법안들도 성사시켰다. 반면 물가 상승 대책 등 주요 경제 정책은 아직 논의 중이다.
이러한 정권 운영은 지지율 하락을 초래했다. 특히 무당층의 이탈이 심각하다. 요미우리신문이 지난 24~26일에 실시한 조사에서 무당층의 지지율은 41%로 6월보다 13%포인트 하락한 반면, 지지하지 않는 비율은 47%로 17%포인트 급증해, 처음으로 비지지율이 지지율을 앞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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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만에 퇴진한 1차 아베 정권과 유사하다”
지난 11일 일본 도쿄에서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추모식에서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가 연설을 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요시다 도루(吉田徹) 도시샤대 교수는 “다카이치 총리는 경제 정책보다 이데올로기적 성향이 강한 정책을 추진한 결과 지지율이 하락해 퇴진한 1차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을 계승하고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1차 아베 정권(2006년 9월~2007년 9월)은 일본의 패전 후 미국 점령기에 구축된 틀인 ‘전후 체제’에서 벗어나겠다는 점을 전면에 내세우며 “전통과 문화를 존중하고, 우리 나라와 고향을 사랑한다”는 ‘애국심 조항’을 담은 교육기본법 개정 등에 힘썼다. 이러한 보수 성향이 짙은 정권 운영에 국민들이 실망하며 지지율이 하락했고 1년 만에 총리직을 내려놔야 했다. 아베 전 총리는 인터뷰책 『아베 신조 회고록』에서 1차 정권에 대해 “경제 정책이 약했다. 좀 더 경제에 정조준할 걸 그랬다. 전후 체제 탈피에 너무 힘을 쏟았다”고 반성했다.
극소수의 측근만으로 정권 운영을 하고 있다는 점도 당시와 비슷하다. 다카이치 총리는 최근 기하라 미노루(木原稔) 관방장관, 오자키 마사나오(尾﨑正直) 관방부장관, 사토 케이(佐藤啓) 관방부장관 ‘3인방’과만 상의한다고 알려진다. 역대 총리들이 잘 소통해왔던 스즈키 슌이치(鈴木俊一) 자민당 간사장이나 가지야마 히로시(梶山弘志) 국회대책위원장 등과는 거리가 멀다.
지난 3월 16일 일본 도쿄 참의원에서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오른쪽)가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AFP=연합뉴스
아베 전 총리는 과거의 좌절을 교훈으로 삼아, 2차 정권(2012년 12월~2020년 9월)에선 경제를 활성화시키는 아베노믹스를 추진했다. 연립 파트너인 공명당과도 긴밀히 소통하며, 자신의 보수적인 신념보다 중도적인 노선을 택했다. 이것이 선거 연승으로 이어져 정권 기반을 공고히 하며 7년 8개월간의 장기 집권을 이룩했다.
반면 다카이치 총리의 연립 상대는 자민당보다 더 보수적인 일본유신회다. 또 참의원에선 과반의 4석이 부족하다 보니 극우 정당인 참정당 등의 도움도 필요한 상황이다. 이 때문에 더욱 우클릭할 수밖에 없는 측면도 있다.
다만, 다카이치 총리는 ‘비세습, 여성’이라는 일본 정치권에서 살아남기 어려운 조건 하에서 총리까지 오른 강력한 자신감으로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따라서 아베 전 총리처럼 반성하지 않고, 이대로 정면 돌파할 가능성이 높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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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전 카드 소비세 감세..야스쿠니 참배는?
다카이치 총리가 지지율 반전 카드로 준비하는 건 감세다. 2027년 4월부터 2년간 식료품 소비세를 8%에서 1%로 인하하겠다는 것이다. 현재 여야 간 협의가 진행 중이며, 이번 주 내 감세 정책을 결정할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5일 일본 국회에 참석한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왼쪽)가 질문에 답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식료품 소비세 감세는 지난 2월 중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이 내건 공약이다. 이건 다카이치 총리가 ‘염원’이라고 언급한 만큼 물가 상승 대책으로 신속히 실현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이 감세를 도입하려면 연간 약 5조 엔(약 44조7300억원)이 필요한데 아직 재원을 찾지 못하고 있다. 경제계에선 재정 불안감으로 엔저가 더 진행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일단 감세를 하면 세금을 다시 올리기는 쉽지 않다 보니 자민당 내에서도 반대의 목소리가 나온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이 지난 24~26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이 방안에 대한 찬성은 48%, 반대는 44%로 팽팽해 반전 카드로 얼마나 효과적일지는 미지수다.
한편, 다카이치 총리는 외교 분야에선 아베 전 총리의 현실주의 노선을 계승해 왔다. 총리 취임 전엔 매년 8월 15일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해온 다카이치지만, 총리가 된 올해는 주변국 반발 등을 우려해 직접 참배는 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요시다 교수는 “미국이 일·중 관계의 안정을 바라고 있는 상황인 만큼, 올해는 보류하지 않을까”라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그는 “다카이치 총리는 아베 전 총리나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郎) 전 총리 같은 카리스마가 없다. 중의원 의석수는 많지만 정권은 취약해 보인다”고 덧붙였다. 지지율 하락이 지속할 경우, 보수층 결집을 위해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강행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