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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는법 배웠더니 진짜 목숨 걸고 발레"…ABT 수석무용수 박선미

연합뉴스

2026.07.28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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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 다스리는 '안정형' 발레리나…"떨리는 건 누구나 같아요" "'한국인들은 왜 그리 차분하나' 물어…내면 강해 휩쓸리지 않아" 한국서 다진 기본기, 미국서 익힌 소통으로 '조용한 힘'의 발레
"쉬는법 배웠더니 진짜 목숨 걸고 발레"…ABT 수석무용수 박선미
불안 다스리는 '안정형' 발레리나…"떨리는 건 누구나 같아요"
"'한국인들은 왜 그리 차분하나' 물어…내면 강해 휩쓸리지 않아"
한국서 다진 기본기, 미국서 익힌 소통으로 '조용한 힘'의 발레

(뉴욕=연합뉴스) 김연숙 특파원 = "쉬라는 사람은 없었어요. 그래도 제가 멈추기로 했어요."
최근 미국 뉴욕에서 만난 아메리칸발레시어터(ABT) 수석무용수 박선미(27)가 지난해 가장 잘한 일로 꼽은 것은 의외로 춤을 멈춘 것이었다.
작년 봄, 정강이 스트레스성 골절 전 단계라는 진단을 받은 그는 시즌 최대 배역 가운데 하나인 '지젤' 주역을 받고도 스스로 무대를 내려놨다.
의사들 의견은 엇갈렸고 '발레를 계속해도 괜찮다'는 소견도 있었지만, 박선미는 "누가 쉬라고 하기 전에 내가 결정하는 게 중요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약 4개월 반, 그는 공연장에서도 멀어졌고 여행을 많이 다녔다.
"발레를 시작하고 한 번도 제대로 쉬어본 적이 없었어요. 그때 처음 알았어요. 발레를 하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다는 걸요."
쉼표를 찍고 복귀한 후 그는 역설적이게도 발레를 하면서 더 행복해졌다.
올 1월에는 '백조의 호수'에서 주역 오데트·오딜 역을 받았다.
순수한 백조 '오데트'와 치명적인 흑조 '오딜'을 오가는 이 역할은 섬세한 감정 연기와 고난도 테크닉을 동시에 요구한다.
그후로는 "진짜 목숨 걸고 발레만 했다"는 박선미는 연습에선 알라스콩 턴(공중에 다리를 옆으로 뻗어 도는 동작)이 뜻대로 되지 않아 애를 먹었다.
공연 당일, 많이 떨렸지만 '쓰러지더라도 이건 하자'고 스스로를 다잡았다. 그런데 막상 무대에 오르자 믿기지 않을 만큼 몸이 가벼웠다고 한다.
"신기할 정도로 힘이 안 들었어요. 공연이 제가 생각한 대로, 완벽하게 풀렸어요."

수석 승급은 예상치 못한 선물이었다.
지난 15일 마지막 공연 후 커튼콜 중 객석을 향해 인사하던 박선미는 군무 무용수들의 시선이 한쪽으로 향하는 것을 봤다. 수전 재피 ABT 예술감독이 마이크를 들고 걸어 나오고 있었다.
"그때 '되는구나' 싶었어요. 기대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이번은 아닐 수 있다고 생각하고 마음을 비우고 있었거든요."
박선미는 "수석 무용수는 모든 무용수의 꿈"이라며 "어릴 땐 ABT 같은 큰 발레단에서 제가 주역이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는데,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다"고 돌아봤다.
재피 감독은 무대에서 박선미의 수석 승급을 발표하며 "그는 모든 춤에 조용한 힘을 불어넣는다"고 말했다.
'조용한 힘'은 박선미가 강조한 '멘탈'과 맞닿아 있었다.
"무서운 순간은 누구에게나 와요. 저도 잠들기 전에 갑자기 무대가 떠오르면서 떨릴 때가 있어요. 그럴 땐 그냥 '모두가 다 떨린다. 막상 무대에 올라가면 괜찮아질 거야'라고 저에게 말해요."
그는 스스로를 '안정형'이라고 표현했다.
"한번 맞는다고 생각하면 앞만 봐요. 뒤돌아보기 시작하면 너무 힘들거든요. 어릴 때부터 무슨 일이 생기면 울기보단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를 먼저 생각하는 편이에요."
우울감이 밀려올 때도 해결책은 단순했다. 발레를 하거나 달리기를 했다.
이번 공연이 끝난 뒤에는 곧바로 영국으로 짧은 여행을 다녀왔다.
"예전 같았으면 상상도 못 했어요. 그런데 쉬면서 배운 거죠. 쉴 때는 제대로 쉬어야 하고, 여행도 삶에 꼭 필요한 시간이더라고요."
그는 "돌이켜보면 그 시간이 지금의 저를 만들기 위한 '빌드업'이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런 '조용한 힘'의 바탕에는 한국에서 받은 교육이 있었다.
10살에 발레를 시작, 선화예중고와 한국예술영재교육원을 거쳐,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졸업한 그는 어릴 때부터 차분하게 행동하는 법을 자연스럽게 몸에 익혔다.
"힘들다고 떼를 쓰거나 징징거리면 그걸 받아주는 선생님은 안 계세요. '울 거면 나가라'고 하죠.
이런 성향은 감정이나 기분이 표정에 그대로 드러나는 경우가 많은 외국 무용수들과 차별화됐다.
"주변 외국 무용수들이 물어봐요. '너희 한국인들은 원래 그렇게 다들 차분(chill)하냐'고요. '너희는 안 떠냐'고 물어요. 저희도 똑같이 떨어요. 다만 겉으로 표현하지 않고 내면으로 다스리는 거죠."
현재 ABT에는 수석무용수 서희, 안주원을 비롯해 솔리스트 한성우, 서윤정과 군무단의 최연서, 견습생 박수하 등이 있다. ABT 산하 스튜디오 컴퍼니의 박윤재, 박건희 등을 합하면 '한국인 가족'은 더 커진다.
"저희 발레단의 한국인 무용수들은 다들 내면이 정말 강해요. 남들이 뭐라고 하든 흔들리지 않고 '그래 이야기해라 어쩔거냐'는 마인드에요. 누가 힘들면 보듬어주지만, 거기에 휩쓸리지는 않아요."
그중에서도 2012년 승급, ABT의 간판 수석무용수로 활약 중인 서희를 '든든한 기둥 같은 선배'라고 소개했다.
"이미 최고의 자리에 올랐지만, 권위적인 모습은 전혀 없어요. 워낙 단단하게 중심을 잡아주니까 후배들도 자연스럽게 배우는 것 같아요."
한국에서 익힌 러시아 바가노바 스타일의 탄탄한 기본기에 ABT의 자유로운 표현 방식이 더해지면서 지금의 박선미의 춤이 만들어졌다.
"미국은 질문하고 토론하면서 답을 찾아가는 문화가 확실해요. 이해가 안 되면 이제는 제가 먼저 물어봐요. 그런 소통 방식이 저를 많이 바꿨어요."
특히 그를 ABT로 이끌었던 사샤 라데츠키 ABT 스튜디오 컴퍼니 단장의 도움도 컸다.
박선미는 그를 "미국에서 만난 아빠 같은 분"이라고 소개했다. 2019년 그를 직접 선발했던 라데츠키 단장은 이후에도 리허설이 따로 잡혀 있지 않은 역할도 직접 함께 연습해줬고, 부상 기간에는 개인 지도까지 해줬다. 이번 수석 승급에도 누구보다 기뻐했다고 한다.

화려한 무대 뒤 그의 일상은 단순하다.
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클래스와 연습, 운동으로 몸을 관리한다. 일요일에는 집 밖에도 잘 나가지 않을 정도로 철저히 쉰다. 월요일에는 웨이트트레이닝이나 PT로 다음 주를 준비한다.
가장 하고 싶은 배역을 묻자 '돈키호테'의 '키트리'를 꼽았다.
"제 춤을 본 많은 분이 '통통 튄다', '음악을 잘 탄다'는 말씀해주세요. 밝고 에너지 넘치는 키트리가 제 춤 스타일과 잘 맞는다는 이야기를 들어요."
언젠가는 영국 로열발레단 객원 무용수로도 무대에 서보고 싶다는 그는 "그러려면 더 노력해야겠죠"라며 웃었다.
박선미는 ABT 미국 투어를 거쳐 8월 말 한예종 30주년 기념 공연으로 국내 관객과 만난다. 이후 9월 수석무용수로 ABT 정식 시즌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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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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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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