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리고 습한 날 골프장에서 흔히 듣는 푸념이다. 심지어 일부 TV 골프 중계 해설자들마저 이런 말을 하니 다들 사실로 받아들인다. “습한 날은 공기 중 수분이 많아져 저항이 커지고 비거리가 줄어든다”는 식의 그럴듯한 논리다.
그러나 이는 오해다. 물리학자인 김선웅 전 고려대 교수가 정리한 ‘환경에 따른 비거리 변화’ 리포트에 따르면, 습도가 높을수록 공기 저항은 줄어들고 비거리는 오히려 늘어난다.
액체 상태의 물은 무겁지만, 기체 상태인 수증기는 공기보다 가볍기 때문이다.
건조한 공기는 무거운 질소 분자(분자량 약 28)와 산소 분자(분자량 약 32)로 채워져 있다. 습도가 높아지면 공기 중에 수증기 분자(분자량 약 18)가 유입되면서 기존의 무거운 질소와 산소 분자를 밀어내고 자리를 차지한다.
결과적으로 습한 공기가 건조한 공기보다 가볍고 밀도가 낮다. 밀도가 감소하므로 골프공이 받는 공기 저항이 줄어들어 공이 더 멀리 날아가게 된다.
다만 차이는 미미하다. 드라이버 캐리 254야드 기준으로 약 0.9~1.5야드 늘어나는 수준이다. 게다가 습한 날은 코스 잔디가 젖어 런이 줄어들므로, 총거리는 줄어들 수도 있다.
김 전 교수는 이 밖에도 골퍼들이 경험칙으로 오해해 온 물리적 팩트들을 설명해냈다.
“비 오는 날 페이스가 젖으면 마찰력이 떨어져 스핀이 줄어든다”는 통념 역시 절반만 맞다. 김 전 교수가 소개한 핑 연구소 데이터에 따르면, 아이언은 페이스의 그루브(홈) 사이로 물이 끼며 스핀이 풀리는 ‘너클볼’ 현상이 나타나지만, 드라이버는 전혀 다르게 반응한다. 드라이버 페이스에는 그루브가 없어 공이 임팩트 순간 로프트 표면을 타고 위로 미끄러져 올라가면서 오히려 백스핀이 급증(평균 2771rpm에서 3215rpm)한다.
또한 그루브 대신 공 표면 딤플에 물이 차는데 그렇게 되면 딤플 효과가 사라져 공기 저항 및 양력이 비정상적으로 커지면서, 공은 비행 최고점에 도달하기도 전에 솟구치다가 툭 떨어지게 된다. 이로 인해 캐리 비거리가 약 16야드나 줄어든다.
바람이 불 때는 ‘비대칭의 법칙’이 작용한다. 연구 결과 맞바람(앞바람)으로 손해 보는 거리가 뒷바람으로 얻는 이득보다 약 2~3배 크다. 시속 48km 바람이 불 때, 뒷바람은 거리를 22야드 늘려주는데 그치지만 앞바람은 무려 57야드나 깎아먹는다. 공기 저항(항력)이 공과 바람의 ‘상대 속도’ 제곱에 비례해 급격히 불어나기 때문이다.
공이 시속 200km로 날아가는데 맞바람이 시속 30km로 불어오면, 공이 느끼는 공기와의 상대 속도는 시속 230km가 된다. 물리 공식상 항력은 속도의 제곱에 비례한다. 맞바람을 받아 상대 속도가 조금만 올라가도, 공이 받는 공기 저항은 제곱으로 폭발하듯 급증하게 된다. 반면 뒷바람은 상대 속도를 줄여주지만, 공을 띄워주는 힘(양력)까지 같이 깎아먹어 거리 증가 효과가 맞바람의 감소 효과보다 훨씬 적다.
맞바람은 불리한 게 또 있다. 앞바람을 받으면 공이 공중에 머무는 체공 시간이 길어진다. 이 과정에서 클럽 패스나 페이스 각도의 미세한 오차가 바람을 타고 증폭되어 낙하지점의 좌우 편차를 훨씬 크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