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FA가 트럼프 미국대통령(왼쪽) 일가와 손잡고 월드컵 운영을 전담할 자회사 설립을 추진한다. 로이터=연합뉴스
자회사를 만들어 월드컵 운영 및 관련 사업을 맡기려는 국제축구연맹(FIFA)의 구상에 대해 유럽축구연맹(UEFA)이 발끈하고 나섰다. 월드컵 보이콧까지 포함한 강경 대응으로 맞선다는 입장이다.
스포츠전문매체 ESPN은 29일 “UEFA가 산하 55개 회원국이 참여하는 긴급 회상회의 개최를 준비하고 있다”면서 “논의 내용 중에는 유럽 국가들의 월드컵 불참 안건도 포함돼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UEFA가 갑작스럽게 집단 행동을 준비하는 건 최근 FIFA가 추진 중인 대규모 외부 자본 유치 계획 때문이다. 앞서 공개한 계획에 따르면 FIFA는 향후 FIFA 포워드 엔터프라이즈(FFE)라는 회사를 만들어 남·녀 월드컵 및 클럽월드컵 관련 사업의 운영을 맡기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FFE의 기업 가치를 200억 달러(약 29조원)로 산정하고, 지분 일부를 팔아 올해 최대 42억 달러(6조원)를 조달한다는 계획도 갖고 있다. 이를 위해 미국 투자은행 JP모건과 외부 투자자 유치를 협의 중이다.
문제는 여기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대통령의 이름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FIFA가 FFE의 지분 50%를 보유하고, 산하 211개 회원국 축구협회에 20% 가량의 지분을 분배할 예정”이라면서 “나머지 지분을 민간 투자자들에 넘겨 거액의 자금을 확보한다는 구상인데, 이와 관련해 미국의 벤처 캐피털 회사(스라이브 이터널)를 파트너로 선정했다”고 보도했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의 사위 재러드 쿠슈너의 친동생인 조슈아 쿠슈너가 운영하는 업체다.
잔니 인판티노 FIFA 회장(아래)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대통령. AP=연합뉴스
앞서 열린 북중미 월드컵에서 잔니 인판티노 FIFA 회장이 트럼프 대통령과 과도한 수준의 밀착 행보를 보여 우려를 낳은 바 있다. 본선 참가국 선수단 및 팬들에 대한 비자 발급 과정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을 일방적으로 옹호했고, 심지어 경기 도중 레드카드를 받고 퇴장 당한 미국 선수의 징계를 1년 유예하는 이례적인 조치도 시행했다. FIFA의 운영에 트럼프 일가가 참여할 경우 향후 금전적 논란이 추가될 수 있다.
이에 대해 UEFA는 “FIFA가 축구를 볼모로 잡아 트럼프 대통령 일가에 지분을 넘기려는 것 아니냐”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관련 성명을 통해 “축구는 FIFA의 소유물도, 판매 대상도 아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이면서 “특히나 이번 결정을 통해 누가 경제적 이익을 얻는지 불투명한 지금 같은 상황에선 더더욱 그렇다”고 주장했다.
FIFA는 ‘분배금 대폭 인상’ 카드를 꺼내 들어 회원국 회유에 나섰다. 인판티노 회장은 “FFE를 통한 수익금을 전세계 축구 발전에 골고루 투자할 것”이라면서 “211개 회원국에 지급하는 축구발전기금을 현재와 같은 연간 800만 달러(약 116억원)에서 2000만 달러(약 2900억원) 이상으로 끌어올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FIFA가 공개한 계획에 따르면 산하 회원국 동의를 얻어 FFE가 출범할 경우 내년부터 2030년까지 회원국 분배금은 매년 2000만 달러에서 출발해 2031~34년 2220만 달러, 2035~38년에 2400만 달러까지 꾸준히 인상될 예정이다.
수익 극대화를 추구하는 FIFA의 정책과 관련해 향후 월드컵 규모를 더욱 키우거나 또는 주기를 앞당기는 등의 변화로 이어질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나온다. 로이터=연합뉴스
이에 대해 영국의 더타임스는 “FIFA가 추진 중인 계획대로라면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월드컵 대회 규모를 더욱 키우거나 개최 주기를 짧게 하라는 압력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다분하다”면서 “오는 2031년 임기를 마치는 인판티노 회장이 퇴임 후 FFE의 커미셔너 또는 최고경영자를 맡아 큰 수입을 보장 받는 시나리오도 거론 된다”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FIFA는 “(인판티노 회장 퇴임 후 행보는) 전혀 논의된 적 없는 사안”이라면서도 “회원국들의 이익을 극대화한다는 FIFA의 규정에 맞게 계열사를 적절히 통제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는 작업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해명했다.
UEFA가 ‘월드컵 보이콧’이라는 극단적인 대응까지 고려하며 반발하고 있지만, 나머지 회원국들이 FIFA가 꺼내놓은 ‘당근’에 어떻게 반응할 지는 미지수다. 영국 BBC는 “2000만 달러는 잉글랜드축구협회에는 큰돈이 아닐지 몰라도 상당히 많은 나라에선 엄청난 액수”라면서 “이해 관계자들이 이 계획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여부가 FIFA 계획 실현의 변수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FIFA는 지난 2018년에도 인판티노 회장 주도로 일본 IT 기업 소프트뱅크와 손잡고 250억 달러(36조원)를 투자해 클럽월드컵 확장판 개념의 글로벌 네이션스리그를 창설하려다 UEFA의 반대로 포기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