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아이와 어떻게 대화를 해야 할지조차 모르겠어요.” 우리 상담센터를 찾은 한 부모가 처음 꺼낸 말이었다. 자녀와의 몇 달째 지속된 갈등으로 몸과 마음이 지친 부모의 눈가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다.
부모에 따르면 학교 숙제를 하는 일은 전쟁이 되었고, 늦은 귀가 시간은 매번 언쟁으로 이어졌다. 휴대폰은 끊임없는 갈등의 원인이 됐다. 가끔 있는 가족 저녁 모임은 침묵으로 끝나기 일쑤였다. 결국 각자 방에서 밥을 먹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모든 대화는 또 다른 싸움의 시작처럼 느껴졌다. 집은 더는 편안한 안식처가 아니라, 전쟁터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옆에 앉아 있던 10대 자녀의 생각은 달랐다. 그 아이는 “부모님은 제 말을 들어주지 않아요”라고 말했다. 부모님은 늘 내가 뭘 잘못했는지, 무엇을 더 잘해야 하는지만 말한다는 것이었다.
상담하다 보면 가장 어려운 것 가운데 하나가 ’소통‘의 문제다. 감정이 앞서 말이 의도와 다르게 전달되기도 하고, 사랑하는 사람일수록 더 이해하기 어려운 순간이 찾아오기도 한다. 하지만 모든 가족이 사랑과 불만, 걱정을 표현하는 방법에서 어려움을 겪는다.
처음에는 ’아이의 행동‘이나 ’부모의 지나친 통제‘가 문제라고 생각하는 가족이 많다. 그리고 상대방만 달라지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상담하다보면 악인도 없고, 상처받지 않은 사람도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다만 자녀를 위해 희생해 온 부모의 삶, 부모가 알지 못했던 자녀의 부담감, 그리고 오랜 오해 속에 묻혀버린 서로에 대한 사랑이 있다.
한인 부모들은 자녀에게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 주겠다는 꿈을 안고 미국에 왔다. 자신의 경력은 포기한 채 열심히 일하며, 새로운 언어와 문화를 배우고, 외로움을 견디며 살아왔다.
하지만 자녀들은 부모 세대가 경험하지 못한 세상에서 성장한다. 이들은 소셜미디어, 치열한 학업 경쟁, 정체성에 대한 고민, 정신건강 문제 등 부모세대에서는 드물었던 많은 도전에 직면해 있다. 한인 자녀들은 두 가지 문화와 언어, 두 가지 가치관 사이에서 균형을 맞춰야 하는 부담까지 안고 있다. 이는 부모에게도, 자녀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스트레스가 쌓일수록 서로 전혀 다른 방식으로 표현한다. 부모는 자녀의 미래에 대한 걱정을 잔소리라는 언어로 말한다. 반면, 이해받지 못한다고 느끼는 자녀는 분노라는 방식으로 상처를 드러낸다. 서로 상대의 행동을 거부로 받아들이지만, 사실 이는 관계를 유지하고 싶은 서툰 표현인 경우가 많다.
우리는 대화의 기술부터 가르치지 않는다. 부모는 자녀의 분노 뒤에 있는 두려움을 들을 수 있도록, 자녀는 부모의 기대 속에 담긴 사랑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한다.
“우리 아이가 나를 미워하는 줄 알았다”고 말한 어머니가 있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아이는 곧장 “엄마를 미워한 적 없어요. 그냥 엄마는 진짜 제 모습을 알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어요”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 한마디가 가족의 관계를 바꾸는 출발점이 되었다. 물론 갈등이 하루아침에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중요한 변화가 생겼다. 서로를 이겨야 할 상대가 아니라, 다른 짐을 짊어진 가족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치유는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된다. 하지만 많은 가족이 너무 늦게서야 도움을 요청해 안타깝다.
한인 사회에는 아직 정신 건강 상담에 대한 편견이 남아 있다. 부모는 이런 상담을 실패의 의미처럼 느끼고, 자녀들은 자신이 문제 있는 사람으로 낙인찍힐까 두려워한다. 어떤 가정은 힘든 일은 조용히 참고 견뎌야 한다고 믿기도 한다. 하지만 상담은 가족의 문제를 드러내기 위한 것이 아니다. 가족 관계가 회복 불가능 상태로 악화하지 않도록 하려는 노력이다.
몸이 아프기 전 건강검진을 받듯, 가족 간 대화가 단절되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을 자연스럽게 생각해야 한다. 서로 이해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은 결코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처음 소개한 가족 역시 아직 견해차가 있다. 하지만 이제는 고성과 침묵 대신 대화와 진심 어린 사과가 있다. 가족에게 웃음이 돌아왔으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희망이 생겼다는 사실이다.
모든 갈등의 이면에는 ’나를 봐 주세요. 내 이야기를 들어 주세요. 나를 이해해 주세요‘라고 말하고 싶은 마음이 숨어 있다. 부모나 자녀나 완벽할 필요는 없지만 서로 대화를 멈춰서는 안 된다. 혹시 가족 간의 대화가 갈등으로 끝난다고 느껴진다면, 혼자 고민할 필요가 없다.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가족을 위한 사랑의 행동이다.
치유는 정답을 아는 데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단 한마디의 부탁에서 시작되기도 한다. “우리 가족이 다시 서로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