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지노 토모아키(60) 감독의 다큐멘터리 '어떻게 해야 했을까?'는 조현병 증상을 보이는 누나를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현관문에 자물쇠를 채워 둔 부모와 그 가족의 시간을 20여 년간 담아낸 남동생의 사적인 기록이다. 사진 엣나인필름
의사인 부모는 누나의 조현병을 인정하지 않았다. 의대까지 보낸 금쪽같은 딸이 “(아는 의사 진단으론) 100% 정상”이라고, “교육 학대한 부모를 곤경에 빠트리려고 조현병인 척 하는 것”이란 말만 되풀이했다. 그러면서도 불안감 탓에 현관문엔 자물쇠를 걸었다.
조현병이 뭔지도 몰랐던 고등학생 남동생은 그저 이 모든 상황이 무서웠다. 누나의 증세가 악화한지 9년째던 1992년 처음 누나의 발작 상황을 녹음했다. 2001년 영화 공부를 해 영상도 찍기 시작했다. 자신이라도 기록을 남겨 정신과에 도움을 청하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모인 80시간가량의 증거 영상은 23년 뒤 영화가 됐다.
29일 개봉한 후지노 토모아키(60) 감독의 다큐멘터리 ‘어떻게 해야 했을까’다. 2024년 일본 도쿄의 단관극장에서 상영해 55회차 연속 매진되며 1억엔(8억8760만원) 이상의 매출을 올렸다. 조현병의 고통을 가족이 가까이서 이토록 장시간 담은 다큐가 드물어서다.
다정하고 똑똑했던 누나(사진)는 의사인 부모를 선망해 의대에 입학한다. 그러나 해부 실습을 시작한 1980년대 초부터 조현병 증세가 나타난다. 사진 엣나인필름
국내에서도 지난해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초청을 시작으로, 여러 영화제·상영회에서 입소문이 났다. 사전 예매만으로 독립·예술영화 마의 고지 1만 관객을 넘어섰다.
29일 내한 행사에 앞서 서면인터뷰로 만난 후지노 감독은 “부모님은 1990년대부터 누나의 차에 몰래 향정신성 약품을 넣어 마시게 하고 있었다. 법률 위반이지만, 조현병 가정에선 드문 일이 아닌 것 같다. 이 얘기를 듣고 놀라는 정신의료 관계자가 없더라”고 돌아봤다. 또 1980년대부터 일본에선 정신병원 직원이 환자를 폭행 사망케 한 사건이 문제가 됐고, 1996년 개정되기 전까지 우생보호법에 의해 강제 불임 수술을 시행했는데 조현병도 그 대상에 포함돼 있었다고 설명했다.
공개된 영화는 내밀한 가족사를 넘어서, 조현병에 관한 한편의 인류학 보고서다. 감금과 침묵 속에 뒤틀린 가족의 20여년이 101분 분량의 영상에 담겼다. 누나의 정신 착란과 망상, 환청 증세를 ‘집안 문제’로 은폐한 후지노 감독의 부모는 대학 연구소에서 퇴직 후 딸과 함께 고립돼갔다. 2005년 일흔여덟에 치매가 찾아온 어머니마저 집에 침입자가 있다는 환각을 겪는다.
조현병 환자가 국민 100명 중 1명꼴로 추산되는 한국에선 돌봄을 책임진 가족의 고통이 최근에야 파악된 바다. 보건복지부가 2024년 최초 실시한 정신질환자 가족 대상 실태조사(국립정신건강센터) 결과 응답자의 20.2%가 최근 1년 내 자살을 생각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후지노 토모아키(60) 감독은 누나가 자신을 잘 돌봐주었다고 했다. 누나는 주변의 기대와 분위기에 민감한 소녀이기도 했다. 후지노 감독은 그런 성격이 누구도 강요하지 않은 의대에 무리해서 진학하게 만들었고 스트레스 상황으로 누나를 몰아갔을 것이라고 돌아봤다. 사진 엣나인필름
그는 “한 80대 정신과 의사는 (그 시절 딸을 병원에 안 보낸) 부모님의 판단이 완전히 옳았다고 해 놀랐다”면서도 2008년 누나가 비로소 정신과 치료를 받으면서 일상을 되찾았음을 강조했다. 어머니까지 정신이 흐려지자, 연로한 아버지가 모녀를 모두 감당하기 어려워 후지노 감독의 설득을 받아들이면서다.
1958년생인 누나가 꼭 쉰 살이 됐을 무렵이다. 25년 만에 처음으로 남매다운 대화를 할 수 있었다고 그는 말했다. “기록 영상을 공개하는 것을 생각하게 된 게 2008년 누나가 퇴원한 후다. 치료가 효과가 있는 것을 알게 됐으니, 단지 괴롭기만 한 영상이 아니게 됐기 때문”이라고 했다.
평범한 행복은 짧았다. 2011년 어머니는 별세했고, 이후 뇌경색으로 쓰러진 아버지를 노노(老老)간호하던 누나마저 2020년 폐암 4기 선고 이듬해에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말년의 누나는 자유로웠다. 조현병을 인정하지 않던 부모의 과보호를 벗어난 누나가 어느덧 하얗게 새어버린 머리칼을 햇살에 반짝이며 뒷마당에서 일광욕을 하고, 마을 축제의 불꽃놀이를 구경하는 장면은 고요하고도 평화롭다. 혼미한 정신으로 욕설과 고함을 퍼붓던 얼굴과는 딴판이다. 조금만 더 빨리 적절한 치료를 했더라면. 안타까움이 절로 난다.
후지노 감독은 “‘어떻게 해야 했을까’는 원래 제가 부모님께 던진 질문이었다. 편집 중에 무의식적으로 저 자신에게 자문하게 됐고 그걸 제목으로 삼았다”면서 “그렇게 하면 관객도 이 질문을 갖고 영상을 봐줄 거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다큐멘터리 '어떻게 해야 했을까?' 후반부 장면. 말년의 누나(왼쪽부터)는 자유로웠다. 조현병을 인정 않던 부모의 과보호를 벗어난 누나가 어느덧 하얗게 새어버린 머리칼을 햇살에 반짝이며 뒷마당에서 일광욕을 하고, 마을 축제의 불꽃놀이를 구경하는 장면은 고요하고도 평화롭다. 동생이 탄 자동차를 배웅하는 마지막 모습은 감금된 시절 혼미한 정신으로 욕설과 고함을 퍼붓던 얼굴과는 딴판이다. 사진 엣나인필름
원래 누나의 퇴원 후 생활 장면으로 다큐를 끝내려 했지만, 누나의 장례식 때 아버지가 “딸의 일생은 어떤 의미에선 충실했을지도 모른다”고 한 말이 마음에 걸려 장례식 장면을 추가했다고 한다. 영화 말미 아버지는 “어떻게 해야 좋았을까?” 묻는 아들에게 “그러게, 하지만 실패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라고 말한다. 또 아버지는 떠나간 가족의 지난날을 담은 영상을 세상에 공개하는 것도 동의한다.
후지노 감독은 아버지가 2024년 12월 일본에서 영화가 공개된지 열흘 만에 돌아가셨다고 전했다. 극장에서 개봉한 첫 장편 ‘어떻게 해야 했을까’가 큰 반향을 얻은 후 일본에선 조현병 환자가 인터넷에서 직접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사례가 나오기 시작했다고 그는 말했다. “정신질환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회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실을 숨기는 것이 아니라 문제가 존재한다면 그것을 밝히고 모두가 함께 해결 방안을 생각해가는 것이 답에 가까워지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늘 약물에 취한듯 혼미한 정신이던 누나(사진)은 2008년 치료를 받고 일상을 회복한다. 후지노 감독은 “이후론 누나와 잡담을 주로 찍었다. 발병 후에 우리집에선 대화가 사라졌다. 부모님은 누나에게 명령하고, 저와는 싸우기만 했다”면서 “대화와 잡담은 상대방을 생각하면서 하는 것이다. ‘뭐가 맛있어?’ 물으면 ‘~이 맛있다’는 답이 돌아온다. 누나의 말이 듣고 싶었다”고 말했다. 사진 엣나인필름
‘어떻게 해야 했을까’가 영화제가 아닌 해외에서 개봉하는 것은 한국이 처음이다. 추후 OTT·VOD 등으로 출시할 계획은 없다. 영상이 재가공돼 확산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극장에서만 상영하기로 했다. 29일(CGV용산)과 30일(아트나인) 저녁엔 영화 상영 후 후지노 감독이 직접 참석하는 관객과의 대화도 진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