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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치문의 검은 돌 흰 돌] 신진서 대 카타고

중앙일보

2026.07.29 08:08 2026.07.29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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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치문 바둑칼럼니스트

박치문 바둑칼럼니스트

인공지능(AI)은 바둑 세계를 완전히 제패했다. 무한대에 가까운 계산능력으로 신적인 존재가 됐다. 하지만 인간도 근 5000년에 걸쳐 바둑을 두어왔다. AI를 통해 새로 배운 것도 있다. 그렇다면 AI와 인간의 차이는 어느 정도일까. 인간 최고수 신진서 9단과 최고 실력의 바둑AI 카타고(Katago)가 대결하게 된 배경이다(쎈수학 한경 기신전·사진).

알파고(AlphaGo)와 이세돌 9단은 호선으로 두었지만 10년이 지난 지금 AI의 성능은 비약적으로 좋아졌다. 호선은 꿈도 못 꾼다. 대부분의 프로기사는 석 점 놓고도 진다.

대국서 확인한 인간 약점은 감정
허나 두려움과 용기가 승리 이뤄
감정이야말로 인간 최고의 가치

치수는 두 점으로 정해졌다. 두 점의 가치는 18집. 신진서의 전략은 저금통 속의 18집을 조금씩 내주며 종반전까지 4-5집의 우세를 유지하는 것이다. 바둑판을 다 메워 1, 2집짜리 잔 끝내기만 남게 되면 AI도 손 쓸 수 없게 된다. 이 전략이 성공하려면 평소의 대국 방식은 잊어야 한다. 전투를 피해야 하며 ‘기세’ 같은 낭만적인 단어도 잊어야 한다. 그러나 비굴할 수는 없다. 인간 최고수의 자존심은 지켜야 한다.

◆1국=카타고가 제2수에서 바둑사에 유례가 없는 신수를 두었다. 신진서의 마음을 살짝 터치하는 듯 보였다. 신진서는 잘 견뎌냈고 흑의 우세는 잘 유지되는 듯 보였다. 하나 어느 순간 참지 못하고 선을 넘었다. “수비 바둑을 두어야 한다. 인내하겠다”고 다짐했건만 자존심이 더 이상의 후퇴를 허락하지 않았다. 멈출 기회가 있었지만 그대로 폭주해버렸다. 결국 많은 실리를 내주고 대마 공격에 올인하게 됐는데 이건 최악의 코스였다. 전투에서 실수가 없고 타개에서는 더욱 천재적인 카타고가 완벽한 승리를 거뒀다.

◆2국=출발이 좋았다. 바둑판 4분의 1을 차지하는 대형 정석이 등장했다. 정석 동안 흑의 18집 저금통은 전혀 줄지 않았고 오히려 19집으로 늘어나기도 했다(대형 정석은 손해 없이 판을 많이 메운다는 점에서 접바둑에서는 유력한 전술이다). 이후 신진서는 잘 참아내며 두터움을 지켜냈다. 그리고 후반 어느 순간 과감히 전투를 걸어갔다. 이 대목, 즉 전투를 결행하는 대목이야말로 이번 대결의 백미였다. 흑이 유리한 상황에서의 전투였지만 AI를 상대로 한 전투는 참으로 힘든 결단이었다. 카타고의 눈부신 수순에 맞선 신진서의 분투가 짙은 감동을 남겼다. 흑 4집 반 승.

◆3국=1대1에서 맞이한 최종국. 카타고가 첫수를 두자 신진서가 생각에 잠겼다. 화점을 둘 것인가. 소목을 둘 것인가. 화점이라면 2국처럼 대형 정석을 기대할 수 있겠지만 신진서의 선택은 소목이었다. 소목을 둔 1국이 패배했지만 다시 그 길을 가보고 싶은 것이 인간 최고수 신진서의 자존심이었다. 대신 마음속에 참을 인(忍) 자를 새기고 또 새기며 바둑을 견고하고 두텁게 이끌었다. 전투는 한번도 일어나지 않았고 신진서는 예상 외의 대차로 승리했다. 흑 11집 반 승.

이번 대결을 보면서 인간의 약점은 ‘감정’임을 느낀다. 기계에 맞서 자존심을 생각하는 순간 인간은 위기에 한발 다가서게 된다. 그게 1국이다.

AI의 약점은 3국이 보여주듯 ‘정수’라는 두 글자에 있다. AI는 블루 스폿이라 불리는 최선의 수만을 둔다. 무리수나 강수를 두지 않고 소위 접바둑 기술도 쓰지 않는다. 그래서 인간이 잘 지킨다면 접바둑에서는 승리할 수 있다. 그걸 3국이 보여줬다. 다만 약간은 무미건조하다. 삭막한 느낌도 든다. 신진서가 이겨 마음껏 박수를 쳤지만 감동은 작았다.

2국이야말로 두고두고 회자될 인간과 기계의 명승부였다. 인간의 두려움, 떨림, 그리고 용기와 결단이 기계의 거대한 벽에 연속 부딪치며 멋진 승리를 만들어냈다. 감정이 잘 녹아든 바둑이었다. 감정은 인간의 약점이다. 동시에 ‘감정’이야말로 인간 최고의 가치이며 감정이 없으면 바둑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이 대결은 내년에도 계속된다고 한다. 치수는 2점에서 내려가 선(先)에 덤을 몇 집인가 받게 된다. 단, 카타고의 상대는 세계랭킹 1위 기사가 맡는다.

한데 알파고를 만든 허사비스(구글 딥마인드 CEO)에 따르면 AI가 감정 포함 인간 뇌의 인지능력을 모두 발휘하는 시간이 임박했다고 한다. 정말이라면 이건 보통 일이 아니다. 바둑은 물론이고 세상이 뒤집어지는 일이다.

박치문 바둑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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