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유일 국립소방병원도 의사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개원한 지 두 달 가까이 됐지만 필요한 인력의 60%가량만 채운 채 운영 중이다. 지방 의료기관의 고질적인 의사 부족 문제가 국립병원에서도 되풀이되고 있다.
29일 소방청 등에 따르면 지난달 8일 충북 음성 혁신도시에 문을 연 국립소방병원(소방병원)은 302병상 규모의 종합병원이다. 화상이나 외상, 유해물질 노출,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등 직무 특성상 각종 위험에 노출되는 소방공무원을 전문적으로 치료하기 위해 설립했다. 총사업비 2049억원이 투입됐다. 내과를 비롯해 외과·정신건강의학과·재활의학과 등 18개 진료과와 응급실 등을 갖췄다. 서울대병원이 위탁 운영을 맡고 있으며 일반 국민도 이용이 가능하다.
하지만 의료진 확보는 당초 계획에 미치지 못했다. 지난 14일 기준 의사직은 30명으로 정원(48명)의 62.5%에 그쳤다. 18개 진료과 중 8개 과가 정원 미달이다. 내과 세부 진료과까지 포함할 경우 정원 미달은 12개 과로 늘어난다. 18명을 더 충원해야 한다.
김영옥 기자
세부적으로 보면, 입원의학과(정원 3명)는 전문의를 한 명도 확보하지 못했다. 신장내과(정원 2명)와 내분비내과(정원 1명)도 의사가 없어 진료가 불가한 상태다. 내과와 함께 ‘5대 필수’ 의료 분야에 속하는 응급의학과(정원 6명)는 2명만 근무 중이다. 이 밖에도 성형외과와 정형외과, 신경과, 마취통증의학과, 영상의학과 등에서 각각 1명씩 결원이 발생했다. 그나마 소방청은 9월 전문의 4명을 추가 채용해 응급의학과 정원을 채울 계획이라고 한다.
소방청은 이 같은 의사 구인난의 원인으로 전문의 수급 상황과 병원 입지 여건, 개원 초기라는 점 등을 꼽았다. 국립중앙의료원에 따르면 충북지역 내 인구 1000명당 병원 근무 의사 수는 0.71명(2023년 기준)이다. 서울(1.94명)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소방청 관계자는 “정주 여건 개선과 진료·연구 환경 조성 등 처우를 개선해 의료 인력이 안정적으로 근무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응급 환자를 태운 119구급차 모습. 김성태 객원기자
의사 인력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 것은 국립소방병원만이 아니다. 지방 공공병원들은 전문의를 구하지 못해 병동 운영을 축소하거나 진료 기능을 중단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다음 달 개원을 앞둔 울산 군립 울주병원의 경우 의사 12명 가운데 7명만 확보한 상태라고 한다. 울산은 전국 16개 시·도 중 유일하게 공공의료원이 설립되지 않은 광역지자체다. 이 지역 보건소 역시 의사를 구하지 못해 예방접종 시간을 줄이거나 진료 공백을 겪고 있다. 국내 최대 규모의 마약중독 치료 입원 병동을 운영하는 경남 창녕 국립부곡병원은 지난 4월 말 마지막 입원 환자가 퇴원한 이후 신규 입원을 받지 못했다. 입원 환자를 담당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없어서다. 병원은 올해 채용 공고를 9차례 냈지만, 지원자는 없었다.
지난 6일 경남 창녕군 국립 부곡병원 약물중독진료소 입원병동의 병상이 텅 비어있다. 김민주 기자
지방 민간병원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경북 칠곡군에서 유일하게 응급실을 운영해온 왜관병원은 경영난과 의료진 확보난 등을 이유로 31일 응급실 운영을 종료한다. 응급실이 문 닫으면 칠곡지역 응급환자는 20여 분 떨어진 대구나 구미 지역 병원으로 이동해야 해 ‘골든타임’ 확보에 차질이 우려된다. 부산 강서구 갑을녹산병원도 적자와 의료진 부족 등을 이유로 지난 6월 응급실 운영을 중단한 상태다.
이에 지자체들은 의료 공백을 최소화하려 응급환자 이송지침을 개정하는 등 안간힘을 쓰고 있다. 한 보건소는 개인사업자를 낸 의사에게 보건소 일부 업무를 위탁하는 방식의 ‘업무대행 의사 제도’를 도입했다고 한다. 윤태호 부산대 의대 교수는 지난해 학술지 ‘보건사회연구’에 게재한 논문에서 “지역 의료 격차 문제는 단순히 의사 수를 늘리는 것만으로 해결하기 어렵다”며 “지역 의사가 정착할 수 있도록 지역거점병원 확충과 수련체계 개편, 의료취약지에 대한 별도 지원 등 지역 의료 생태계를 함께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