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8일 찾은 부산 남구 재한유엔기념공원. 주묘역과 녹지지역 사이에는 110m 길이의 ‘도운트수로’가 있다. 도운트는 한국전쟁에 참전했다가 숨진 유엔군 중 가장 어린 전사자로 그를 기리기 위해 수로에 이름을 붙였다.
1934년 호주 뉴사우스웨일스에서 태어난 제임스 패트릭 도운트는 16세가 되던 1950년, 21세로 나이를 속이고 자원입대했다. 도운트는 낯선 한국 땅에서 전투를 치른 지 13일 만인 1951년 11월 6일 경기도 연천에서 전사했다. 가족에게 작별 인사도 하지 못한 채 도운트 상병은 유엔기념공원에 잠들었다. 유엔기념공원에 안장된 전사자 2339명의 평균 나이는 22세. 갓 스무 살을 넘긴 젊은 병사들이 한국전쟁 최전선에서 싸우다 전사했다.
재한유엔기념공원 내 주묘역과 녹지지역 사이에 조성된 '도은트수로'. 이은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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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란수도 부산 11곳 중 핵심 유산…2030년 세계유산 등재 추진
제48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가 지난 19일부터 열흘간 부산에서 열린 것을 계기로 유엔기념공원이 주목받고 있다. 영국 찰스 3세 국왕의 여동생인 앤(75) 공주가 지난 14일 방한 후 첫 공식 일정으로 찾은 곳이기도 하다. 유엔기념공원은 정부와 부산시가 2030년 세계유산 등재를 목표로 추진하고 있는 ‘피란수도 부산 유산 11곳’ 중 핵심 유산으로 평가받는다.
유엔기념공원은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4월 6일 유엔군 전사자를 안장하기 위해 조성됐다. 한때 1만1000구가 넘는 유해가 안장돼 있었지만, 이후 상당수가 본국으로 송환됐다. 2026년 7월 22일 기준 14개국 2339명의 전사자가 영면해 있다.
1951년 4월 6일 진행된 유엔기념공원 헌정식 장면. [사진 국사편찬위원회]
유엔기념공원을 처음 찾은 방문객들은 “묘지 같지 않다”고 말한다. 드넓은 잔디와 계절마다 꽃을 피우는 나무들, 낮게 놓인 비석은 잘 가꿔진 정원을 연상시킨다. 부산 도심 한복판에 있는데도 1950년대 모습을 거의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1959년 유엔에 소유권을 넘긴 덕분이다.
강동진 경성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한국 땅이었다면 개발 압력으로 지금의 모습을 유지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며 “주변에 부산시립박물관, 부산문화회관, 국립일제강제동원 역사관이 들어서면서 부산의 근현대 역사를 보여주는 공간 축이 됐다”고 말했다.
2025년 11월 11일 부산 남구 유엔기념공원에서 열린 '턴 투워드 부산' 행사에서 유엔군 참전용사 등 참석자들이 묵념을 하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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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 참전용사도 사후 안장 가능…세계서 드문 ‘살아있는 묘지’
전쟁은 끝났지만, 기억과 추모는 현재진행형이다. 매년 11월 11일 오전 11시 세계 여러 나라에서는 부산을 향해 묵념하는 ‘턴 투워드 부산(Turn Toward Busan)’ 행사가 열린다. 부산은 세계인이 함께 기억하는 평화의 도시가 됐다. 유엔기념공원 묘역 한편의 추모명비에 전사자·실종자 4만896명의 이름을 빼곡히 새겨놓은 것도 이들의 희생을 기억하기 위해서다.
유엔기념공원은 지금도 안장이 계속되는 세계에서 드문 전쟁묘지다. 한국전쟁 참전용사가 “전우들 곁에서 영면하고 싶다”는 뜻을 남기면 사후 이곳에 안장될 수 있다. 캐나다 허쉬 형제가 유해로 60년 만에 상봉할 수 있었던 것도 이 덕분이다.
동생인 아치볼드 허쉬가 1951년 한국전쟁에 참전하자 형 조셉은 동생을 찾기 위해 뒤따라 참전했다. 형은 1951년 10월 전사해 유엔기념공원에 안장됐고, 동생은 살아서 귀국했다. 평생 형을 그리워한 동생은 형과 함께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겼고, 2012년 합장했다.
2022년 11월 11일 부산 남구 유엔기념공원에서 참전용사인 영국의 제임스 레이몬드 그룬디와 네덜란드 출신 마티아스 후베르투스 호겐봄, 에두어드 율리어스 엥베링크 등 3인의 안장식이 거행됐다. 송봉근 객원기자
영국 참전용사 제임스 레이몬드 그룬디도 마찬가지다. 그는 1988년 유엔기념공원을 방문한 뒤 “전우들과 함께 이곳에 묻히고 싶다”는 뜻을 밝혔고, 2022년 자신의 바람대로 부산에 영면했다.
부부가 함께 잠든 합장묘도 3개가 있다. 4남매의 아버지였던 영국군 제임스 토머스 헤론은 참전 두 달 만에 전사해 유엔기념공원에 안장됐다. 헤론의 부인 엘렌은 2001년 1월 숨졌으며 ‘남편 곁에 묻어 달라’는 유언에 따라 그해 10월 유엔기념공원에 합장됐다.
이 때문에 유엔기념공원은 ‘살아있는 묘지(Living Cemetery)’로 불린다. 강 교수는 “유엔기념공원은 과거의 죽음을 보존하는 공간이 아니라 기억이 이어지는 살아있는 공간”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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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네바 협약 최초 적용된 한국전쟁… 적군도 인간적 대우
강동진 경성대 도시공학과 교수가 지난 28일 유엔기념공원에서 1㎞ 떨어진 곳에 조성된 적군묘지를 찾아 유해가 묻혔던 흔적을 손가락으로 가르키고 있다. 이은지 기자
유엔기념공원은 적군마저 품고 있다. 적군이더라도 전사하면 유엔기념공원에서 1㎞ 떨어진 야산에 묻었다. 8000명의 적군을 품었다가 1953년 휴전 후 유해교환이 이뤄졌다. 이 가운데 11구가 자국 전사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한국 역시 유엔군 병사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했지만, 그렇다고 다시 돌려보낼 수도 없었다. 결국 이들은 유엔기념공원 내 비공개 공간에 안장됐다.
포로로 잡힌 적군도 부산 곳곳에 조성된 포로수용소에서는 치료를 받고 인간적 대우를 받았다. 한국전쟁은 적군의 전사자·포로, 민간인 등 모든 인명을 보호해야 한다는 개정된 제네바 협약이 최초로 실현된 전쟁으로 평가받는다. 전쟁의 폐허 속에서도 국제협력이 작동했던 세계 최초의 도시가 바로 부산이다. 강 교수는 “피란수도 부산은 전쟁 유산이 아니라 전쟁 속에서도 인간의 존엄성을 지켜야 한다는 인류애를 실천한 도시”라고 말했다.
1950년대 부산시 남구 우암동에 조성된 보건진료소 야외병상에서 적군 포로들이 치료를 받고 있다. [사진 주한스웨덴대사관]
부산으로 몰려든 피란민을 위한 국제 지원도 이뤄졌다. 무엇보다 전염병 확산을 막을 의료진이 필요했다. 유엔의 이름 아래 3000여명이 넘는 의료진이 부산으로 와 진료에 나섰다. 또 당시 42개국에서 지원한 115억원(783만 달러)으로 건설, 생필품 보급, 교육 등 국제적 구호가 이뤄졌다. 60여 개국으로 구성된 유엔의 피란민 구호 활동은 1950년 10월부터 6년간 이어졌다.
가족을 잃은 전쟁고아는 아동수용시설에서 보호받았다. 애린원, 새들원, 성애원, 남광아동복지원, 해피마운틴, 매실보육원이 대표적이다. 해피마운틴은 고아뿐 아니라 극빈 환자에게 무료 치료를 베풀었던 부산 최초의 소아과 병원이 됐다. 1950년 4월 개원한 메리놀 병원은 피란민 무료 진료를 해 ‘부산 메리놀 자선병원’으로 불리기도 했다.
국제사회가 보내준 다량의 구호 물품은 부산항 1부두로 들어왔다. 쌀을 비롯해 의류, 연료, 의료품, 건설 자재까지 쉼 없이 부산항으로 들어왔다. 구호 물품은 생활의 터전을 잃고 막막했던 피란민들에게 재건의 불씨로 작용했다.
전성현 동아대 사학과 교수는 “피란수도 부산은 전쟁 후유증까지 끌어안은 포용의 공간”이라며 “전쟁 중에도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고, 국제 연대로 재건에 성공한 최초 사례인 만큼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해 미래 세대까지 보존해야 할 가치가 충분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