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훈씨는 단호했다. 그럴 법도 했다. 세계 최고 악단들을 지휘하던 명지휘자에게 국내 활동을 부탁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그의 거절은 그 때문이 아니었다. 고국에 머물며 일하는 건 그에게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문제는 내가 맡아달라고 부탁한 바로 그 악단에 있었다.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치던 명지휘자 정명훈씨. 중앙포토
" 서울시향은 절대로 바뀌지 않습니다. 맡을 수 없습니다. "
그랬다. 그가 콕 찍어 거절한 건 서울시향, 즉 서울시립교향악단이었다.
" 소문을 들었습니다. 수준이 너무 떨어져서 거의 못 쓸 정도라더군요. 그런 곳을 맡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
나는 그를 설득하기 위해 비장의 복안까지 내놨다.
" 지금의 시향은 사실상 해체하고 재단법인 형태로 새 시향을 만들 겁니다. 새 시향의 구성과 운영 전반에 걸쳐서 전권을 드리겠습니다. 단원 모집에서부터 운영, 공연까지 모두 원하는 대로 하십시오. "
그래도 그는 굳은 표정을 풀지 않았다. 한참을 설득한 뒤에야 결국 진짜 거절 이유를 들을 수 있었다.
" 시장님, 시장님이 이 바닥을 잘 몰라서 그러십니다. 국내에서 악단을 새로 만들면 거기에 아는 사람을 집어넣으려고 온갖 종류의 ‘백’이 총동원됩니다. 시장님께도 무수히 많은 청탁이 들어올 겁니다. 그러면 결국 시장님께서 사람들을 추천하게 되고, 제가 그걸 거절하기 어려워집니다. "
충분히 이해할 만한 사유였다. 실제 기존 시향 단원 중에는 실력도 없으면서 연줄과 뒷배로 들어온 이들이 적지 않았다. 정 감독이 그 사실을 모를 리 없었다. 그래서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 일절 관여하지 않겠습니다. 다른 사람도 간섭할 수 없게 하겠습니다. 전적으로 정 선생이 원하는 사람들을 뽑아서 새 시향을 만드십시오. "
그제야 그의 표정이 바뀌기 시작했다.
" 정말 그렇게 하실 수 있겠습니까? "
나는 재차 다짐했다.
" 네, 정말로 그렇게 하겠습니다. "
그러자 그가 못을 박았다.
" 그럼 제가 블라인드 테스트를 해서 단원을 뽑겠습니다. 지원서는 일절 보지 않고, 뉘 집 자식인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연주만 듣고 선택하겠습니다. "
나는 쾌히 승낙했다.
대체 음악인들이 왜 금속노조에? MB 실소 농담에 관계자 ‘빵’터졌다
나는 클래식 음악 애호가다. 현대건설에 입사한 이후 태국 고속도로 건설 현장 파견을 시작으로 외국에 자주 나가면서 본격적으로 클래식에 빠져들었다. 싱가포르 출장 때 큰마음 먹고 당시 전축이라 불렸던 고급 오디오 세트를 구매해 국내로 들여왔다. 지금도 가지고 있는 그 전축으로 거장들의 음악을 원 없이 들었다.
2009년 2월 23일 이명박 대통령과 김윤옥 여사가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희망과 나눔의 새봄음악회에 참석해 관중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임원이 된 이후에는 출장길에 뉴욕필하모닉·빈필하모닉·베를린필하모닉 등 세계 최고 교향악단들의 연주회장을 즐겨 찾았다. 런던 출장 때 파리에서 좋은 공연을 한다는 정보를 입수해 밤 비행기로 두 나라를 넘나들면서 공연을 관람하기도 했다. 그렇게 클래식에 빠져 열심히 듣다 보니 어지간한 곡은 모두 알게 됐을 뿐 아니라 어느 악단의 연주인지도 구분해낼 정도가 됐다.
당시 서울시향은 서울시가 직영으로 운영하던 세종문화회관의 산하기관이었다. 하지만 서울시향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일단 공연 자체가 많지 않았다. 당시만 해도 시향은 가뭄에 콩 나듯 드문드문 공연했다. 그리고 미안한 얘기지만 수준이 낮았다.
세계적인 도시로 성장한 서울의 위상에 걸맞은 시향으로 개혁하고 싶었다. 그런데 서울시 담당자가 펄쩍 뛰면서 말렸다.
" 시장님, 안 됩니다. "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 아니, 왜 안 된다는 겁니까? "
그의 입에서 의외의 말이 나왔다.
" 단원들 대부분이 노조원입니다. "
나는 잘 못 들었나 싶어 다시 물었다.
" 노조원요? 아니, 예술을 하는 사람들이 무슨 노동조합입니까? 도대체 음악가가 가입하는 노조는 어떤 노조입니까? "
그가 잠시 주저하더니 입을 열었다.
" 민주노총 금속노조입니다. "
어이가 없었다. 금속노조는 자동차·선박·중장비·철강엔진 등을 만드는 기업의 노동자들이 가입하는 곳이다. 음악가와 금속노조가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나는 실소를 섞어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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