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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게 놓인 하나의 식탁… 소셜 다이닝이 바꾸는 중식 문화 [쿠킹]

중앙일보

2026.07.29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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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갈라디너의 주제는 '진미양생회(珍味養生會)'입니다. 음식과 약의 뿌리가 같다는 '식의동원(食醫同源)'의 철학을 담은 요리를 준비했습니다. 마음껏 즐겨주시길 바랍니다." "

지난달 서울 마포구 중식 레스토랑 '핑하오'. 왕병호 셰프의 인사말이 끝나자 길게 놓인 하나의 테이블에 시선이 모였다. 앳된 대학생부터 나이 지긋한 어르신까지, 나이도 직업도 제각각이었지만 공통점은 하나였다. 중식을 좋아한다는 것.

중식미식모임 '열혈팬도' 3번째 갈라디너 모습. 사진 열혈팬도

중식미식모임 '열혈팬도' 3번째 갈라디너 모습. 사진 열혈팬도


이날 갈라디너는 엄윤성 셰프를 비롯해 진공화, 여명위, 안영우, 주진호, 어웅재, 배재완 셰프 등 7명이 함께 준비했다. 시작을 알린 게살냉채를 시작으로 검은콩소스 장어, 해선장 연잎오리, 어향소스 건전복찜, 몽골리안 소고기, 중식냉면, 디저트인 빠스까지 '식의동원'을 주제로 한 코스가 차례로 이어졌다. 요리가 나올 때마다 셰프들은 식재료와 조리법, 메뉴에 담긴 의미를 직접 설명했다.

식사 중간에는 셰프와 참가자가 함께하는 이벤트도 마련됐다. 특급호텔 셰프와 오너 셰프가 즉석에서 라면 요리를 선보이자 참가자들은 팀을 나눠 응원전을 펼치고 심사에도 참여했다. 셰프와 손님의 경계는 자연스럽게 허물어졌고, 처음 만난 사람들 사이에서도 대화가 이어졌다. 행사가 끝날 무렵에는 참석자들이 연락처를 주고받고 셰프와 기념사진을 찍거나 다음 행사 일정을 묻는 모습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여름 보양식을 주제로 구성된 7가지 코스 요리. 사진 열혈팬도

여름 보양식을 주제로 구성된 7가지 코스 요리. 사진 열혈팬도

최근 외식 문화는 단순히 맛집을 찾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고 있다. 같은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식탁에 둘러앉아 음식을 매개로 대화를 나누는 '소셜 다이닝(Social Dining)'이 새로운 식문화로 자리 잡는 모습이다. 셰프의 요리 철학과 식재료의 배경을 듣고, 낯선 사람들과 미식 경험을 공유하는 것 역시 외식의 중요한 즐거움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날 행사를 연 중식 미식 커뮤니티 '열혈팬도(熱血 Pan&刀)'도 이런 흐름 속에서 성장했다. 2015년 14명의 화교 셰프가 뜻을 모아 시작한 이 모임은 중식을 좋아하는 소비자와 셰프를 연결하는 커뮤니티다.

매 행사에는 호텔, 파인다이닝, 동네 맛집 등 다양한 업장의 셰프들이 참여해 하나의 코스를 함께 완성한다. 참가자들은 음식을 맛보는 데 그치지 않고 셰프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조리 과정과 식재료에 대한 설명까지 함께 듣는다. 셰프들에게는 자신의 요리를 선보이는 무대이자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는 배움의 자리다.

행사마다 역할도 달라진다. 요리만 담당하는 것이 아니라 서비스와 진행, 기획까지 직접 맡는다. 단순히 좋은 요리를 만드는 셰프를 넘어 하나의 갈라디너를 함께 기획하고 운영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우기 위해서다.

열혈팬도 셰프들의 평균 나이는 30대 중반. 행사를 준비하며 서로가 서로의 스승이 된다. 사진 열혈팬도

열혈팬도 셰프들의 평균 나이는 30대 중반. 행사를 준비하며 서로가 서로의 스승이 된다. 사진 열혈팬도

초창기부터 열혈팬도의 미식 행사에 참여해 온 김영희·전혜영 모녀는 "여기 한 번 오면 평소 가던 중식당과 비교하게 된다"며 "셰프들의 설명을 들으며 음식을 맛보는 경험 자체가 특별하다"고 말했다.

열혈팬도의 관심은 미식 행사에만 머물지 않는다. 궁극적으로는 중식 셰프들이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드는 데 있다. 엄윤성 열혈팬도 회장은 "셰프 한 사람이 잘되는 것이 아니라 한국 중식 생태계 전체가 함께 성장하는 문화를 만들고 싶다"며 "셰프들이 서로 배우고 협력할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열혈팬도는 '열혈팬도 미식협동조합'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팝업 행사와 봉사활동을 넘어 지역 농가와 협업하고, 청년 셰프를 육성하며 한국형 중식을 연구하는 기반을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협동조합은 전국 각지의 식재료를 발굴해 중식과 연결하고, 젊은 셰프들의 연구와 교류를 지원하는 역할을 맡는다. 한국의 발효 기술과 식재료를 활용한 중식 연구도 함께 추진할 계획이다. 앞으로 열리는 미식 행사 역시 지역 식재료와 제철 재료, 발효 기법 등을 주제로 다양한 시도를 이어갈 예정이다.

길게 놓인 하나의 식탁에서 시작된 만남은 이제 셰프와 소비자, 지역을 잇는 커뮤니티로 이어지고 있다. 소셜 다이닝을 매개로 한 열혈팬도의 실험은 한국 중식 문화의 새로운 연결 방식을 보여주고 있다.

안혜진 쿠킹 기자


안혜진([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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