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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 북한군 귀순때 총기난사? 김일병의 25발, 그 새벽 진실

중앙일보

2026.07.29 18:24 2026.07.29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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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을 쫓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카메라를 들고, 취재수첩을 펼치고, 수십 년 묵은 기록을 뒤지며 진실의 파편을 모아온 사람들. 〈그것이 알고 싶다〉〈꼬꼬무〉〈용감한 형사들〉을 만든 최삼호 PD와 장윤정 작가가 함께 이 시리즈를 씁니다. 그들이 꼽은 최악의 사건 현장 속으로 여러분을 안내합니다.

당신은 지금 사건 현장에 있습니다
https://www.joongang.co.kr/plus/series/352

연천 530GP 총기 난사 사건

시사 다큐멘터리 한 편을 제작하려면 대개 100시간 이상 분량의 촬영물이 나온다.
피디가 현장에서 촬영해온 영상을 가장 먼저 보는 사람은 작가다. 인터뷰이의 표정과 말투, 논리를 꼼꼼히 체크하며 밑줄을 긋고 별표로 표시한다. 이 장면은 완성된 편집본에 꼭 넣자는 뜻이다.

누군가의 눈물 위에 별 표시를 그려 넣을 정도로 종종 우리는 냉정해졌고, 또 잔인해졌다. 그러지 않고는 견디기 힘든 일이란 변명도 덧붙였다. 그럼에도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된 후로 어린 자식을 잃은 부모의 슬픔과 마주하는 순간만큼은 의연하기가 어려웠다.

이 현장을 마주할 때도 그러했다.

#1. 그날 새벽, 연천 530GP

새벽 2시를 넘긴 시각, 칠흑 같은 어둠이었다.
지뢰밭과 철책으로 둘러싸인 경기도 연천의 최전방 초소. 서른여섯 명의 병사들이 잠든 내무반은 고른 숨소리로 가득했다.

어둠 속에서 그림자 하나가 조용히 움직였다. 잠든 병사의 총을 향해 손을 뻗은 그가 화장실로 들어갔다.

철컥—

노리쇠를 전진시키는 소리. 잠시 후 내무반 문이 소리 없이 열렸다. 그 틈으로 둥근 쇳덩이 하나가 던져지고 문이 닫혔다.

쾅—

폭발음이 들려왔다. 곧이어 총성이 이어졌다.

먼저 뛰어나온 건 체력단련실에 있던 GP장 김종명 중위였다. 그는 총에 맞아 쓰러졌다. 뒤이어 상황실 문을 열고 나온 근무자에게도 총구가 불을 뿜었다. 다행히 이번엔 빗나갔다. 취사장 쪽에서 인기척을 느낀 김인창 상병 역시 표적이 됐다.

다시 내무반. 문이 열리고, 탕탕탕— 스물다섯 발의 총성이 어둠을 가르며 쏟아졌다.

8명이 숨지고 4명이 부상을 입었다. 2005년 6월 19일, 연천 530GP에서 벌어진 일이다.

대체 그날 밤, 그곳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530GP는 36명의 부대원이 생활했던 막사다. GP는 경계초소(Guard Post)의 약자. 비무장지대 안에 있는 남북 최전방 감시초소다. 연천 28사단 관할의 530GP는 남방한계선 철책에서 비무장지대 안쪽을 향해 북쪽으로 1.5㎞가량 떨어진 독립 벙커였다.

당시 군 수사기록·상황 보고서·부대 일지·장병 진술서 등에 따르면, 상황 근무자들과 소대원들은 최초 상황이 발생했을 때 ‘북한군의 공격’으로 인지했다. 그런데 뜻밖의 진술이 나왔다.

“저에게 총을 겨눈 사람이 아군 군복을 입고 있었습니다.”

가까스로 총알을 피한 상황실 근무자의 증언이었다. 보초를 섰던 병사들이 소집됐다. 그중 일병 김동민의 군복 상의에서 총알이 발견됐다.

" “네, 제가 쐈습니다.” "

그는 순순히 자백했다.

 전방부대 총기 난사 사건의 피의자인 김동민 일병이 국회 진상조사단의 조사를 받은 뒤 걸어가고 있다. 사진 중앙포토

전방부대 총기 난사 사건의 피의자인 김동민 일병이 국회 진상조사단의 조사를 받은 뒤 걸어가고 있다. 사진 중앙포토


“몇 발이나 쐈어?”
“그때는 몰랐는데, 나중에 스물다섯 발 다 쐈다는 걸 알았습니다.”

진술은 놀라울 만큼 담담했다.
3년의 군사재판 끝에 김 일병에게 사형이 확정됐다. 군이 밝힌 범행 동기는 선임들의 괴롭힘과 언어폭력. 사건은 그렇게 종결된 듯 보였다.

#2. 잦아들지 않는 의심들


‘김 일병 총기 난사 사건’을 빅데이터로 돌려보니 연관 검색어 상위에 이런 단어들이 떠올랐다.
북한, 작전, 피격, 의문사, 은폐.

의혹의 뿌리는 네 가지였다.

첫째, 사진 속 내무반이다. 수류탄이 터졌다는 방 천장이 멀쩡하고, 선풍기 날개도 깨지지 않았다. 관물대에는 총탄 흔적도 없었다. 수류탄이 떨어진 위치에 있었다던 박의원 상병은 폭발 때문에 복부 쪽이 심각하게 훼손됐지만 옆에서 자던 다른 병사들은 대부분 큰 부상을 입지 않았다. 유가족들은 물었다. 수류탄이 터졌는데 어떻게 방이 이렇게 멀쩡할 수 있느냐고.

유족들이 의혹을 제기한 당시 내무반 현장 사진. 유족 제공

유족들이 의혹을 제기한 당시 내무반 현장 사진. 유족 제공


둘째, 파편의 모양이다. 아군이 사용하는 세열 수류탄은 1000여 개의 쇠구슬로 구성돼 있는데, 병사들 몸에서는 원형 구슬이 아닌 큐빅 형태의 각진 파편이 나왔다는 것이다. 의혹을 제기한 측에선 이것이 북한군이 쓰는 RPG-7의 파편일 가능성을 제기했다.

가장 많은 폭발 피해를 보고 현장에서 숨진 박 상병의 아버지도 같은 의심을 품었다.

“우리 애 온몸이 다 시커멓게 탔어요. 생존 사병들한테 들었는데 교육 받을 때 북한에서 RPG-7(대전차 로켓추진 유탄발사기의 일종)을 무기로 쓴다고 하더라고요. 거기서 북한 GP가 보이거든. 유탄이 여기까지 올 수 있으니까 이게 다 화력으로 당한 거라고.”

셋째, 지문이었다. 사건 현장에서 수거한 탄창과 수류탄 손잡이의 감정 결과에는 ‘잠재 지문이 현출되지 않았음’이라고 적혀 있다. 총을 쏘고, 탄창을 끼우고, 수류탄 안전핀을 뽑은 사람의 지문이 단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넷째, 가장 논쟁적인 대목은 시점이었다. 사건 엿새 전인 6월 13일, 북한군 초급병사 리영수가 강원도 철원의 3중 철책을 홀로 통과해 귀순했다. 체포된 지 이틀 만인 6월 19일, 합동참모본부는 리영수에 대해 “대공 용의점 없는 단순 귀순자”라는 발표를 냈다. 공교롭게도 그날 새벽, 530GP에서 총성이 울린 것이다.

당시는 민감한 시점이었다. 6·15 남북 공동선언 5주년을 기념해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우리 측 대표단 200여 명을 이끌고 방북 중이었다.

하필 우리 측 대표단이 돌아오기로 예정된 날 아침에 리영수가 귀순했고, 비무장 지대엔 ‘진돗개 둘’ 경계태세가 발령됐다. 그리고 오랫동안 군은 사건 당일 야간 작전은 없었다는 입장을 유지했다.

그런데 사건 2년 뒤 국회 국방위원회에 제출한 답변서에는 6월 18일 밤 11시부터 19일 새벽 1시 사이, 530GP 양옆에 있는 520·531GP가 야간 차단 작전을 실시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사고가 난 530GP만 작전에서 빠져 있었다는 것이다.

왜 말이 바뀌었는지, 왜 하필 사고가 난 초소만 작전에서 제외됐던 것인지. 명쾌한 해답은 없었다.

(계속)

✓ 왜 지문이 감식되지 않았을까
✓ 왜 동그란 쇠구슬이 아닌 큐빅 형태의 파편이 나왔을까
✓ 수류탄이 터졌는데 왜 천장과 선풍기는 멀쩡했을까
✓ 상부는 왜 부검을 막았을까

8명이 숨지고 4명이 부상을 입은 연천 530GP 총기 난사 사건의 진실, 아래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449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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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삼호.장윤정([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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