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 종이신문을 사려는 독자가 몰리면서 정가의 50배까지 폭등하는 특이한 현상이 벌어졌다. 해당 신문은 지난 25일 자 광시일보(廣西日報)로 수학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필즈상을 수상한 왕훙(王虹·35) 프랑스 고등과학연구소(IHES) 교수의 성장 스토리를 꼼꼼한 현장 인터뷰로 재구성한 3400자 분량의 인물기사를 1면에 실었다. 광시성은 왕 교수의 고향인 핑러(平樂)현 사쯔(沙子)진의 상급 행정 단위다.
특히 최고 정치지도자의 동정 기사를 1면 머리기사로 싣는 중국 신문계의 관행을 과감하게 깨버린 편집이 현대판 ‘낙양지귀(洛陽紙貴·글이 유명해져 종잇값이 뛴 고사)’를 만들었다고 홍콩 명보는 30일 지적했다.
25일 신문이 발행되자 중국 소셜미디어(SNS)에는 기사를 읽은 독자들의 호평이 이어졌다. 곧 정가 1.35위안(289원)짜리 종이신문은 중고 거래 플랫폼에서 최고 65위안(1만3900원)에 팔리기 시작했다.
중국 독자들은 ‘왕의 추측(王的猜想)’이라는 기사 제목부터 매료됐다. ‘왕(王)’은 왕 교수의 성이자, ‘수학 여왕’의 대관식을 중의적으로 함축했다. ‘추측(猜想)’은 그가 증명한 ‘카케야 추측(중국어 挂谷猜想)’이자 그의 인생까지 함축적으로 의미한다는 분석이 상하이 온라인 매체 펑파이 등을 통해 퍼져나갔다.
기사는 4살 때 팔에 화상으로 입원 생활을 하며 독학했던 유년기, 시골 소도시에서 명문 베이징대학을 턱걸이로 입학했다가 전공을 지구과학에서 수학으로 전과한 사연, 파리 유학 시절 문학과 건축에 심취해 반 년간 수학에서 손을 놓았던 방황 등 ‘천재의 각본’이 아니라 ‘보통 사람의 성장기’를 12명의 실명 인터뷰를 통해 촘촘하게 그려냈다.
그러자 웨이보(微博·중국판 X)에는 ‘올해 최고의 제목’이라는 찬사와 함께 광시일보 신문사 앞까지 찾아가 종이신문을 구하려는 독자들의 인증샷이 속속 올라왔다. 일부 네티즌은 중국중앙방송(CC-TV)이나 대형 광저우일보 계열 매체가 왕훙 교수를 ‘시골 여학생의 인생 역전극’으로 묘사한 것과 비교하며, 광시일보가 성별·외모·출신을 앞세우는 관행에서 벗어났다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
중국 수학자 왕훙(오른쪽) 프랑스 고등과학연구소 교수와 덩위 시카고대 교수가 지난 23일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국제수학자대회서 중국인으로는 처음으로 필즈상을 수상한 후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기념으로 종이신문을 수집하려는 수요가 폭등하자 광시일보는 29일 오후 25일 자 종이신문을 재인쇄하여 정가로 재판매에 나섰다. 다만 1인당 3부로 구매를 제한했다. 그러나, 접속자가 몰리며 주문 시스템이 마비돼 ‘서버가 마비됐다’는 공지를 다시 올려야 했다.
왕훙 교수를 취재했던 기자들은 27일 자 광시일보 1면에 취재 후일담과 홍콩의 한 독자가 보내온 반응을 실었다. “왕훙의 이야기가 감동적인 이유는 사람들이 흔히 상상하는 ‘천재의 각본’에 부합하거나, ‘시골 출신 명문대 합격생의 고난 극복 이야기’라는 진부한 이야기 때문이 아니라, 누구나 한 번 쯤 만나봤을 법한 ‘어려움에 굴복하지 않고, 묵묵히 노력하며, 똑똑하고 통찰력 있는’ 옆자리 반 친구처럼 역경 속에서도 열정을 잃지 않는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입니다.”
한편, 중국 정부는 왕훙과 함께 필즈상을 수상한 덩위(鄧煜·37) 시카고대 교수에게 30일까지 공식 축전을 보내지 않았다. 이를 놓고 두 필즈상 수상자가 현재 중국이 아닌 프랑스와 미국에서 근무하기 때문이 아니냐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