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현지시간) 이집트 다미에타 항구의 모습. 해당 항구는 전날 드론 공격을 받았다. 로이터=연합뉴스
미국과 이란의 군사 충돌이 재개된 가운데 이집트 항구에 정박해있던 미국 소유 액화천연가스(LNG) 선박이 공격받았다. 이란 전쟁의 불길이 아라비아해와 홍해·흑해·카스피해를 넘어 지중해로까지 번지는 양상이다.
이집트 정부는 30일(현지시간) “전날 지중해 연안 다미에타 항구에 정박해 있던 LNG 관련 선박 2척이 드론 공격을 받아 화재가 발생했다”며 “관계 당국은 이번 사건의 배경 등을 계속 조사하고 있으며 이집트의 국익과 안보를 지키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드론이 부유식 LNG 저장 설비인 미국 선박 ‘에네르고스 윈터’를 타격하면서 화재가 발생했고, 인근에 정박 중이던 그리스 선박 ‘가스로그 살렘’으로 불이 옮겨붙었다고 한다.
김영옥 기자
다미에타 항구는 지중해 연안에 위치한 이집트의 주요 에너지 거점으로, 중동과 유럽을 잇는 LNG 공급망 핵심 시설 중 하나로 꼽힌다. 이번 공격의 배후를 자처한 단체나 세력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다만 이란과 예멘 후티 반군 등 역내 친(親)이란 세력이 미국과의 휴전 체제 붕괴 이후 중동 전역의 미군 기지와 에너지 시설 등 민간 인프라를 드론·미사일로 잇달아 공격하는 상황이다.
이란을 둘러싼 해상 충돌 범위는 이미 유라시아 주요 항로로까지 번진 상황이다. 뉴욕타임스(NYT)는 지난 28일 이란이 카스피해에서 자국 화물선이 우크라이나의 공격으로 피해를 입은 데 대한 보복으로 우크라이나 흑해 항구에 탄도미사일을 발사하는 방안을 검토했다고 보도했다. 앞서 우크라이나는 25일 이란과 러시아 간 군사 협력을 차단하기 위한 목적으로 카스피해에서 이란 상선을 공격했다. 카스피해와 흑해는 지난달 17일 미국과 이란이 종전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기 전까지 이란 전쟁의 직접적인 영향권 밖에 있던 지역이다.
29일 미 중부사령부(CENTCOM)가 이란에 대한 공습 재개를 알리며 공개한 영상에서 캡처한 화면. 로이터=연합뉴스
홍해에선 이미 전운이 짙어졌다. 지난 20일 후티 반군이 사우디아라비아의 원유 수출을 겨냥해 홍해의 길목인 바브엘만데브해협 봉쇄를 선언하면서다. 후티 반군은 25일 사우디 국영 석유회사 아람코 시설을 공격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에 사우디는 미국과 함께 이라크 내 친이란 세력을 겨냥한 공습에 나서며 사실상 참전을 공식화했다.
미 중부사령부와 사우디 국방부는 28일 “72시간 동안 이라크 동부에서 활동하는 친이란 민병대 시설을 타격했다”고 발표했다. 사우디는 홍해를 통항하는 선박을 후티의 공격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국제 연합체 구성도 추진하고 있다.
그럼에도 홍해의 상황이 쉽게 진정될 것 같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로이터통신은 날 “후티 반군이 바브엘만데브해협을 통과하는 선박에 통행료를 부과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구체적인 시행 시점은 정해지지 않았지만 계획이 현실화할 경우 미국을 향한 경제적 압박 수단이 추가되는 셈이다.
지난 25일 후티 반군 대변인 야히야 사리가 영상 성명을 발표하는 모습. 성명에 따르면 후티 반군은 사우디 국영 석유기업 아람코 시설을 공격했다. EPA=연합뉴스
호르무즈해협 일대에서도 충돌은 한층 격화하고 있다. 이란은 전쟁 발발 이후 페르시아만과 아라비아해를 연결하는 호르무즈해협의 통항을 제한하며 미국을 압박했다.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국제 유가 등 경제 여건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겨냥한 것이다.
양국 간 종전 MOU가 사실상 무산된 배경에도 호르무즈해협을 둘러싼 이견이 자리 잡고 있다. 이란은 합의 이후에도 호르무즈해협에 대한 영향력을 유지하겠다며 통항 선박에 대한 통행료 징수 방침을 고수했고 해협을 오가는 선박을 겨냥한 공격도 이어갔다. 이에 미국은 이란에 대한 재공습을 결정했다.
미군은 지난 11일 이란을 타격한 뒤 13일 연속 공습을 이어갔다. 이후 24일 공격을 중단했지만 29일 다시 이란을 겨냥한 공습을 단행했다. 미 중부사령부(CENTCOM)는 X(옛 트위터)를 통해 “미 동부시간 29일 오후 10시 중부사령부 전력은 28 미군을 향한 이란의 미사일 공격 시도에 대응해 이란을 상대로 한 대규모 공습 작전을 성공적으로 완료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