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기술은 언제나 단기적 과대평가의 거품이 꺼진 뒤에야 과소평가됐던 진짜 혁명의 얼굴을 드러낸다. AI도 그 길을 걷고 있다.
2000년대 초, ‘닷컴’이라는 이름만으로 주가는 폭등했다. 많은 이들이 광기를 기억한다. 오늘날 AI를 보며 데자뷔를 느끼는 이유다.
그러나 버블의 잔해 아래에서 진짜 변화가 진행됐다. 과잉 투자로 구축된 인프라와 데이터는 산업의 토대가 됐고, 인터넷은 어느새 혁명이 아닌 일상이 됐다. 당시의 예측은 속력에서는 틀렸지만, 방향에서는 옳았다. 인터넷은 시장의 수익 수단이 아니라 사회 구조를 재편한 기술이었다.
버블을 우려하는 목소리는 갈수록 커지지만, 인터넷의 역사가 보여주듯 버블이 혁명을 끝내는 일은 없었다. 오히려 버블의 연이은 생성과 소멸은 살아남을 기술과 기업을 가려내는 과정이었다.
지금 인터넷이라는 토대 위에서 새 혁명을 준비하는 AI는 10년 뒤에도 세상을 바꾸고 있을까. 20여 년 전 대중은 ‘인터넷이 세상을 바꾼다’는 서사를 그대로 받아들였지만, 학습 효과 덕분에 지금은 훨씬 신중하다. 그런데도 AI 업계는 막연한 미래 대신 ‘2030년’ 같은 구체적 시점을 제시하며 기대를 키운다.
AI의 변혁성 자체에는 이견이 거의 없다. 문제는 그 변화가 지금의 생성형 인공지능(GAI)의 연장선에서 이뤄질지, 아니면 전혀 새로운 기술 패러다임으로 나타날지 누구도 확신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기술은 거의 매일 예상을 벗어난 방향으로 발전한다. 그런데도 업계는 범용인공지능(AGI), 초지능(ASI), 월드 모델 같은 개념을 마치 눈앞에 다가온 현실인 양 내세우며 그 도래 시점까지 점친다.
버블의 경고음은 이미 사방에서 울리고 있다. 누군가는 그 대가를 치를 것이다. 인터넷이 지나온 20년의 궤적이 증명하듯 미래 기술은 언제나 우리의 기대나 예상과 다른 모습으로 도착한다. 그러나 일단 현실이 되면 이전의 세계를 기억조차 하지 못할 만큼 강력하다.
세상을 바꾼다는 확신은 때로 버블이라는 비싼 대가를 치르고서야 실체를 드러낸다. 우리는 이미 몇 차례의 AI 겨울을 거쳤고, 이제 또 한 번의 버블을 통과할지 모른다. 그러나 10년 뒤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것은 오늘의 모든 AI가 아니라 그 버블을 견디고 살아남은 AI일 가능성이 크다. 오늘의 버블은 훗날 혁명의 비용으로 기억될지 모른다. 역사는 미래를 예측한 사람보다 버블을 견디고 살아남은 기술을 더 오래 기억한다. 버블이 역사의 에피소드라면, 살아남은 기술은 역사의 다음 장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