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망했다는 생각만 계속 들어요”라는 내담자 이야기를 들으면, 저 역시 암담한 마음이 들어 ‘그렇게 느낄 수 있겠어요…’라고 함께 풀 죽어 이야기를 건네면서도, 한편으로는 언젠가 다시 다루어야 할 주제를 가만히 기록해 둡니다. 이후로도 자신을 계속해서 ‘판단’하는가?
최근 혹시 ‘나 오늘 좀 별로네’ ‘내가 이걸 시작한다고 뭐가 되겠어?’하며 나 자신에 대해 품었던 생각들이 있는지요? 그 모든 생각은 ‘판단’입니다. 사실이 아닙니다. 물론 객관적인 자기 판단이 필요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감당하기 힘든 고통을 오래 겪으며 자신을 함부로 판단하는 것이 습관이 됩니다. 이 경우에는 나에 대한 어떤 평가도 판단도 멈추어야 합니다. 자신에 대한 판단을 거두고 너그러이 보는 것, 이것이 나에 대한 ‘자비(compassion)’입니다.
자신에 대한 판단·평가 습관되면
낮은 자존감, 우울, 불안 가져와
자신을 너그럽게 보는 ‘자비’필요
저희 연구실에서 사용하는 ‘자기-자비 척도(Self-compassion scale)’에서는 자신에게 너그러운 사람의 특성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눕니다. 높은 자기-자비(self-compassion, 나의 실패와 결함, 고통을 보편적인 인간 경험으로 받아들이는 것)와 낮은 자기-냉대(self-coldness, 자신을 섣불리 판단하곤 세상과 단절되는 것)입니다.
이 중에, 한국 사람들은 전자를 ‘그나마’ 잘합니다. “근데 자기야, 사람 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기야” “내가 아는 사람도 그렇다더라, 근데 또 살아지더라” “말을 안 할 뿐이지 다들 비슷해”하며 인간의 필연적이고 보편적인 고통을 직면합니다. 그리곤 다시 삶으로 돌아와 운동이나 종교, 명상, 모임을 통해 자신을 돌봅니다.
다만 한국 사람들에 조금 더 두드러지는 특성이 ‘자기-냉대’입니다. 우리는 우리 몸과 마음을 꽤나 잘 챙기지만, 한편으로는 매일매일 자동적으로 나의 모든 것을 평가합니다. 외모, 성격, 능력, 성취…. 저희 연구실에서 위 척도를 사용해 올해 초 발표했던 1200여 명 청년 대상 연구의 골자도 그러했습니다. 아동기에 방치되거나 학대 받는 일들은 다수가 경험하는데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 2023년 통계 기준, 전체 인구의 64%) 이것이 우울·불안으로 이어지는 그 경로 아래에는 자신의 결함을 가혹하게 비판하고 세상에서 고립되는 ‘자기-냉대’가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즉, 압도적인 역경을 경험했을 때, 자신을 함부로 판단하지 않는 이들은 우울과 불안을 덜 경험했습니다.
실제로 내가 부족하거나 미성숙했을 수도 있습니다. 비판과 거절을 경험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아시잖아요. 실은 모두들 그렇게 결함이 많습니다. 한심한 구석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모두 그렇게까지 혹독한 자기 비난을 하며 살지는 않습니다. 물론 스스로에게 유독 엄격했던 분들이 갑자기 자신에게 자비를 행하기는 어렵습니다. 꽤나 오래, 시간을 들여 바꾸어 가야 할 부분입니다. 오늘은 여러 기법 중 두 가지를 여기 놓고 가니, 한동안 시도해보세요. 뜬구름 잡는 이야기가 아닌, 연구들로 효과성이 입증된 방법입니다.
첫째, 내 안의 판단을 알아차리세요. 이미 습관이 되어 내가 숨 쉬듯 나와 타인을 판단하고 있음을 알아차리세요. ‘나는 어차피 안 될 거야’ 하는 생각이 들 때 ‘아, 내 판단이 여기 있네’, ‘그런데 저 사람은 왜 저렇게 한심하게 살지’ 싶을 때 ‘아, 여기에 또 내 판단이 있네’라고. 이것이 나의 판단을 잠자코 있게 합니다. 나의 판단을 사실로 믿고 휘둘리는 일이 줄어듭니다(자신뿐 아니라 타인에 대한 평가도 서서히 멈추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결국 그 잣대가 나에게도 다시 돌아올 테니까요).
둘째, 나와 타인과 다시 연결되는 것입니다. 이 작업은 많은 자비 기반 개입에 필수적으로 들어가는 단계입니다.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과, 낯선 이와, 모든 생의 고통을 알아차리세요. 또한 이들이 알게 모르게 나를 살게 했음을 감사히 곱씹어주세요. 가장 강하고 가장 성숙한 이들만이 건넬 수 있는 자애가 내게 있는 듯, 모든 생에게 다정하고 친절하게 대해 주세요. 이것이 나의 우울과 불안, 감정적 격랑을 실제로 낮추고 나를 고립에서 벗어나게 하고, 또 다른 사람을 살게 합니다.
‘그런데 저는 진짜 망한 인생인데요’라는 생각이 여전히 맴돈다면, 이제 알아차릴 순간입니다. ‘어, 내 삶을 망했다고 폄하하는 나의 판단이, 여기 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