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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원의 이코노믹스] 정년 연장은 ‘연령’이 아니라 ‘임금’의 문제다

중앙일보

2026.07.30 08:12 2026.07.30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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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작용 줄이는 정년 연장 조건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전문대학원 원장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전문대학원 원장

나이 60세는 ‘환갑(還甲)’이다. 태어난 해의 간지(干支)가 한 바퀴 돌아 다시 시작하는 해로서, 새로운 인생이 시작된다는 의미를 갖는다. 철학적 새 출발의 시간이지만, 사회경제적으로 60은 우울하다. 법적 정년으로 주된 직장을 떠나야 하는 시간이고, 소득 공백이 시작되는 시점이다. 삶의 불안, 불확실이 시작되는 시기인 셈이다. 정년과 연금 수급 시점의 불일치 때문이다. 이는 개인의 무능이나 불운의 문제가 아니라 제도 설계의 결함이다.

직무·성과 중심으로 임금체계 개편해야 정년 연장의 부작용 줄어
직장 사다리에서 내려와도 고령자의 존엄·역할 유지되도록 해야
공정·투명한 평가 없는 직무·성과급 체계는 연령 차별 도구될 수도
정년 연장과 인사체계 개편을 서로 교환하는 집단적 합의 설계를

[사진 Gemini]

[사진 Gemini]

숫자로 보는 현실은 절박하다. 국민연금의 목표 소득대체율은 43%지만, 실질 소득대체율은 33% 안팎에 불과하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10% 낮다. 은퇴 전 소득의 3분의 1로 노후를 버텨야 한다. 노인빈곤율 또한 39.7%로 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으며, 평균(14.8%)의 세 배다.

기업복지가 안전망의 핵심인 나라에서 일자리 연장은 곧 복지 연장이다. 이 때문에 정년 연장은 ‘할 것인가 말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라 ‘해야 하는 문제’다. 하지만 우리 앞에 놓은 옵션은 모두 반작용을 포함한다. 하나는 청년 채용의 위축이고, 다른 하나는 정년 전에 일자리에서 밀려나는 조기퇴직이다. 정년 연장 수혜자가 되어야 할 두 세대가 피해자가 되는 역설. 이를 피할 길은 없을까. 많은 이론과 실증이 여러 제안을 하지만 선택은 우리의 몫이다.

정년제는 왜 존재하는가
노동경제학자 에드워드 라지어(Edward Lazear)는 1979년 ‘정치경제학저널(Journal of Political Economy)’에 실린 논문 ‘왜 정년제가 존재하는가(Why Is There Mandatory Retire ment?)’에서 제도의 경제적 본질을 규명했다. 연공형 임금은 일종의 ‘이연(移延)보상’ 계약이다. 노동자는 젊어서 생산성보다 낮은 임금을, 나이 들어 생산성보다 높은 임금을 받는다. 이 후불구조는 근속과 충성을 유인하는 장치이지만, 치명적 약점이 있다. 임금이 생산성을 초과하는 후반 구간을 어딘가에서 강제로 끊어주지 않으면 계약이 성립할 수 없다. 그 절단 장치가 바로 정년이다. 요컨대 정년은 연공급의 그림자이며, 둘은 한 몸이다.

이 이론의 함의는 오늘의 논쟁에 연결된다. 연공급을 그대로 둔 채 정년만 5년 늘리는 것은, 임금이 생산성을 가장 크게 초과하는 구간을 5년 더 연장하는 일이다. 헬러스타인과 뉴마크(Hellerstein & Neumark)의 실증연구가 보여주듯 연령-임금 곡선은 연령-생산성 곡선보다 가파르게 상승하며, OECD는 이 임금-생산성 격차가 한국·일본에서 특히 크고, 그것이 고령 근로자를 주된 일자리에서 밀어내는 압력으로 작동한다고 진단한다(Working Better with Age, 2018·2019). 정년 연장의 비용과 부작용은 연령의 문제가 아니라 임금구조의 문제라는 것이 이들 연구의 핵심 메시지다.

외국선 고령-청년 고용 상충 안 해
우리 법제도와 인사관리는 연공제의 부작용을 증폭하는 방식으로 정렬돼 있다. 되링거와 피오르(Doeringer & Piore)가 개념화한 내부노동시장, 즉 채용은 입구에 고정되고 승진·임금이 조직 내부 규칙으로 결정되는 구조가 한국 대기업에서 전형적으로 발달했다. 내부노동시장이 강할수록 기업의 인력 조정 수단은 ‘중도 채용 축소’와 ‘입구(신규 채용) 봉쇄’로 수렴된다. 즉, 정년 연장의 비용 충격이 고스란히 청년의 채용문으로 전가되기 쉬운 구조다. 여기에 한국의 임금 연공성은 세계적으로도 가장 가파르다. 근속 30년 차 임금이 신입의 세 배에 육박하는 기울기는 일본보다 급하다. 같은 5년의 정년 연장이라도 우리나라의 비용이 훨씬 크고, 부작용이 심각한 이유다.

고령자가 오래 일한다고 반드시 청년 일자리가 줄어들까. 여러 연구의 답은 ‘아니오’에 가깝다. 그루버·밀리건·와이즈(Gruber, Milligan & Wise)가 이끈 전미경제연구소(NBER)의 12개국 비교연구는, 고령자의 노동시장 잔류가 청년 고용을 잠식한다는 ‘고정된 일자리 수’ 가설의 증거를 찾지 못했다. 일자리 총량은 고정된 파이가 아니며, 고령 고용과 청년 고용 사이에 상충효과(trade-off)는 존재하지 않는다. 베르토니와 브루넬로(Bertoni & Brunello, 2021)의 연구 등 후속 실증도 같은 결론이다.

한국은 연공형 인사제도가 문제
하지만 우리는 예외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의 분석 결과, 민간 사업체의 경우 고령층(55~60세) 고용이 연장되면 청년층(15~29세) 고용이 줄어든다. 이 구축효과는 규모가 크고 연공성이 강한 사업체에 집중됐다. 한국은행 분석(2025)도 정년 연장의 고령자 고용 효과가 유노조·대기업에 쏠렸음을 확인했다. 정년 연장의 직접 수혜 계층인 중장년이라고 안전한 것은 아니다. KDI 연구는 60세 정년이 시행되기에 앞서 중장년 구간에서 오히려 조기퇴직이 촉진되었음을 보여준다. 장기근속자 비중이 정년 제도화 직후 감소한 것이다. 비용 충격이 예고되자 기업이 정년 전에 사람을 내보내는 것으로 반응한 셈이다. 정년의 제도화가 실질 정년을 단축한 역설은 데이터에 남은 기록이다.

요컨대, 청년 구축과 중장년 조기 퇴출은 정년 연장의 숙명이 아니라, 연공형 인사제도와 결합할 때 비로소 현실이 되는 조건부 현상이다. 원인이 제도라면 처방도 제도다. 정년 연장이 두 세대 모두에게 이로운 제도가 되기 위한 요건은 다음 세 가지다.

첫째는 임금체계 개편이다. 해법은 라지어의 논리에 있다. 정년이 연공급의 그림자라면, 임금이 생산성과 나란히 가도록 기울기를 눕히는 만큼 정년 연장의 비용과 부작용은 줄어든다. 방향은 근속이 아니라 직무 가치와 성과가 임금을 결정하는 직무·성과 중심 체계다. OECD가 한국에 거듭 권고해 온 처방이며, 미국·영국이 정년을 폐지하고도 세대 갈등 없이 고령 고용을 늘릴 수 있었던 전제 조건이다. 임금이 생산성을 따라가는 시장에서는 고령자를 더 쓰는 일이 청년을 덜 뽑을 이유가 되지 않는다.

두 번째는 인사제도 개편이다. 임금만 손대고 인사체계를 그대로 두는 개혁은 사상누각이다. 한국 기업의 시스템은 연차에 따라 직급이 오르고 직급이 임금과 권한을 결정하는 ‘사다리’ 구조다. 이 구조에서 60세 전후의 구성원은 조직 최상단에 적체되고, 후배가 상사가 되는 역전을 조직도 개인도 감당하지 못한다. 정년 연장이 성공하려면 사다리에서 내려와도 존엄과 역할이 유지되는 ‘격자(lattice)형’ 경력 구조가 필요하다. 관리 직책과 전문 역할을 분리해 고령 인력이 기술 전수·품질·안전 같은 전문 트랙으로 수평 이동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이는 세대 간 분업의 관점에서도 중요하다. 고령자와 청년이 서로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보완할 때 구축 효과가 사라진다.

아울러 공정하고 투명한 평가 인프라가 뒷받침돼야 한다. 신뢰할 수 있는 평가시스템 없는 직무·성과 중심 체계는 연령 차별의 도구로 활용될 가능성이 높다. 65세 고용을 정착시키는 과정에서 일본 기업들이 가장 공들인 것도 ‘재고용자’의 직무 정의와 평가·보상 기준 재정비였다.

취업규칙·단협 조정, 가장 예민한 뇌관
세 번째는 제도 전환의 법적 경로, 곧 취업규칙과 단체협약의 조정 문제다. 이것이 정년 연장 논의의 가장 예민한 뇌관이다. 임금·인사체계 개편은 대부분 취업규칙 불이익변경에 해당해 근로기준법 제94조에 따라 근로자 과반수(노조) 동의가 필요하다. 경영계는 동의 요건이 임금·인사제도 개편을 봉쇄한다며 완화를 요구하고, 노동계는 이를 임금 삭감의 우회로, 즉 ‘독소조항’으로 경계한다. 둘 다 근거 있는 우려다.

해법은 동의 요건의 일방적 완화가 아니라, 정년 연장과 인사체계 개편을 하나로 묶어 교환하는 집단적 합의의 설계다. 정년 연장과 임금·인사 체계 교환이 포지티브 섬(sum)이 되려면 취업규칙 개편의 절차적 요건 완화와 함께 임금 조정의 하한, 차별 금지, 분쟁 조정 절차를 법에 명문화해 예측 가능성을 높여야 한다. 개별 사업장의 힘겨루기에 맡겨두면, 교섭력 있는 대기업 정규직 유노조 사업장에만 혜택이 집중되고, 중소기업·비정규직은 사각지대에 남는 이중구조의 재생산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일본은 반면교사이자 교과서
일본의 경험은 반면교사이자 교과서다. 기업 다수가 택한 정년 후 재고용으로 고용 연장은 성공했지만, 재계약 과정의 큰 폭 임금 삭감으로 근로의욕과 생산성은 심각하게 훼손됐다. 일본이 2020년부터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시행하며 정규·비정규 간 불합리한 처우 격차를 금지한 것은 이 부작용에 대한 사후 처방이었다. 우리도 연장·재고용되는 구간의 임금 하한, 동일가치 노동에 대한 균등처우 등의 제도화를 모색해야 한다.

무엇보다 개혁의 속도가 완만해야 한다. 기업이 적응하려면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하다. 일본은 노력 의무에서 의무화, 60세에서 65세, 다시 70세의 경로를 20년에 걸쳐 시행했다. 앞서 살펴 본 실증의 경고처럼, 성급한 제도화는 시행도 하기 전에 조기 퇴직과 채용 축소라는 기업의 대응을 유인할 수밖에 없다. 연금 수급 연령 상향 일정과 보조를 맞추는 단계적 적용이 순리다.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전문대학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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