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5일 22대 국회 후반기 의장에 취임한 조정식 의장은 경선 과정에서 힘든 싸움을 해야 했다. 우선 국회 최고령(84세, 5선) 박지원 의원이 ‘마지막 책무’라며 의장직을 노렸다. 방송에서 “다음 총선엔 출마하지 못할 듯하다”고 질러 불출마 배수진을 쳤고, 높은 인지도를 무기로 경선 초반 여론조사 1위를 달렸다. 5선 정책통 김태년 의원의 도전은 더욱 버거웠다. 친화력 좋고 선이 굵어 계파를 초월해 따르는 의원이 많아 당선 가능성이 점쳐졌다. ‘세 후보 중 최다선(6선)’ 간판만으로 조정식이 의장직을 따낼지 의문인 상황이었다.
‘18년 지기’ 의식해 논란 자초
연임설 주장한 친청 도와준 셈
대통령이 ‘연임 불가’ 선언해야
그러나 그에겐 막강한 원군이 있었다. 이재명 대통령이었다. 그는 지난해 12월 28일 조정식을 청와대 정무특보에 임명해 ‘찐명’임을 인증해 줬고 5월 3일 조정식이 의장 출마를 위해 특보를 사임하자 X(옛 트위터)에 “언제나 함께해 줬는데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메시지를 띄웠다. 게다가 의장 경선 와중인 5월 11일엔 민주당 권리당원 투표마감까지 2시간여 남은 시점에 메시지를 올리면서 “국회의장은 조정식 의원님”이란 지지자 글을 공유했다. 청와대는 “선호투표제 설명을 위한 메시지일 뿐”이라 했지만, 민주당 관계자는 “당원들에겐 대통령이 조정식을 대놓고 민 걸로 보이기 충분했다. 안 그랬으면 김태년이 됐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 잘라 말했다
조정식과 대통령의 인연은 깊다. 2008년 당 대변인 시절 이재명 부대변인과 한 팀을 이룬 이래 경기지사 인수위 상임위원장(2018년), 이재명 대선 캠프 총괄(2021년), 당 사무총장(2022년)에 이어 정무특보(2025년)까지 18년을 함께했다. 그제 기자간담회에서 연임 개헌 논란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문에 조 의장이 “헌법 128조 2항에 따라 개헌 당시 대통령은 연임할 수 없다”고 답하는 대신 “국민 선택의 문제”라고 한 건 헌법과 국민에 앞서 ‘18년 지기’를 더 의식한 때문이 아닐까.
조 의장 발언은 “욕 나오려고 하네”(유인태 전 국회사무총장), “말 같지 않은 소리”(민주당 상임고문들) 등 여권에서조차 몰매를 맞았다. 헌법학자 차진아 고려대 교수는 “헌법 128조 2항은 장기집권용 개헌을 거듭해 온 불행한 헌정사를 끝내기 위해 국민이 못 박은 근간조항”이라며 “이 조항을 삭제하는 개헌은 개헌이 아니라 헌법의 연속성을 부인하는 폐헌(廢憲)인 만큼 국민의 저항권 행사 대상”이라고 일갈했다.
조 의장은 뒤늦게 “연임은 개헌 논의의 대상이 아니다”고 정정했지만 늦었다. 이미 “8·17 전당대회에서 정청래가 떨어지면 대통령과 친명이 공소 취소와 연임 개헌을 강행할 것”이라고 해 온 유시민 등 친청의 주장이 힘을 받게 됐다. 김민석 등 친명 후보들은 타격을 받았고, 개헌 논의도 물 건너갔다. 여당에서 “의장감이 아니었다”는 탄식도 나온다. ‘찐명’ 국회의장의 자충수다.
민주당 관계자의 전언이다. “정청래 핵심 측근이 진보 계열 방송 패널에게 ‘저쪽 (이재명 대통령) 측근이 여권 인사들에게 ‘우리 대통령 보고 다시 재판받으란 말이냐’며 격분했다고 한다. 그만큼 저쪽은 공소 취소와 연임에 진심이다. 그렇게 되면 총선, 대선은 필패하니 방송에서 정청래 비판 대신 지지 발언을 해 달라’고 요구했다. 패널은 ‘연임 개헌한다는 증거가 있나’고 했다는데, 조 의장 발언이 ‘증거’로 제시될 것 아니겠나.”
요즘 민주당 전당대회 판은 아마겟돈 그 자체다. 친명은 지난해 전대에서 박찬대 후보가 참패한 데 이어 6·3 지방선거 경기지사 경선에서 ‘명픽’ 한준호마저 1차전 탈락하면서 독이 바짝 올랐다. 친청은 친청대로 현직 대통령까지 참전한 친명의 공세에 “지면 끝이다”는 위기의식으로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이 핵전쟁에 등장한 무기가 공소 취소에 이어 연임 개헌 논란이다. 대통령에게 5개 재판이 걸린 사법리스크가 있다 보니, 비주류(친청)가 무기로 활용하는 것이다. 이에 맞서 친명 김민석 후보는 민주당이 국민의힘에 꽂아 온 ‘신천지’ 칼을 정청래 측에 들이밀고 있다. 한 식구끼리 서로 약점을 물고 뜯으며 막장 자해극을 벌이는 형국이다. 강성 팬덤에 잘 보여 당권만 먹으면 된다는 식인데 그 피해자는 오롯이 국민이다. 이런 마당에 국회의장마저 헌법이 아니라 대통령을 편드는 망언을 해 정치 혐오를 가중시켰다.
이 답답한 국면을 해소할 길은 하나다. 대통령이 본인 입으로 “연임 개헌 없고, 공소 취소도 없다”고 밝히는 거다. 그러면 친명을 ‘비린내 어물전’이라 맹공해 온 유시민씨 목소리부터 쏙 들어갈 것이고, 막장극 전당대회도 정상화의 길이 열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