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 “프란츠 카프카 작품의 경우 쉼표 하나하나 무게를 갖는데, AI가 좌르륵 번역을 할 경우 그 결과의 몇 퍼센트 카프카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까 싶다. 부족할 것은 틀림없다. 일상적인 문서면 몰라도 문학 작품 번역은 도저히 못 맡길 것 같다.”
지난 29일 서울 종로에서 열린 민음사 ‘세계문학기행’ 강연에서 기자와 전영애 서울대 명예교수의 문답이다. 전 교수는 1979년부터 카프카와 헤르만 헤세의 독일어 작품을 한국어로 옮긴 번역가다. 전 교수는 AI 번역 문제를 얘기하며 “우리가 기계 밑으로 갈 수는 없다”라고도 했다.
인공지능(AI) 번역으로 논란이 된 앱 ‘책도둑’ 때문에 한 질문이었다. ‘책도둑’은 저작권 보호 기간이 만료된 외국 고전문학 730여권을 번역해 1만9800원에 제공했다. 문제는 AI 번역을 사용했는데 마치 사용하지 않은 것처럼 고객들에게 설명했다는 점. 결국 비난 여론이 일자 ‘책도둑’은 전액 환불을 결정하고, 30일 서비스를 중단했다.
이 사건은 AI 번역 여부를 속였다는 측면에서 법적 논란으로 번졌다. 그런데 문학계는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다. ‘문학 작품은 AI 번역이 가능한가.’
지난 29일 서울 종로구에서 열린 민음사 ‘세계문학기행’ 강연에서 전영애 서울대 명예교수가 강연을 하고 있다. 윤성민 기자
많은 번역가는 아직 부정적으로 본다. 문학 번역은 문장을 그대로 번역하는 수준이 아닌, 또 다른 창작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에서 번역가에게도 함께 상을 주는 이유도 번역을 창작 행위로 인정하기 때문이다. 윤고은 작가의 소설을 영어로 번역한 리지 뷸러는 지난 28일 미국 문학전문 웹사이트 리터러리 허브에 기고문을 올려 “번역은 어휘의 일대일 대응보다 훨씬 더 많은 노력을 필요로 한다”면서 “좋은 번역가가 된다는 것은 좋은 작가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 것도 이런 인식이 배경이다.
프랑스 문학 번역자인 최애영 한국문학번역원 번역아카데미 교수는 “문학엔 그 언어를 사용하고 있는 그 공동체의 깊이 뿌리 내린 문화적 배경이 있다. AI처럼 단어를 사전적 의미대로 번역하면 제대로 의미를 전달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번역을 interpretation이라고 하는데, 해석이라는 뜻도 있고 악기 연주란 뜻도 있다. 연주에 창의적이고 독창적인 부분이 있듯 번역도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미 창작 영역도 AI에 자리를 내주는 상황이다. 사람들이 AI가 생성한 시와 인간이 쓴 시를 구별하지 못하며, AI가 쓴 시를 더 선호한다는 연구결과가 네이처에 실린 게 2024년 11월 일이다. 지난해엔 오픈 AI의 달리(DALL-E) 2로 생성한 회화 작품을 인간의 작품보다 사람들이 더 높게 평가했다는 호주 연구진의 연구결과도 나왔다.
이런 상황에서 문학 번역이 온전히 AI로부터 성을 지키긴 쉽지 않다. 지난해 영국에선 글로브스크라이브(GlobeScribe)가 100달러에 소설 1권을 24시간 내에 번역해주는 서비스를 내놨다. 이 회사는 자신의 번역물을 블라인드 테스트한 결과 사람들은 인간 번역과 AI 번역을 구분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일본의 스타트업 만트라(Mantra)는 AI를 이용해 가벼운 소설과 만화를 번역한다.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작품들을 번역해온 김연경 번역가는 요즘 도스토옙스키의 『분신』을 번역하고 있다. 그는 번역에 AI를 쓰지 않는다. 그럼에도 “AI를 사용하지 않으면 업계에서 처지지 않을까 불안감을 올해는 느끼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한 출판 편집자가 러시아어 문학을 AI로 한국어로 초역해서 보여줬는데 깜짝 놀랐다. 러시아어는 한국어와 너무 멀어서 못할 줄 알았는데 웬만한 대학원생보다 잘했다. 어느 순간이 되면 AI 번역이 더 좋다는 사람이 많아질 수 있다. 문학만, 예술만 AI가 대체하지 못할 거라고 하는 건 좀 오만한 거 같다.”
김연경 번역가가 번역한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민음사) 세트
김 번역가는 “우라사와 나오키의 만화 ‘플루토’를 보면 ‘이거 사람이 만든 겁니다’라고 장사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렇게 되지 않겠나. 산업혁명 이후 공장에서 만든 건 필수품이 되고, 사람 손으로 만든 건 예술품이 되듯”이라고 했다. 인간 번역은 프리미엄 제품으로, AI 번역은 가성비 제품으로 이중시장이 형성될 수 있다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