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호르무즈 해협에 동맹·우방국들의 군사 지원을 요청함에 따라 정부도 인근 해역에서 정찰·감시 활동을 지원하는 초계(哨戒)용 군 자산을 보내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군사적 기여는 대미 투자와 쿠팡 사태 등으로 불거진 미국의 불만을 잠재우고, 정부의 핵심 안보 현안에서 협상력을 높이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최근 중동 정세가 재차 요동치면서 정부 내에서 신중한 기류도 감지된다.
호르무즈해협 근처 걸프만의 화물선들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30일 복수의 외교안보 소식통에 따르면 최근 정부 내에서는 호르무즈 해협 인근 해역에서 감시·정찰 활동을 지원할 수 있는 군사 전력을 파견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구체적인 파견 전력으로는 해군의 군수지원함, 해상작전헬기와 P-8A 해상초계기 등이 거론된다. ‘호르무즈 해협의 안정화’를 전제로 하는 이번 전력 파견이 실제로 결정된다면, 영국 등이 주도하는 다국적 해상안보 연합체에 합류해 상선 호위나 기뢰 제거 활동 등을 지원하는 모양새가 될 전망이다.
특히 수중 위협 탐지 능력이 뛰어난 P-8A 해상초계기는 2024년 미국에서 6대를 인수해 지난해 7월 전력화가 이뤄진 최신예 자산이다. 한국이 최신예 초계기를 지원한다는 건 동맹국인 미 측에 최대한의 성의를 보인다는 상징성도 있다. 해군 함정의 경우 전투함에 유류 및 군수품을 보급·지원하는 군수지원함이 거론된다. 해군은 천지함급(4200t) 3척과 소양함급(1만t) 1척을 보유 중이다. 파견 함정에는 해상작전헬기를 함께 탑재하는 방안도 유력하게 거론됐다고 한다.
다만 정부 내에서는 영국·프랑스 등 미국의 유럽 동맹국들과 함께 움직인다는 기조가 뚜렷하다. 미국이 유럽 우방국들과 다국적 해상안보 연합체 구성에 합의한 이후에 정부도 본격적인 동참 여부를 검토할 가능성이 크다. 청와대가 “최근 미 측으로부터 구체적인 특정 자산 파견을 요청받은 것은 없다”고 수차례 강조한 것도 이런 기조를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아울러 청와대 관계자는 “정부는 실질적인 기여 방안에 대해 한반도 대비태세와 국내법 절차 등 제반 요인을 종합적으로 감안해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는 결국 정부가 검토하는 방안에 국회 동의 절차가 필요한 해외 파병이 포함됐다는 뜻으로 읽힌다.
전력 파견이 최종적으로 결정된다면 미 측의 요청에 따른 ‘동맹 기여’ 차원의 파병은 사실상 2003년 이라크 파병 이후 20여 년 만이 된다. 당시 노무현 정부는 조지 W. 부시 미 행정부와 줄다리기 끝에 파병을 결정하면서 동맹 관계의 불확실성을 최소화하고 대미 협상력을 확보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현 정부도 호르무즈해협 기여를 통해 농축·재처리 권한 확보나 핵추진잠수함 도입 등 민감한 안보 현안을 풀어가는 데 보다 유리한 여건을 조성하겠다는 판단을 내렸을 가능성이 크다.
다만 호르무즈해협의 정세가 최근 격화되면서 정부의 전력 파견 논의 자체가 후순위로 밀릴 가능성도 있다. 미국이 29일(현지시간) 이란에 대한 공습을 재개하며 양국은 다시 전쟁 모드로 접어들었다. 미국이 영국과 개최하기로 했던 다국적 해상안보 연합체 관련 고위급 회의도 사실상 연기됐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