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보면 내 인생은 거창한 계획보다 한 번의 용기에서 시작되었다, 1965년 작은 여행 가방 하나를 들고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당시 한국은 가난했고 해외유학은 결코 흔한 선택이 아니었다. 부모님의 걱정스러운 눈빛과 내 안의 두려움이 뒤섞어 있었지만, 그 모든 감정을 밀어내고 나를 움직이게 한 것은 단 하나, “한번 해 보자”는 젊은 용기였다.
그 시절 한국은 가난했다. 일 인당 구민소득이 100달러도 안 되었고, 유학생 외화 소지 한도도 300달러 미만이었다. 오늘날 선진국 반열의 대한민국을 생각하면 그 당시는 나라 전체가 가난했고 개인의 꿈은 현실과 타협해야 했다.
그 가난을 등지고 떠난 것이 아니라 그 가난을 넘어보겠다는 마음으로 비행기에 올랐다. 목적지는 미국, 오리건주의 한 주립대학교. 어머니는 끝내 눈물을 보이지 않으셨다. 다만 내 손을 꼭 잡고 말씀하셨다. “몸 건강히 지내라.” 그 한마디 속에는 수많은 감정이 담겨있었다. 장남을 먼 타국으로 보내야 하는 서운함, 행여 돌아오지 못 할까 하는 불안, 그래도 아들의 앞날을 막고 싶지 않은 어머니의 사랑. 아버지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이셨다. 그 무언의 고개 끄덕임이 나를 떠밀었다.
미국에서의 첫 겨울은 유난히 길고 추웠다, 언어는 벽이었고, 외로움은 그림자였다. 강의실에서 교수의 질문을 알아듣지 못해 가슴이 철렁 내려앉던 순간들, 도서관 구석에 앉아 한국에서 가져온 얇은 외투를 여미며 졸음을 참던 밤들. 그러나 물러설 수 없었다. 포기는 곧 부모님의 희생을 헛되게 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스스로 수 없이 되뇌었다. “버텨라, 여기까지 온 것은 우연이 아니다.”
졸업 후, 연수생 비자 덕에 한 미국은행에서 대출 간부 후보로 일하게 되었다. 안정된 직장과 미래가 보장된 길, 이민자로서는 더 바랄 것이 없어 보였다. 그러나 마음 한편에서는 고국의 소식이 자주 들려왔다. 유학 후 귀국의 꿈, 한국 경제개발계획, 빠르게 성장하는 조국의 모습 등.
나는 또 한 번의 선택 앞에 섰다. 그때 한국은 빠르게 변하고 있었다. 경제개발의 바람이 불고 있었고, 조국은 해외의 젊은 인재를 필요로 하고 있었다. 다시 한번 용기를 냈다. 안락할 수도 있었던 자리를 내려놓고 귀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주변에서는 왜 굳이 돌아가느냐 물었지만 내 마음은 이상하리만큼 평온했다. 돌아간다는 것은 포기가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었기 때문이다.
귀국 후, 중앙은행에서 경제 관계 조사역으로 일했다. 낮에는 조사역으로 정책과 통계를 다루었고, 밤에는 대학 강단에 서서 재무관리와 국제금융을 가르쳤다. 하루가 길었지만, 마음은 충만했다. 내가 배운 지식이 고국의 성장에 작은 보탬이 된다는 사실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람이였다.
그러나 인생은 한 번의 선택으로 끝나지 않았다. 몇 해가 흐른 뒤 나는 다시 미국으로 향했다. 이미 한 번 건너왔던 태평양이었지만 그 의미는 달랐다. 처음이 꿈과 도전이었다면, 두 번째는 책임과 현실이었다. 가족의 미래, 자녀들의 교육, 더 많은 기회를 향한 도전, 나는 다시 한번 익숙함을 떠나는 용기를 선택하였다.
세월은 빠르게 흘렀다. 일터에서의 시간은 어느새 은퇴라는 이름으로 마침표를 찍었다. 바쁘게 달려오던 날들이 멈추자 비로소 질문이 찾아왔다. 이제 나는 어디에 속한 사람인가? 미국에서 오랜 세월을 살았지만, 마음 한편에는 여전히 고국의 산과 강, 어린 시절의 골목길이 남아 있었다. 은퇴 후 역이민을 고민했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 여생을 보내는 것이 옳은가. 청소년 시절 친구들 대부분이 그곳에 있고 언어와 정서는 훨씬 편안했다. 그러나 동시에 미국은 내 인생의 절반 이상이 쌓여있는 터전이다. 자녀와 손주들은 이 땅에서 뿌리를 내리고 있다.
오랜 시간 생각했다. 젊은 날의 나는 두려움보다 가능성을 보았다, 그러면 지금의 나는 무엇을 보아야 할까. 용기란 반드시 떠나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고 남는 것도 용기였다.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인정하고 이미 뿌리내린 자리에서 감사함으로 살아가는 것도 하나의 선택이었다.
미국에 남기로 했다. 그것은 고국을 잊겠다는 뜻이 아니고 두 나라 모두가 내 삶의 일부임을 받아드리는 결정이었다. 나는 한국에서 배웠고, 미국에서 성장하고 발전했다. 나는 선택의 연속 위에 서 있는 한 인간이었다.
돌이켜보면, 인생의 중요한 순간마다 거창한 확신은 없었다. 다만 두려움 속에서도 한 발을 내딛는 용기가 있었을 뿐이다. 1965년의 유학, 1972년의 귀국을 결심하던 밤, 1975년의 다시 태평양을 건너던 순간, 그리고 은퇴 후 미국에 남기로 선택한 오늘까지.
인생은 준비가 끝난 뒤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한 번의 용기가 우리를 길 위에 세운다. 그리고 그 길 위에서 우리는 비로소 자신의 삶을 만들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