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포스산에 거주하는 12 주신을 포함한 여러 신의 기기묘묘한 행적이 그려진 이 신화 속에는 신들의 왕 제우스를 중심으로 각 분야를 관장하는 불멸의 신들이 등장하는데 말만 신이지 대부분이 어수룩하기가 인간 못잖다. 조금만 심기를 건드려도 불같이 화를 내고, 남이 잘되는꼴을 못 보며, 사랑에는 철딱서니 없이 달려들고, 질투에 눈이 멀어 툭하면 싸움박질이다.
그리스 신화의 하이라이트인 트로이 전쟁만 해도 10년을 끈 엄청난 전쟁이었지만 그 발단은 신들의 철부지 경거망동이 원인이었잖은가. 지혜롭고 아름다운 바다의 여신 테티스는 인간인 텔레우스와 결혼하며 불화의 여신 에리스를 하객 명단에서 빼고 식을 올린다. 화가 머리끝까지 난 에리스는 불화의 신으로 본때를 보이려 ‘황금 사과’ 한 알을 결혼식장에 툭 던져 놓고 사라진다. ‘가장 아름다운 여신에게’ 라는 메모와 함께.
결혼식에서 뜻하지 않게 황금 사과를 대한 세 여신 헤라와 아테나, 아프로디테는 서로 자기 것이라고 우기다 제우스에게 판결을 맡긴다. 하지만 제우스가 또 누군가. 눈치 9단인 제우스는 세 여신의 미의 다툼에 끼어들었다 망신만당할 게 뻔하니 판결은 잘생긴 인간, 트로이의 파리스 왕자에게 미룬다. 이에 세 여신은 파리스에게 각기 기막힌 제안을 한다. 자기가 이 황금 사과의 주인공이 된다면 헤라는 ‘부와 권세’, 아테나는 ‘전쟁에서의 승리’, 아프로디테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과 결혼하게 해 주겠다’며 꼬드긴다.
돈도 있겠다, 권력도 가졌겠다 뭐 하나 부족할 게 없는 파리스는 아프로디테의 손을 들어주고, 이 사랑과 미의 여신의 도움을 받아 당대 최고 미녀로 알려진 스파르타의 왕 메넬라우스의 아내 헬레네를 트로이로 데려오는 데 성공한다. 졸지에 아내를 빼앗긴 메넬라우스가 또 가만있겠는가. 그가 오디세우스를 포함한 그리스의 영웅들을 이끌고 트로이를 치면서 10년에 걸친 트로이 전쟁이 시작되는 것이다.
고고학이나 역사학 관점에서 트로이 전쟁은 기원전 12~13세기경 벌어진 트로이 왕국과 그리스 연합의 해상 패권 다툼의 결과로 분석하기도 하지만 그리스 신화 속 트로이 전쟁은 ‘미와 사랑’에서 비롯된 유치찬란한 싸움이다.
이 트로이 전쟁에서 살아남은 그리스 영웅 오디세우스의 귀향 이야기를 그린 영화 ‘오디세이(Odyssey)’가 요즘 영화가를 활활 달구고 있다. 지난 7월17일 막을 올려 개봉 첫주에만 3억 달러 입장 수익을 기록했다. 흥행 거장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이 작품은 영화 불황기에 관람객을 극장으로 끌어들이며 초대박을 터트리고 있을 뿐 아니라 평론들의 극찬까지 받고 있다.
원래 전작품을 IMAX 필름으로 찍었다니 IMAX극장에서 봐야 정석이지만, 예약하려면 최소 한달은 기다려야 해 개봉하자마자 일단 동네 AMC 극장에서 ‘오디세이’를 봤다. 한마디로 놀라웠다. 2023년 원자폭탄을 개발한 줄리어스 로버트 오펜하이머를 그린 ‘오펜하이머’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받았던 대단한 감독이 내놓은 또 하나의매스터피스였다.
서양 문학과 예술 전반에 걸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불후의 고전인 호메로스의 대서사시 ‘오디세이’를 원전으로 한 이 영화는 트로이 전쟁에서 살아남은 오디세우스가 집으로 돌아가는 10년의 고행을 담은 작품. 그야말로 영상으로 보는 대서사시였다.
그리스 신화 속에 그려졌던 신들의 질투와 복수, 불멸의 신과 이에 맞서 싸워야 했던 인간의 운명과 생의 한계, 그 가운데 펼쳐지는 희로애락의 그 엄청난 부피의 결을 이 대단한 감독은 하나하나 세심하게 카메라에 담아내 경이롭기까지 했다.
이타카 왕국의 왕 오디세우스 역의 맷 데이먼과 그 아내 페넬로피로 나오는 앤 해서웨이, 샤를리즈 테론, 요즘 젊은층의 히어로인 톰 홀랜드(오디세우스의 아들 텔레마코스 역)등 배우들의 훌륭한 연기도 압권이다. 단역이지만 한인 배우 윌 윤 리가오디세우스와 함께 귀향길에 오르는 선원으로 출연한다.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외눈박이 괴물 아들의 눈을 멀게 한 대가로 포세이돈의 분노를 사 10년 동안 바다에서 사투를 벌이며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에게 돌아가기 위해 지옥같은 여정을 보내는 오디세우스의 모습에서 우리 삶의 고뇌를 본다. 그리고 그가 이타카로 돌아가 아내와 아들을 품에 안을 때 우리는 삶에서 무엇이 가장 소중한 것인가 되새기게 된다. 너무 더워 짜증 나는 이 여름, ‘오디세이’ 영화 한 편이 이렇게 마음을 다독여 주다니. 이런 다독임의 위로를 많은 사람이 느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