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로코에서 수만 명이 북아프리카의 스페인 자치도시 세우타로 한꺼번에 몰려든 초유의 집단 월경 사태가 유럽의 이민 정책 공방으로 번지고 있다. 군까지 급파한 스페인 정부를 향해 이탈리아는 물론 미국 백악관도 친이민 정책이 이번 사태를 불렀다며 비판에 가세했다.
30일(현지시간) 모로코에서 국경을 넘어 북아프리카의 스페인 자치도시 세우타로 들어오는 이주민들. AP=연합뉴스
30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과 AP통신, 스페인 엘파이스 등에 따르면 이날 새벽부터 모로코 이주민 수만 명이 바다를 헤엄쳐 세우타 남쪽 타라할 해안으로 몰려들었다. 오전 내내 같은 지점으로 집단 월경이 이어졌고 일부는 국경 철문을 뚫고 들어왔다.
후안 헤수스 비바스 세우타 시장은 31일 “지난 24시간 동안 세우타로 들어온 이주민이 약 6만명에 달했다”고 밝혔다. 이는 세우타 전체 인구(약 8만5000명)의 70%에 해당하는 규모다. 스페인 내무부는 약 5만명이 국경을 넘었으며 이 가운데 절반가량은 이미 모로코로 돌아갔다고 발표했다.
월경을 시도하다 숨진 사람도 최소 41명으로 늘었다. 현지 경찰 노조는 희생자 가운데 일부는 익사했고, 일부는 타라할 해변 방파제 인근에서 한꺼번에 몰리면서 압사한 것으로 파악했다.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는 이날 세우타를 방문해 이번 사태를 “스페인 영토 보전에 대한 침해”라고 규정하며, 인신매매 조직이 젊은 이주민들을 속여 위험한 월경을 부추겼다고 비판했다.
모로코 북부 해안에 자리 잡은 세우타는 면적 약 19㎢에 약 8만5000명이 거주하는 스페인 자치도시다. 스페인은 아프리카 대륙에 세우타 외에 멜리야를 자치도시로 두고 있는데, 이들 도시와 모로코의 경계는 유럽연합(EU)이 아프리카와 맞댄 유일한 육상 국경이다.
스페인 경찰은 이날 오후 들어 타라할 국경에 저지선을 쳤지만 인파가 몰리자 곧 뚫렸다. 수용시설이 포화에 달하고 치안이 불안정해지자 스페인 정부는 군 투입을 결정했다. 군 병력 약 60명을 급파했고 특수기동대를 포함한 경찰력을 200명 규모로 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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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시송환 막은 대법원 판결…모로코 보복설도 나와
수천, 수만 명이 동시에 월경을 시도한 직접적인 이유는 아직 명확하지 않다. 경제난에 시달리는 모로코 청년들의 유럽행 시도는 오래전부터 이어져 왔다.
일각에선 스페인 대법원의 지난 8일 판결이 도화선이 됐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철책이나 장벽처럼 물리적인 시설을 넘어올 경우에만 즉시 송환 조치를 적용하고 해상 밀입국자에게는 적용하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국경경비를 담당하는 경비대 관계자는 로이터에 “이후 조금씩 이어지던 밀입국 흐름이 이날 극에 달했다”고 말했다. 스페인 정부도 밀입국 조직이 해당 판결을 근거로 해상 밀입국을 부추겼다고 보고 있다.
30일(현지시간) 모로코에서 북아프리카의 스페인 자치도시 세우타로 넘어가려는 이주민들이 국경 일대로 몰려들고 있다. AP=연합뉴스
소셜미디어(SNS)를 통한 집단행동 정황은 전조가 있었다. 모로코 매체는 지난 29일 모로코 당국이 ‘세우타 국경 돌파’라는 이름의 메신저 단체방을 조사하고 있다고 보도한 적이 있다.
스페인과 알제리 간 관계 개선이 이번 사태에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리카르도 파비아니 국제위기그룹(ICG) 북아프리카 담당 국장은 파이낸셜타임스(FT)에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가 최근 모로코 경쟁국 알제리를 방문한 점을 들어 “스페인과 알제리의 관계 개선에 대해 모로코가 보복에 나섰을 수 있다”고 말했다. 모로코가 국경을 의도적으로 연 것 아니냐는 의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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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솅겐 닫자”…백악관 “스페인 파멸 위험”
사태는 이민 정책을 둘러싼 유럽 좌우 진영 간 외교전으로 확산됐다.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는 이날 밤 자신의 SNS에 “통제 불능의 불법 이민이 유럽 국경 안보에 실질적인 위협이 된다”며 “스페인과의 솅겐 조약(유럽 내 자유통행 조약) 중단을 포함한 비상조치를 취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안토니오 타야니 이탈리아 외무장관도 “스페인 정부가 불법 이주민 50만명 이상에게 스페인, 즉 유럽 시민권을 주기로 한 선택이 얼마나 잘못됐는지를 세우타 사례가 보여준다”고 주장했다. 이에 스페인 정부는 주스페인 이탈리아 대사를 즉각 초치해 항의했다.
백악관도 가세했다. 애나 켈리 백악관 수석부대변인은 폭스뉴스에 “대규모 이민을 허용하는 극좌 정책을 계속할 경우 유럽에서 어떤 일이 생길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오래전부터 경고해왔다”며 “스페인을 비롯해 이런 정책을 채택한 국가들이 즉각 노선을 바꾸지 않으면 스스로 파멸할 위험이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