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 반도체 메가특구 지원을 위한 노동 규제 완화를 두고 더불어민주당의 고심이 커지고 있다. 정부와 반도체 연구·개발(R&D) 인력의 주 52시간제 예외 및 기간제(비정규직) 사용 기간 연장 등을 검토하는 가운데 당내에선 찬성론과 신중론이 맞서는 분위기다.
지난해 12월 30일 촬영한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의 SK하이닉스 반도체 일반 산업단지. 내년 5월 1기 팹(Fab·반도체 생산공장) 가동을 목표로 공정에 속도를 내고 있다. 김정훈 기자
최근 국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 소속 민주당 의원들은 고용노동부와 비공개 당정 협의를 통해 메가특구 반도체 R&D 인력에 주 52시간제를 적용하지 않는 ‘화이트칼라 이그젬션’ 도입을 검토했다. 이와 함께 여당의 메가프로젝트 특별위원회 소속 의원 등도 산업통상부 등과 주 52시간 예외, 기간제 노동자 사용 기간을 현행 2년에서 최대 4년으로 확대하는 방안 등을 논의하고 있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민주당 의원실 관계자는 31일 “정부와 관련 논의 중이나 확실히 정해진 것은 없다”고 했다.
그간 반도체 산업의 주 52시간제 및 기간제법 예외 적용은 정치권의 뜨거운 감자였다. 민주당이 특히 신중할 수밖에 없는 건 과거 반도체특별법 논의에서 주 52시간 예외 조항이 노동계 반발로 끝내 무산된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2024년 여당이던 국민의힘은 반도체 R&D 인력의 52시간 예외를 추진했지만 당시 야당이던 민주당과 노동계는 이를 반대했다. 지난해 2월 민주당 대표이던 이재명 대통령이 일부 R&D 인력에 한해 예외 적용을 검토할 수 있다고 언급하긴 했지만, 실제 지난 1월 2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반도체특별법엔 예외 적용이 포함되지 않았다.
지난 6월 29일 이재명 대통령이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를 포함한 ‘3대 메가 프로젝트’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오른쪽)과 최태원 SK그룹 회장(왼쪽)이 동석했다. 사진 뉴스1
기간제법도 비슷한 논란을 안고 있다. 노무현 정부 당시 제정된 이 법은 비정규직 보호를 명분으로 기간제 근로자 사용 기간을 2년으로 제한했다. 이후 경영계 요구에 따라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이를 4년으로 늘리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노동계 반발로 무산됐다. 다만, 청와대가 지난 2월 출범한 ‘범부처 노동 구조 개혁 태스크포스(TF)’에서 기간제 2년 제한 완화 등을 주요 과제로 올리면서 다시 논의가 살아나는 분위기다.
민주당 내부 입장은 엇갈리고 있다. 메가특위 소속 의원은 “호남 반도체 성공을 위해 예외적인 경우에 한해 주 52시간 상한 폐지를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의원은 “기간제법의 2년 제한이 과연 비정규직 보호 취지에 맞는지 현실을 돌아보고, 확대를 검토할 시점이 됐다”고 주장했다. 반면 같은 상임위 다른 의원은 “52시간 예외와 기간제법 연장 모두 노동계 반발이 예상되는 만큼 논의 과정에서 충분한 숙의가 필요하다”며 “무리하게 밀어붙여선 안 된다”고 선을 그었다.
지난해 12월 4일 당시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이철규 위원장이 국회에서 열린 제419회 국회(정기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제9차 전체회의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이날 '주 52시간 예외 적용' 뺀 반도체특별법, 여야 합의로 산자위를 통과했다. 사진 연합뉴스
관련 논란이 확산하자 강준현 수석대변인은 31일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상임위 차원에서 논의가 되는 걸로 안다. 아직 결론이 나온 것은 없다”고 했다. 이어 “당내 일부 이견이 있는 것 같고, 충분한 숙의를 통해 결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산업통상부와 고용노동부도 민주당 소속 의원들과 논의는 했지만 구체적 내용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노동계는 즉각 반발했다. 민주노총은 이날 성명을 내고 “정부는 이번 조치들이 노동자의 동의를 전제로 한다고 하지만 고용 관계에서 동의는 대등한 계약이 아니라 고용 불안을 매개로 한 강요가 될 가능성이 크다”며 반대 입장을 밝혔다. 한국노총도 “노동시간 규제와 기간제 사용 제한 등은 노동자의 건강권과 고용 안정을 지키기 위한 사회적 안전장치”라며 “메가특구라는 이유로 예외적으로 허용하기 시작한다면 그 예외는 곧 일반화될 수밖에 없다”고 반박했다.
고동진 국민의힘 의원(오른쪽)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위원장인 김성원 의원이 31일 국회 소통관에서 반도체 산업 경쟁력 확보를 위해 '주 52시간 규제 철폐' 담은 '반도체 특별법 개정안' 국회 제출 기자 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그런 가운데 국민의힘은 아예 반도체 R&D 인력 전반에 대한 52시간제 제외를 주장하며 공세를 폈다. 삼성전자 사장 출신인 고동진 의원은 이날 국회 기자회견에서 “주 52시간 적용 예외를 담은 반도체특별법 개정안을 발의했다”며 “기업과 근로자 간 서면 합의를 전제로 기존 주 52시간 제약을 적용하지 않는 방안을 국회에 제출했다”고 밝혔다. 고 의원은 “현행 주 52시간 규제는 반도체 R&D의 특수성을 반영하지 못한 채 획일적으로 적용되는 불합리한 문제를 안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