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정보기관 체계를 대대적으로 손질하며 사실상 ‘일본판 CIA(미 중앙정보국)’를 출범시켰다. 중국·북한·러시아 등을 둘러싼 안보 환경이 갈수록 복잡해지는 가운데, 그동안 부처별로 흩어져 있던 정보를 총리 중심으로 한데 모아 분석하는 체계를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31일 일본 도쿄 총리관저에 도착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일본 정부는 31일 총리 직속 최고 정보회의 기구인 국가정보회의(NIC)와 정보 수집·분석을 담당하는 국가정보국(NIB)을 공식 출범시켰다. 이날 열린 첫 국가정보회의에는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총리를 비롯해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 모테기 도시미쓰 외무대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대신 등 9명의 각료가 참석해 비공개로 약 8분간 회의를 열고 운영 규칙과 정보 보전 방침 등을 확정했다.
국가정보국은 기존 내각정보조사실을 확대·개편한 조직으로 약 730명 규모다. 경찰청과 외무성, 방위성 등 각 부처가 수집한 정보를 종합·분석해 정부의 안보 정책을 지원하는 역할을 맡는다. 지금까지는 경찰과 외무성, 방위성 등이 각각 정보를 수집한 뒤 필요할 때만 공유하는 방식이었지만, 앞으로는 국가정보국이 정보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게 된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이 지난 3월 25일 일본인 2명이 올해 1월 중국 광저우 공항에서 구금됐다고 밝혔다. 사진은 지난 19일 기자회견 모습. 연합뉴스
초대 국장에는 경찰청 경비국장과 내각정보관을 지낸 하라 가즈야가 임명됐다. 공안·대테러 분야를 주로 담당한 경찰 출신으로, 아베 신조 전 총리 비서관과 내각정보관을 거쳤으며 지난해부터 국가정보국 설립 작업을 이끌어왔다. 지난 5월에는 미국을 방문해 미 정보기관 관계자들에게 새 조직의 설립 취지를 설명하기도 했다.
국가정보회의와 국가정보국 설치법은 지난 상반기 국회를 통과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복잡한 국제 정세 속에서 정보력을 강화해 국민의 안전과 국익을 지키겠다”고 밝혔지만, 야권과 시민단체에서는 정부의 정보 수집 권한 확대가 사생활 침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하고 있다. 기하라 관방장관은 이날 “국가정보회의 설치는 일본 정보 개혁의 첫걸음”이라고 강조했다.
중국은 즉각 경계심을 드러냈다. 마오닝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이번 국가정보국 출범을 두고 “일본의 국내외 안보 정책에서 또 하나의 부정적 움직임”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일본이 최근 국가안보와 외부 위협을 명분으로 재군사화를 가속하며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위협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일본 지도자들은 역사의 교훈을 깊이 새기고 신중하게 행동해야 한다”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