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지난 30일 국회에서 이날 본회의를 통과한 선관위 특검법과 관련해 기자회견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의힘이 ‘보완수사권 폐지법’(형사소송법 개정안)을 저지하기 위해 최후 수단인 필리버스터(무제한토론)를 꺼내들었지만 31일 별다른 소득 없이 24시간이 지나 강제 종결됐다. 당내 퍼진 무기력증을 보여주는 단면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국민의힘은 전날 형사소송법 개정안 본회의 상정 후 6선 주호영 의원을 필두로 필리버스터에 나섰다. 주 의원은 최소 3시간은 발언을 이어갈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1시간 30분 만에 하차했다. 주 의원 직후 찬성 토론에 나선 김승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오히려 2배를 넘는 3시간 30분 동안 발언했다. 주 의원은 이날 한·일 포럼 세미나 참석 차 일본으로 출국했다. 국민의힘 초선 의원은 “첫 주자가 가장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가장 중요한 역할이라 무게감 있는 중진을 배치한 건데, 솔직히 아쉬움이 컸다”고 말했다.
국민의힘의 다음 순번인 박형수 의원(법제사법위원회 간사)은 3시간 17분이었고, 세 번째 주자인 5선 나경원 의원은 5시간16분, 네 번째 주자인 김태규 의원은 5시간 17분 동안 토론을 했다. 박 의원은 “(법안 통과라는) 결론이 바뀔 가능성이 없지만 국민에게 어떤 불이익이 있나 기록을 남기고 책임을 묻고 싶어 나왔다”고 말했다.
체력적 부담을 안고 나름의 노력을 기울였지만, 그럼에도 이번 필리버스터에는 과거에 비해 아쉽다는 평가가 많다. 이재명 대통령과 민주당의 법안 강행을 비판하긴 했지만, 대부분 원고를 보면서 차분한 톤으로 법안 부작용을 설명하는 데 그쳤다는 것이다. 법사위원인 김태규 의원은 필리버스터 도중 잠시 쉬겠다며 7분가량 자리를 비우기도 했다.
이러한 모습은 이전 필리버스터 때와 대조적이다. 지난해 9월 검찰청 폐지법 필리버스터에 나선 초선 박수민 의원은 밤을 새워가며 발언해 17시간 12분으로 최장 기록을 세웠다. 이 기록은 석 달 뒤인 지난해 12월 장동혁 대표에 의해 깨졌다. 장 대표는 내란전담재판부법 필리버스터를 24시간 동안 진행해 최장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2024년 여당 시절 진행한 채상병 특검법 필리버스터에선 ‘스타 초선’이 탄생하거나 장시간 토론에 대비해 ‘성인용 기저귀’를 준비한 재선 의원도 있었다.
초선 의원은 “필리버스터를 밥 먹듯이 하니 예전만큼의 긴장감은 없다”며 “계엄·탄핵·특검 수사 이후로 다들 고갈된 느낌”이라고 말했다. 지도부를 향한 비판도 나온다. 중진 의원은 “국가가 범죄 대응 능력을 갖추느냐 못하느냐의 문제인데 통상적인 법안처럼 어영부영하다가 필리버스터 하고 그걸로 끝내버리는 건 아쉽다”며 “지도부가 뭘 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상임위 차원의 전투력도 실종됐다. 민주당이 7월 한 달에만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1소위원회를 10번 개최하면서 속도를 냈으나 국민의힘은 이 중 7번을 참석하지 않았다. 상임위원장 일방 선출에 반발한 보이콧 기간도 포함됐지만 지난 23일 원 구성 뒤에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반응이 다수다. 형소법 개정안이 소위를 통과한 28일에 1소위 소속 곽규택 의원은 회의에 불참했고, 법사위 간사인 박형수 의원과 김태규 의원은 밤 10시 10분쯤 검토할 시간이 충분치 않았다는 이유로 퇴장했다.
국민의힘이 무기력감에 빠진 배경에는 대여 투쟁 화력이 분산된 이유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기호 의원은 지난 30일 필리버스터가 진행되던 도중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집회 현장에 참석한 장 대표 등을 지적하는 페이스북 게시글에 “필리버스터 자리 지키기 당번으로 편성돼 지역에 꼭 가야할 행사도 참석하지 못하고 6시간씩 의석에 앉아 있는 우리는 무엇인가”라는 댓글을 적었다. 필리버스터 지킴조로 편성된 의원들이 시간대별로 자리를 지키던 시간 친장동혁계 최고위원 2명과 국민의힘 의원 15명은 올공 집회에 참석해 선거관리위원회 특검법 통과를 자축했다.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37회 국회(임시회) 제3차 본회의에서 형사소송법 일부개정법률안(대안)에 대한 주호영 국민의힘 의원의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이 시작되자 여당 의원들이 본회의장을 빠져나가고 있다. 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