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닫기

최태원·노소영 21년 전 파탄 났다는데…이혼 확정 늦어진 이유

중앙일보

2026.07.31 15:00 2026.07.31 19:55

  • 글자크기
  • 인쇄
  • 공유
글자 크기 조절
기사 공유
최태원(왼쪽), 노소영

최태원(왼쪽), 노소영

지난달 24일 ‘세기의 이혼’으로 세간의 이목을 끈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파기환송심 판결은 재벌가 이혼이란 특수성으로 재산 분할 규모(9440억원)에 관심 쏠렸다. 저류엔 다른 논쟁도 있는데 유책주의냐 파탄주의냐다. 유책주의는 잘못한 배우자의 이혼청구권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고, 파탄주의는 혼인이 파탄 났다면 책임 소재를 따지지 않고 한쪽이라도 원하면 이혼이 성립되는 것을 말한다. 한국은 유책주의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이번 판결도 그 연장선이다. 그러나 혼인 관계가 사실상 회복 불가능한 상황이라면 책임 여부를 떠나 이혼을 허용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강하게 나온다. 신일수 법무법인 평정 대표변호사(전 수원가정법원 판사)는 “이미 부부 관계가 끝났다면 이혼을 허용하는 게 바람직해 보인다”고 말했다.

9년여에 걸친 이혼 소송 소장과, 1·2심 판결문, 대법원 판결문 등을 종합하면 두 사람의 혼인 관계는 양측이 처음 법정 이혼 절차를 시작한 2017년 7월(최 회장의 이혼 조정 신청)보다 12년 전인 2005년 파탄이 났다. 이때부터 둘은 생활 동선을 분리하고, 서로의 생활에 간섭하지 않았다.

SK그룹에서 최 회장 부부를 오랫동안 보좌해 온 한 인사는 “1998년 최종현 SK그룹 선대회장 별세 이후 두 사람은 성격과 가치관 차이로 갈등을 빚어 왔고, 2005년부터는 사실상 이혼 상태였다”고 전했다. 당시는 2003년 불거진 SK글로벌의 분식 회계 사건으로 최 회장이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던 때다. 최 회장은 소장에서 당시의 상황에 대해 “슬픔과 공황 상태에 빠졌을 때 가장 필요한 것은 배우자의 따뜻한 위로와 사랑, 격려인데 가치관 차이 등으로 관계를 회복하기 어렵게 됐다”고 했다. 노 관장은 그러나 법정에서 당시 자신이 가정과 자녀를 지키며 가정의 버팀목 역할을 했다고 주장했다.

이후 둘의 관계는 단순 냉각에서 적대적 관계로 바뀌었다. 최 회장은 2011년 노 관장이 청와대 고위 관계자를 통해 선물 투자와 관련 자신에 대한 검찰 수사를 청탁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노 관장 측은 수사 청탁 의혹을 부인했다. 노 관장은 오히려 최 회장이 2013년 횡령 혐의로 법정 구속돼 수감 생활을 하는 동안 자신이 옥바라지하며 가족을 추슬렀다고 반박했다. 2015년 8월 광복절 특별사면을 앞두고 노 관장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최 회장의 사면을 반대하는 편지를 보낸 일도 있었다.

최 회장이 그해 광복절 특사로 풀려난 직후 혼외자의 존재를 알리고 이혼 조정을 신청했으나 결렬됐다. 이혼 소송에 응하지 않던 노 관장이 맞소송에 나서면서 소송전에 돌입했다. 1심 법원은 최 회장의 이혼청구는 기각했으나 노 관장의 맞소송을 받아들였다. 유책주의 기조였고 이는 대법원에서도 바뀌지 않았다.

박경민 기자

박경민 기자

한국의 가사 소송이 유책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건 자녀 등 경제적 약자를 보호하고 이른바 ‘축출이혼’(주거·생활권 침해를 동반한 이혼 강요)을 막기 위한 취지다. 하지만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는 지적이다. 신일수 대표변호사는 “한쪽이 이혼을 거부하면 실질적으로 혼인 관계가 끝났더라도 법적 부부 관계가 수십 년간 고착화하는 구조적 한계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같은 이유로 영국·프랑스·독일 등 유럽 국가와 미국 등이 파탄주의를 채택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 역시 일정한 요건 아래 유책 배우자의 이혼 청구를 받아들이고 있다. 한국의 대법원도 2015년 유책주의를 계속 유지할지를 두고 전원합의체에서 논의하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 7대 6의 의견으로 유지하는 것으로 의견을 모았다. 대법원은 “축출이혼을 방지할 필요가 있고 우리 법제가 아직 배우자 보호와 미성년 자녀의 보호에 미흡하며 미흡한 양성평등 수준과 혼인에 대한 보호의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유책주의의 한계도 분명히 드러냈다. 소수의견으로 “이혼 소송의 심리가 과거의 잘못을 들춰내는 것에만 집중된 나머지 이혼 과정에서의 갈등 해소, 이혼 후의 생활이나 자녀의 양육과 복지 등에 관해 합리적인 해결책을 모색하는 데 소홀해지는 폐단이 있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은 이때 유책 배우자가 이혼 청구를 할 수 있는 사유를 확대한 바 있다. 최호식 법무법인 우승 대표변호사(전 서울가정법원장)는 최근 한 언론에 기고한 글에서 “동의 없는 이혼을 쉽게 허용해서는 안 되지만, 그렇다고 법이 회복 불가능한 혼인에 강제로 생명을 불어넣을 수도 없을 것”이라며 “파탄주의 도입을 다시 고민해야 할 때”라고 주장했다.





황정일([email protected])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