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닫기

‘호프 4점’ 이동진 댓글테러 당했다…별점의 노예된 대한민국

중앙일보

2026.07.31 20:00

  • 글자크기
  • 인쇄
  • 공유
글자 크기 조절
기사 공유
신현승(38)씨는 아닌 아침에 별을 세야 했다. 지난 27일 오전 7시, 서울 마포구에서 5년째 브런치카페를 운영하는 신씨는 눈을 뜨자마자 스마트폰부터 열었다. 네이버 플레이스 알림 창엔 별 세 개짜리 리뷰 하나가 새로 달려 있었다. “아…음 ….” 그의 입에선 뜻을 알 수 없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같은 날 오후 1시. 서울 종로구의 한 식당에서 만난 직장인 이지현(31)씨와 박현준(27)씨는 날 선 논쟁을 벌였다. 나홍진 감독의 영화 ‘호프’에 대한 별점을 놓고서다. 호불호가 갈리는 영화에 대해 “별점도 1등급(별의 밝기 정도)을 줬어야”라는 호평(이씨)과 “별점이 아니라 벌점을 줬어야”라는 악평(박씨)이 오갔다.

별점의 사회다. 택시를 부른 뒤, 가전업체 기사가 다녀간 뒤, 애플리케이션을 써 본 뒤 …. 우리는 무수한 별들에 노출돼 있다. 매일, 매시간 나는 남을 평가하고 나는 남의 평가를 받는다. 수많은 선의는 묻히고 소수의 악의가 만인대 만인의 투쟁처럼, 무질서와 공포를, 폐단을 부르기도 한다. 네이버 플레이스가 2021년 별점을 폐지한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지난달부터 부활했다. 별점 3개 미만 남발 금지, 리뷰 작성자 평균 별점 공개 등 단서를 달았지만, 어디로 튈지 모른다. “평가받는 건 싫어하면서 남에겐 쉽게 들이대는 건 인간의 본성”(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이기 때문이다.

“웨이팅 대비 맛은 평범.”

신씨가 본 자신의 가게 대한 네이버 플레이스 리뷰 내용은 이랬다. “예전이라면 별점이 안 보였으니까 그냥 넘어갔을 텐데, 이젠 상대도 저도 별점을 보여주니 신경이 곤두서고 눈치를 보게 되네요.” 이런 리뷰에 대한 소비자의 의존도는 굉장히 높다. 국민 97.2%가 온라인 구매 전 리뷰를 확인한다. 82.4%는 누적 리뷰 수로 구매를 결정한다.(한국소비자연맹) 64%는 온라인 후기를 확인하고 오프라인 매장을 이용한다. 글로벌 평균(49%)보다 15%포인트나 높다.(크리테오)

“대중은 이제 의사·교수·정치인 같은 ‘전문가’보다 인플루언서 혹은 덕후 같은 ‘나와 대등해 보이는 사람’의 판단에 더 설득력을 느끼게 됩니다. ‘권위의 이동’이자 ‘동일시 효과’입니다.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처음으로 댓글 놀이를 시작한 것도 그 배경에 있어요.”(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

종로구의 식당을 들썩이게 한 이씨와 박씨의 설전은 이동진 영화평론가가 ‘호프’에 준 별점이 발단이었다. 5점 만점에 4점. “감독과 친분이 있어서 후하게 준 것 아니냐”는 댓글이 쏟아졌고, 이 평론가는 자신의 블로그에 “제가 훌륭하다 했다는 것도, 형편없다고 한 당신도 ‘사실’이 아니라 ‘의견’”이라고 반박했다. 이런 온라인 논쟁은 “자기 소신대로 점수를 준 것”(이씨) “유명한 사람일수록 자기 평가에 책임져야”(박씨) 등 오프라인으로 튀어나왔다.

그래픽=이윤채 기자

그래픽=이윤채 기자

솔직 후기를 올렸다가 동네 사람끼리 법적 공방 위기에 몰린 경우도 있었다. 네이버 플레이스 별점 재개 직후, 서울 은평구에 사는 이모(52)씨가 자주 가던 미용실에 별점 1점과 함께 “실력 없음”이라는 리뷰를 남겼다. 원장으로부터 “허위사실로 영업에 피해를 줬다”며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겠다는 연락을 받았다. 이씨는 “머리가 마음에 안 들어서 쓴 건데, 솔직한 것도 죄냐”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같은 업체에 반복적으로 낮은 점수와 허위 내용을 올리는 등 지속성과 악의성이 인정되면 명예훼손이나 업무방해가 성립할 여지가 있지만, 단발성으로 남긴 주관적 평가라면 처벌로 이어지기는 거의 어렵습니다.” 류종민 법무법인 선린 변호사의 진단이다.

별점은 소비를 넘어 관계까지 파고들기도 한다. 한 소개팅 애플리케이션은 회원가입 단계에서 이성 회원들에게 외모 평가를 받게 한다. 5점 만점에 3점 미만이면 가입 자체를 막는다. “점수로 먼저 걸러주니 편해요. 그런데, 만약 내가 걸러진다면? 안 좋겠지요.” 직장인 김도윤(33)씨는 스스로 묻고 답했다.

“대중, 그러니까 일반인이 이구동성으로 외모를 평가하면 당사자는 상처가 더 심해집니다. 편향과 매도가 가해지는 거로 느끼거든요. 그걸 객관적 평균처럼 받아들이는 게 문제죠.”(임명호 교수)“우리 사회는 정성적 평가를 어려워합니다. 그래서 일단 점수화하는 ‘서열화’가 편리합니다. 객관적으로 보이기도 하고요. 특히 외모에 대해서는 같은 이목구비라도 표정이나 인성·기품이 반영돼야 하는데, 그걸 점수로 매기는 건 무리수입니다.”(곽금주 교수)

네이버 플레이스가 의도하듯, 부작용과 시행착오를 거쳐 순기능이 강화될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평가 권력이 소수에서 다수로 옮겨간 건 자연스러운 흐름입니다. 소비자도 점점 스마트해지는 만큼 중장기적으로는 ‘도움’이라는 가장 큰 목적에 부합하는, 바람직한 방향으로 자리 잡을 겁니다. 다만 전문적 평가와 대중적 평가의 경계를 잘 설정하는 게 앞으로의 과제입니다.”(이영범 건국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밤 10시, 신씨는 다시 리뷰창을 열었다. “보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자꾸 손이 가요.” 별 네 개짜리 리뷰가 하나 더 달려 있었다. 평가하고, 또 평가받는 하루의 되풀이. 곽금주 교수는 “어떤 평가에는 무뎌질 필요도 있다”며 “누가 뭐라든 ‘나는 이래서 이게 더 좋다’고 말할 수 있는 자신감을 키워야 하고, 그 자신감은 많이 알고 경험하는 데서 나온다”고 설명했다. ‘별점의 사회’를 살아가는 해답인지도 모른다.





원동욱([email protected])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