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8년 8월 3일 미국 동부시간 오후 11시 15분, 사람의 목소리가 들릴 수 없는 곳에서 미 해군 잠수함 노틸러스호(USS Nautilus)의 함장 윌리엄 앤더슨의 함내 방송이 울려 퍼졌다. “세계, 조국, 그리고 해군을 위해! 북극점이다.” 인류 역사상 최초로 사람이 북극점을 해저로 관통한 사건이었다.
북극은 남극과 달리 대륙이 아니다. 추운 날씨로 인해 얼어붙어 있는 거대한 얼음 덩어리다. 바다 위에 떠 있으므로 이론적으로는 그 밑을 통과하는 것이 가능하다. 프랑스의 과학소설가 쥘 베른이 『해저 2만리』에서 상상했던 항해의 모습이었다. 네모 선장이 지휘하는 소설 속 노틸러스호는 깊은 바다로 들어가 빙하를 피해 남극에 상륙하여 남극점에 깃발을 꽂았다.
쥘 베른의 상상력은 많은 이들에게 큰 영감을 주었다. 1954년 진수된 세계 최초의 핵잠수함에 ‘노틸러스호’라는 이름이 붙었던 것도 그래서였다. 이전까지 잠수함은 석유를 동력으로 삼고 있었기에 적재할 수 있는 연료와 물, 산소의 한계가 분명했다. 자주 수면 가까이 부상해 발전기를 돌리고 환기해야 했다는 뜻이다. 원자력을 에너지원으로 삼는 노틸러스호는 무한에 가까운 동력으로 바닷물을 전기분해하고 증류하여 산소와 마실 물을 얻고, 스크루를 돌려 추진력을 얻었다. 이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긴 잠행이 가능해진 덕에 SF소설을 현실에 구현해낼 수 있었다.
노틸러스호는 냉전의 산물이었다. 깊은 바닷속에 숨어 있다가 적을 향해 핵탄두를 실은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쏘기 위해 개발되었다. 이른바 ‘상호확증파괴’(MAD) 전략의 마지막 퍼즐이었다고 볼 수 있다. 냉전이 끝나고 소련은 망했지만 그 역할은 동일하다. 지난 7월 6일 중국은 태평양 공해 상으로 SLBM 발사 실험을 감행했고, 북핵의 위험에 노출된 대한민국은 핵추진잠수함 건조를 위해 미국과 협의 중이다. 과학으로 온 세계가 함께 발전하기를 꿈꾸었던 쥘 베른의 이상과 달리,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은 차갑고 때로는 비정하기까지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