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미국을 비롯해 글로벌 증시를 뒤흔든 장본인으로 지목된 레오폴드 아셴브레너. 월가는 그의 과도한 레버리지(차입 투자)가 AI 기술주 급등락을 일으켰다고 짚었다. [사진 SA 홈페이지 캡처]
‘AI의 노스트라다무스’ ‘AI 황금아이’로 불리며 월가의 샛별로 떠올랐던 24세 투자자 레오폴드 아셴브레너가 순식간에 실패한 투자자로 추락했다. 그가 세운 인공지능(AI) 전문 헤지펀드 ‘시추에이셔널어웨어니스(SA)’는 지난달 자산이 67% 급감하며 붕괴 위기에 직면했다. 결국 핵심 주식 포트폴리오를 켄 그리핀의 헤지펀드 시타델에 넘기며 연명하는 신세가 됐다. 시장에서는 이번 사태를 두고 “AI 전망이 틀려서가 아니라, 과도한 레버리지(차입 투자)가 부른 금융적 참사”라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독일 출신의 아셴브레너는 19세에 컬럼비아대를 경제학과 수학·통계학 전공으로 수석 졸업하고 FTX퓨처펀드와 오픈AI 등을 거친 인재다. 그는 2024년 범용인공지능(AGI)의 도래와 AI 인프라 병목현상을 예견한 165쪽 분량의 에세이 ‘시추에이셔널어웨어니스’를 발표하며 단숨에 스타덤에 올랐다.
2일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이 에세이는 실리콘밸리에서 폭발적인 반향을 일으켰고, 큰손들의 투자금이 몰리면서 펀드 설립 후 누적 수익률은 한때 1000%를 돌파했다. 운용자산(AUM)은 한때 450억 달러(약 62조원)까지 불어났다.
문제는 투자 방식이었다. SA는 투자 대상과 레버리지 한도를 두지 않는 전략을 취했다. 자기자본의 3~4배가 넘는 대출과 옵션을 동원해 SK하이닉스 주식예탁증권(ADR), 블룸에너지 등 AI 인프라주에 집중 투자했다.
김영옥 기자
그러나 7월 들어 AI 기술주가 급락하자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 금융기관들의 마진콜(추가 담보 요구)이 잇따르자 현금 마련을 위한 강제 매도가 시작됐고, 이는 다시 주가를 끌어내리는 악순환으로 이어졌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AI의 미래는 맞혔지만 금융의 과거는 잘못 읽었다”고 짚었다.
그의 구원투수로 나선 것은 글로벌 헤지펀드 시타델이었다. 시타델은 SA가 보유했던 약 160억 달러(약 23조원) 규모의 상장주식 포트폴리오를 할인된 가격에 인수했다. 이번 거래로 시장을 짓누르던 강제 매도 압력이 해소되면서 투자심리가 크게 회복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한국을 비롯한 글로벌 AI 기술주 반등의 배경 가운데 하나가 됐다”고 전했다.
FT는 이번 거래를 “월가 역사상 가장 크고 가장 신속하게 이뤄진 주식 포트폴리오 거래 가운데 하나”라며 “모두가 언제나 다음 ‘황금아이’를 찾으려 한다”는 한 헤지펀드 임원의 말을 전했다.
공교롭게도 그가 최대 위기를 맞은 시점은 결혼식을 불과 이틀 앞둔 때였다. WSJ에 따르면 아셴브레너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카멀에서 여러 날 일정의 결혼식을 준비하면서도 하객들이 도착하는 사이에 월가 투자사들과 밤새 자산 매각 협상을 이어갔다. FT는 “협상은 자정을 훌쩍 넘겨 이어졌고, 다음 날 새벽 시타델이 거래를 따냈다”고 전했다. 그의 신부는 과거 FTX퓨처펀드에서 함께 일했고, 현재 AI 기업 앤트로픽 최고경영자(CEO) 다리오 아모데이의 비서실장인 아비탈 발윗이다.
협상 직후인 지난달 30일(현지시간) 그가 투자자에게 보낸 서한은 “이번 달에 저희가 여러분을 실망시켜 드렸습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했다. 이어 “포트폴리오를 위험 기준 안에서 운용하려 했지만 시장이 예상보다 빠르고 불리하게 움직였고 유동성까지 말랐다”며 “취약성이 더 큰 취약성을 낳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차입 투자는 모두 정리했으며 앞으로는 은행 차입 없이 운용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