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들은 저녁 자리 우스개. “정치적 중요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지방선거 전후에 주가가 너무 떠버린 건 청와대의 계산 착오다. 2028년 총선 직전 ‘코스피 1만’을 열어야 여론의 압도적 지지로 이재명 대통령 연임을 위한 개헌 의석을 노려봤을 텐데, ‘타이밍 미스’가 났다. 주가를 띄우려고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까지 도입한 정책실장의 ‘오버’ 때문이었다.”
주가를 정치에 이용하려는 유혹
7월 급락이 보여준 시장의 경고
예측불가 증시 앞에선 겸손해야
주가 폭락에 화가 난 개미 투자자들의 상상력 과잉 음모론 정도로 웃고 넘겼는데, 최근 조정식 국회의장의 연임 개헌 관련 발언을 접하고는 이 농(弄)이 떠올랐다. 모든 해학에는 현실의 뼈가 있는 법. 시중의 입길에는 이재명 대통령의 사법 리스크 문제에 온통 정신이 팔린 여권을 향한 냉소가 담겨 있다.
7월의 주가 급락을 온전히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 탓으로 돌리는 건 지나친 단순화라고 본다. 사실 글로벌 반도체 주가도 혼란스러웠다. 반도체 정점론이 제기된 데다, 숨 막히는 급변의 배후에 ‘시추에이셔널 어웨어니스’와 ‘시타델’이란 월가 헤지펀드의 머니 게임까지 있었다. 그럼에도 정부에 대한 개미들의 원성이 높은 것은 그동안 여권이 주가 상승을 치적으로 자랑해 왔기 때문이다.
자신을 ‘왕개미’로 소개할 정도로 주식에 일가견이 있던 이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 상법 개정과 불공정 거래 엄단,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통해 ‘코스피 5000시대’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집권 후에도 주식시장 활성화를 통해 부동산에 쏠린 자금을 자본시장으로 유도하겠다는 국정 기조를 유지했고, 이는 투자자들에게 “집 팔아 주식 사라”는 메시지로 읽혔다. 여당도 코스피가 지수 구간을 뛰어넘을 때마다 윤석열 정부 때의 주가와 비교하며 “이 대통령 국정에 대한 신뢰 덕분”이라고 자화자찬했다.
그러나 증시는 정책 당국의 희망과는 무관하게 움직인다는 것을 이번 급락 장세가 보여줬다. 주식시장은 무수한 대외 변수와 인간의 심리가 교차하는 불확실성의 공간이다. 도널드 럼즈펠드 전 미국 국방장관의 알쏭달쏭한 표현을 빌리자면 ‘알려지지 않은 모르는 것(unknown unknowns)’이 널린 게 주식시장이다. 여기에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 같은 고위험 파생상품이 변동성을 키워 개미들을 지옥으로 몰아넣었다. 주가 같은 불확실의 영역을 치적의 소재로 활용하려는 시도는 정치적으로 위험할 수밖에 없다.
더구나 대통령의 사법 리스크를 둘러싼 논란까지 겹치면서 시장은 정부의 모든 정책을 정치적 의도와 연결해 의심하기 시작한다. 이런 의심이 터무니없다고 일축하기 어려운 것은 최근 여권의 움직임 때문이다. 의원들의 공소취소 모임, 공소취소 특검 도입 시도, 형사소송법에 기습 삽입된 법원의 공소기각 사유 확대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흐름은 정권의 관심이 어디에 있는지 여실히 말해 준다.
경제학자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는 “예측가는 두 부류가 있다. 모른다는 것을 아는 사람과, 모른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월가의 투자 대가 하워드 막스는 “나는 이 중 첫 번째 부류”라며 미래를 안다고 장담하는 투자자를 경계했다. 주가를 국정의 성과지표로 삼겠다는 발상 자체가 미래를 안다고 믿는 오만에서 출발한다. 정책으로 증시 부양을 끌어낼 수 있다는 자신감, 그리고 주가를 정치적 호재로 삼으려는 시도가 얼마나 어리석었는지를 7월의 시장이 웅변했다. ‘주가 3000’을 약속했다가 글로벌 금융위기와 중국경제 둔화라는 뜻밖의 변수를 맞아 실패했던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경험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정치가 해야 할 일은 지수를 약속하는 것이 아니라 틀과 규칙을 만드는 것이다. 시장은 정부가 응원한다고 오르는 곳이 아니며 정치가 동원한다고 움직이는 곳도 아니다. 정치가 주가를 자신의 홍보판으로 삼는 순간, 자본시장엔 유무형의 거품이 낀다. 정치인이 즐긴 거품의 청구서는 결국 개미들에게 날아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