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셸 스틸 미국대사가 지난 1일 남대문시장에서 미국 독립 250주년 기념 티셔츠를 입고 야채호떡을 들었다. 스틸 대사는 상인에게 “저도 할머니예요. 손주가 넷 있어요”라고 말했다. 스틸 대사 엑스
미셸 스틸 주한 미국대사가 이르면 4일 조현 외교부 장관과 만나 한·미 정부 간 고위급 소통을 본격화할 전망이다. 지난달 30일 부임한 지 닷새 만이다.
2일 복수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스틸 대사는 4일 강상욱 외교부 의전장에게 신임장 사본을 낸 직후 조 장관과 비공식으로 면담하는 방안을 조율 중이다. 이재명 대통령의 미국·남미 순방에 동행한 조 장관과 강 의전장이 3일 귀국한 뒤 곧장 스틸 대사부터 만나게 되는 셈이다. 이는 미 측이 한·미 현안 논의를 조속히 시작할 수 있도록 절차를 서둘러달라고 요청한 데 따른 것이다.
신임장 사본을 제출하면 정부 관계자들과의 실무 협의가 가능해진다. 이에 따라 필립 골드버그 전 대사가 지난해 1월 이임한 지 1년 6개월여 만에 주한 미국대사를 통한 한·미 정부 간 고위급 소통이 본격화한다. 다만 이 대통령에게 신임장 정본을 내는 제정식은 여러 대사를 묶어 개최하는 관행상 다소 시일이 걸릴 전망이다.
당장 스틸 대사가 마주할 주요 시험대는 쿠팡 문제다. 그는 지난 5월 미 상원 외교위원회 대사 인준 청문회에서 쿠팡 등 미국 기업이 한국에서 차별받고 있다는 질문이 나오자 “인준된다면 그 문제를 분명하게 후속 점검하겠다”고 답했다. 미국은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지난 4월 공화당 의원 54명이 강경화 주미대사에게 쿠팡 등 미국 기업에 대한 차별 중단을 촉구하는 연명 서한을 보낸 데 이어, 지난달 1일 하원 법사위원회 공화당 실무진이 쿠팡 관련 중간보고서를 내는 등 한국을 겨냥한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직접 통하는 영향력과 전직 하원의원으로서 쌓은 의회 인맥은 스틸 대사의 강점으로 꼽힌다. 그는 관련 현안에 날 선 목소리를 내오다 지난달 26~27일 방한해 정부 고위급으로부터 한국 측 입장을 직접 청취한 영 김 미 하원 외교위 동아태소위원장과도 친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졌다. 여권 고위 관계자는 “한국 입장을 백악관과 의회에 전달할 쌍방향 채널이 복원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미셸 스틸 주한미국대사가 지난달 30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하고 있다. 스틸 대사 왼편은 남편인 숀 펜 변호사. 공항사진기자단
한·미 안보협상과 조선·군함 협력도 스틸 대사의 손을 거쳐야 하는 과제다. 정부는 이달 중순께 안보협상단의 방미를 추진하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도 스틸 대사의 지렛대 역할을 기대하고 있다. 양국은 정상회담 결과물인 조인트 팩트시트의 안보 분야 합의를 구체화하기 위해 지난 6월 첫 실무협의를 시작했지만, 당초 지난달 열려던 2차 협의는 이달로 미뤄졌다.
또한 트럼프가 지난 6월 이 대통령에게 한국의 미 군함 10척 신속 건조 가능성을 직접 타진한 만큼 군함 협력을 구체화하고, 한·미 조선업 협력 프로젝트인 ‘마스가(MASGA)’ 추진을 위해 미국법을 개정하는 일도 양국이 함께 풀어야 한다. 이들 사안은 모두 행정부와 의회를 동시에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스틸 대사의 역할이 주목된다.
1955년 실향민의 딸로 서울에서 태어난 스틸 대사는 성 김 전 대사(2011~2014년)에 이은 두 번째 한국계이자 첫 한국계 여성 주한 미국대사다. 지난달 30일 부임 첫날 입국 성명 일부를 한국어로 낭독한 뒤 부모가 다녔고 실향민들이 세운 영락교회를 찾았다. 이튿날엔 광화문 세종대왕 동상을 찾고, 지난 1일엔 남편 숀 스틸 변호사와 남대문시장에서 호떡을 사 먹은 소감을 엑스(X)에 한글로 올렸다. 이어 부임 후 첫 주일인 2일 영락교회를 다시 찾아 예배를 드리는 등 한국계 정체성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