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미현 서울대병원 소아정형외과 교수가 지난달 30일 서재영 군을 진료하며 외발 서기 등 근력 강화를 위한 운동을 지도하고 있다. 강정현 기자
" “선생님, 저 이제 막 돌아다녀도 되나요?” "
지난달 30일 서울대어린이병원 진료실에서 서재영(15)군이 송미현 소아정형외과 교수에게 물었다. 대퇴골을 늘리는 치료에 사용한 외고정기를 제거한 지 약 한 달 만에 받은 외래진료였다. 송 교수는 “넘어져 골절되지 않도록 조심만 하면 다녀도 된다”고 답한 뒤 서군에게 걸어보라고 말했다.
서군은 곧잘 걸었지만 걸음을 옮길 때 몸이 좌우로 조금씩 흔들렸다. 송 교수는 ”치료 과정에서 근력이 약해졌기 때문“이라 설명하며 근력 운동을 꾸준히 해야한다고 조언했다. 3개월 뒤 다시 경과를 확인하기로 했다. 수능 이후 휘어진 종아리를 교정하고, 필요하면 종아리뼈를 늘리는 추가 수술도 검토할 예정이다.
서군은 연골무형성증을 앓고 있다. FGFR3 유전자 변이로 뼈 성장이 제한되는 희귀질환이다. 태아 때 초음파검사에서 이상이 의심돼 출생 직후 질환을 알게 됐다. 키가 또래보다 한참 작을 것으로 예상돼 생후 27개월부터 10년 넘게 성장호르몬 치료를 받았지만 키는 15세에도 137㎝에 머물렀다. 질환의 원인이 FGFR3 유전자 변이라는 사실은 최근 유전자검사에서 확인됐다.
서군을 가장 힘들게 했던 건 주변의 시선이었다. 그는 “나이에 비해 키가 작다 보니 어디를 가도 쳐다보는 눈이 괴로웠고 친구들과 지낼 때도 신경이 쓰였다”며 “통증과 부작용 가능성을 들었지만, 제가 적극적으로 수술받고 싶다고 했다”고 말했다. 서군의 어머니는 “수술에 대비해 10년 넘게 맞벌이를 하며 돈을 모아왔다”라면서도 “수술과 재활까지 하려면 감당하기 어려운 비용이 든다고 들어서 고민이 컸다”라고 털어놨다.
그러던 중 서군은 서울대병원이 고 이건희 회장 유족의 기부금으로 진행하는 ‘연골무형성증 환자 대퇴골 연장술 임상 연구’에 참여하면서 수술을 받게 됐다. 이 연구는 FGFR3 관련 골이형성증 환자의 대퇴골 연장술 경과를 분석해 향후 치료 방향을 정하는 데 활용한다. 참여자에겐 양쪽 대퇴골 연장술 수술비 일부가 지원되며, 뼈를 늘리는 기간을 포함해 약 2년간 경과를 관찰한다.
서군은 고등학교 입학을 앞둔 지난 2월 말 양쪽 대퇴골 연장술을 받았다. 대퇴골을 자른 뒤 몸 밖에 부착한 외고정기로 하루 1㎜씩 간격을 벌리면 그사이에 새 뼈가 생긴다. 뼈 안에는 골수정(뼛속 빈 곳에 넣어 늘어난 뼈를 지지하는 금속)을 함께 넣어 늘어난 뼈를 지지하도록 했다. 외고정기만 사용할 때보다 착용 기간을 줄일 수 있는 방식이다.
서울대병원 송미현 교수가 진행 중인 임상연구 모집 포스터
치료 과정은 녹록지 않았다. 매일 정해진 시간에 외고정기의 레버를 돌리고 철심이 피부를 뚫고 들어간 부위를 소독해야 했다. 서군은 “외고정기를 착용하고 걸으면 누가 살을 꼬집어 뜯는 것처럼 아팠다”고 했다. 그래도 일상생활을 이어가라는 송 교수의 권유에 수술 일주일 뒤부터 목발을 짚고 등교했다.
4개월간 대퇴골은 약 10㎝ 늘었다. 지난 6월 외고정기를 제거했고 서군의 키는 147㎝가 됐다. 어머니는 수술부터 외고정기 제거까지의 시간을 ‘기적의 100일’이라고 불렀다. 그는 “언젠가 해줘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비용 부담이 너무 컸다”며 “이건희 기부금 지원 덕에 수술받았고 결과까지 믿을 수 없을 만큼 좋아 너무 감사하다”고 말했다. 서군은 “일상생활이 한결 편해졌고 친구들이 키가 커진 것을 알아봐 줘 좋았다”고 했다.
송 교수는 사지연장술이 모든 저신장 환자에게 필요한 수술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성장 상태와 변형 정도, 기능적 필요뿐 아니라 긴 치료를 직접 감당할 환자 본인의 의사를 살펴야 한다고 설명했다. 송 교수는 “키가 작다고 다른 신체 기능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어서 무조건 수술해야 하는 건 아니다”면서도 “169㎝인 남성이 178㎝로 만들어 달라는 것과 137㎝인 남자아이에게 평생 그대로 살라고 말하는 건 다른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이어 “본인이 절실히 원하고 의료진 평가를 거친 환자에게 가장 적절한 치료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했다.
서군은 이번 치료를 거치며 사회복지학을 공부해 병원에서 희귀난치질환 어린이와 청소년을 돕겠다는 꿈을 키우게 됐다. 그는 “이건희 기부금이 제게 미래를 열어준 것처럼 저도 사회에 보탬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송 교수도 “재영이가 자신이 받은 도움을 다시 사회와 나누는 멋진 어른이 되길 바란다”고 응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