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동작구 대방동의 ‘윌로우하우스’. 유한양행이 올해 창립 100주년(1926년 설립)을 기념해 만든 복합문화공간으로, 창밖으로 초록색 지붕이 상징인 유한양행 본사가 바로 보인다. 유한양행은 과거 본사 건물의 70%를 임대줬었지만, 지금은 외부에 흩어져 있던 조직과 투자회사, 관계사 등을 모아 건물 전체를 쓰고 있다. 지주회사는 없지만 그룹의 형태를 갖춰가는 모습이다.
국내 전통 제약업계 매출 1위인 유한양행은 지난해 연결기준 매출 2조1866억원, 영업이익 1044억원을 기록했다. 1933년 소염진통연고 ‘안티푸라민’을 시작으로 ‘삐콤씨’ ‘마그비’ 등 국산 의약품 개발을 이어 오고 있다. 특히 2018년 글로벌 제약사 얀센과 12억5500만 달러(약 1조8000억원)규모의 비소세포폐암 신약 ‘렉라자’의 기술이전 계약을 체결해 기술력을 입증했다.
조직의 외형이 커진 만큼 경영 승계에 대한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조욱제 대표(사장)의 임기가 내년 3월 끝나지만 회사는 아직 차기 최고경영자(CEO)를 정하지 못했다. 과거 차기 대표 선임 과정을 보면 취임 전 해 7월 초쯤 유력 후보에게 총괄직을 맡기며 승계를 준비했다. 하지만 지난 7월에도 총괄부사장 인사가 나지 않아 차기 CEO 인선을 둘러싸고 업계의 이목이 쏠린다.
서울 대방동 유한양행 본사. 우상조 기자
후보군은 좁혀진 상태다. 김열홍 연구개발(R&D) 총괄사장과 이병만 경영관리본부장(부사장), 유재천 약품사업본부장(부사장)의 3파전이 예상된다. 김 총괄사장은 고려대 의대 종양혈액내과 교수 출신으로 2023년 회사에 합류했다. 이 부사장은 1986년 유한양행에 평사원으로 입사해 영업·경영관리 등의 보직을 거쳤다. 1994년 입사한 유 부사장은 종합병원사업부장과 마케팅부문장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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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이사회서 차기 대표 가닥
창업주 고(故) 유일한 박사가 1969년 전문경영인 체제를 도입한 이후 줄곧 내부 출신 인사를 대표로 선임해온 유한양행이 이 승계 공식을 깰지도 관심사다. 김 총괄사장이 대표에 오르면 첫 외부 출신 대표가 된다. 업계는 조 대표가 차기 CEO 후보를 추천하면 9월 이사회 심의·의결을 거쳐 차기 대표 인선의 가닥이 잡힐 것으로 보고 있다.
유한양행은 1962년부터 35년간 사용한 서울 동작구 대방동 옛 사옥을 보수해 복합문화공간 '윌로우하우스'를 개관했다. 윌로우는 회사 상징인 버드나무(willow)에서 딴 이름이다. 윌로우하우스에 전시된 유한양행의 대표 제품 '안티푸라민'. 연합뉴스
경영 승계와 함께 3년째 공석인 회장직도 다시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유한양행은 2024년 3월 ‘우수한 외부 인재 영입’과 ‘컨트롤타워 구축’을 이유로 회장·부회장직을 신설했다. 1996년 고(故) 연만희 전 고문이 회장에서 물러난 지 28년 만이다. 당시 창업주의 소유·경영 분리 정신에 어긋난다는 반발이 거셌고, 직원들이 트럭 시위를 벌이는 등 내홍을 겪었다.
진통 끝에 만들어진 회장·부회장직은 여전히 비어 있다. 회사 관계자는 “잡음을 없애기 위해 지난해 주주총회에서 대표이사 직위에 있는 사람만 회장이나 부회장을 맡을 수 있도록 선임 요건을 강화했다”고 말했다. 대표이사는 3년 임기로 한 차례만 연임할 수 있다. 조 대표는 이미 2024년에 연임해 다시 대표이사를 맡을 수 없는 만큼, 회장 승진도 사실상 어려워졌다.
정근영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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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직 최소 4년 더 공석 예상
결국 차기 대표가 대표직을 마친 뒤 한 차례 연임을 거쳐야 회장이나 부회장 선임이 가능하다. 회사가 내세운 컨트롤타워는 최소 4년 뒤에나 가동할 수 있는 셈이다. 그만큼 차기 CEO의 역할이 중요해졌다.
해외 사업 확대와 신약 투자는 속도를 내고 있다. 특히 렉라자의 기술료 수익으로 2분기에 연결기준 매출 6395억원, 영업이익 669억원을 기록했다. 각각 전년 동기 대비 10.4%, 34.1% 늘어난 수치다.
최근에는 4253억원 규모의 자사주를 전량 소각하며 주주환원책도 내놨다. 다만 주식시장에서 반응은 제한적이었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투자 성과를 실적과 기업가치 제고로 연결하는 것이 차기 CEO의 과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